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쓰수민, 무슨 걱정 있어요?
안색이 안 좋아요.
수민과 함께 일하는
미즈풍이 다가와 물었다.
케이티 언니에게서는 끝내
연락을 받을 수 없었다.
지금 이곳에서
남은 해외 생활은 어떻게 지내야 할지-
수민은 이따금씩 찾아오는 고독감과 두려움에
잠깐씩 미간을 찌푸렸다.
글쎄, 현지에서 정보 찾기가 힘드네요.
오늘 시장조사 가는 거 함께 가 줄래요?
물론이죠. 그런데 시간대가 애매해서
차가 많이 막힐 것 같네요.
제 오토바이를 타고 가요.
두 아이의 엄마 미즈풍이 모는
오토바이의 뒷좌석에서
쓱쓱 지나가는 하노이의 풍경과
신호대기라도 걸릴세라면
양 옆 베트남 라이더들과의 잇몸인사까지-
예상치 못한 시청각의 현란한 자극(?)에
수민의 답답했던 마음도 조금 풀렸다.
이런 활기찬 해외도시의 에너지야말로
수민이 이곳에서 얻고자 한
가장 중요한 요소였는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지금 이런 다채로운 소음과 풍경이
수민에게 큰 활력을 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시장조사를 끝내고
가까운 카페에서 둘은 잠시 더위를 식혔다.
미즈풍은
육아하면서 일하는 거 힘들지 않아요?
게다가 외국기업이라 문화도 다를 테고
오랜만에 찾아온 여유 덕분인지
수민은 좀처럼 하지 않았던 개인적인 질문을 했다.
어려운 부분도 있죠.
하지만 저는 제 일이 너무 좋아요.
베트남에서도 명문 대학을 나오고,
말레이시아에서도 일한 경험이 있는 그녀는
당당하게 자신의 직업관에 대해 말했다.
월급이나 고용안정성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자신의 커리어 중심으로 일을 선택하며
자신의 일에 대해 누구보다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미쓰수민도 그렇지 않나요?
그렇죠.. 저도 그래요..
그녀의 당당함에 수민은 다소 위축되는 자신을 발견했다.
한국에서는 사실 대책 없이 회사를 그만두면
바깥세상은 시베리아일 정도로
구직난이 심각한 상황인데
해마다 근 두 자릿수에 가까운 경제성장을 거듭하는 베트남에서는
'나를 받아주는 곳'이 아닌
'내가 선택하는 곳'으로서의 직장의 개념이 강하다.
대한민국의 80년대 풍경과 같이,
도시 곳곳에서는
새로운 아파트와 쇼핑몰이 건설되고 있고
그 건설현장에는
설명절이 지나면 절반 이상의 노동자들이
고향에 갔다가 다시 복귀하지 않는다고 한다.
다시 복귀하지 않아도
그들을 받아줄 일터가 많기 때문이다.
오죽했으면 이런 가능성을 고려해서
회사에서 연간고용계획을 수립할 정도일까.
제가 제일 처음 한 일은
호텔에서 1평도 안 되는 공간을
손님을 위해 꾸미는 일이었어요.
1평도 안되지만,
그게 어떤 일보다
어렵고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했어요.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돼요.
내가 아니깐. 내가 나를 알아주니깐.
그녀의 이야기에 홀린 듯 경청하던 수민은,
작은 해머로 머리를 맞은 듯
정신이 번쩍 뜨였다.
나는 지금까지
스스로를 얼마나 인정해 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