그 해 여름, 가장 가치 있는 소비
수민이 하노이에 온 지도,
어느덧 반년이 지났다.
이미 더위는 3월부터 찾아와
적응할 법도 했지만
날이 갈수록 강해지는 햇볕 탓인지
수민의 한국에 대한 향수병은 더욱 커져만 갔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팬데믹으로 인해 비행기 자체가 뜨질 못했지만,
불과 몇 개월 사이에
상황이 안정기에 접어들며
이제는 코로나 검사 결과만 제출해도
한국으로 입국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회사에서도 아이가 있는 직원들은
하나둘씩 방학을 맞아 휴가를 냈고
수민도 짧은 휴가 기간이지만
한국으로의 비행기 티켓을 끊을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의 한국 회사들이 그렇듯,
수민의 회사도 '해외 주재수당'이라는 것을 주었다.
한국에서의 월급 이외에
현지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소액의 수당을 주는 것이다.
보통 파견되는 도시의 물가를 반영하여
현지의 화폐나 달러로 지급되며
오지(奧地)로 갈수록
소위 말하는 '위험수당'이 붙어, 그 금액은 더욱 커진다.
상사 회사 특성상,
여러 나라에 지사가 있는 수민의 회사에서는
베트남의 경우, 미국이나 유럽과 비교했을 때는
상대적으로 이 수당이 높은 편에 속하며
다른 동남아 국가와 비교할 때에는
낮은 편에 속한다.
(그만큼 베트남이 동남아 여러 국가들 중
살기 좋은 나라라는 것을 의미한다.)
수민은 한국에서 월급을 받을 때보다
얼마 안 되지만 여기서 받는 이 주재수당을
더욱더 소중하게 여겼다.
이곳에서 겪는 모든 감정의
'온전한 대가'라고 생각이 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수민은, 엄마의 손을 이끌고
처음으로 백화점 명품관으로 향했다.
그간 마음 한편에
엄마에게 좋은 가방 하나 선물해 주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이 남아 있었는데
왜인지 모르게 베트남에서의 시간 동안
이러한 감정이 극대화되었다.
평소 선물은 극구 거절하던 수민의 엄마도,
이번만큼은 딸에게서
어딘지모를 '결연함'을 느꼈는지
두말없이 수민을 따라나섰다.
네, 425만 원입니다.
수민이 생각했던 것보다
조금 초과한 액수였지만
엄마의 팔에 걸린
사람들이 말하는 '명품' 가방을 보며
수민은 왠지 모르게
반년동안의 노력에 대해
오히려 자신이 보상받는 느낌이 들었다.
짧지만 가장 가치 있는 일주일을 보낸 후
다시 들어서는 비행기 입국장에서
수민의 가족은 그녀에게
끊임없이 손인사를 보냈다.
입국장 문을 한 걸음 남겨놓고
다시 뒤돌아 보았을 때
수민은 여전히 자신을 끝까지 지켜보는
엄마를 보았다.
엄마의 한 손에는 명품가방이 함께 반짝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