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시작정원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여유 Apr 13. 2024

첫 만남은 계획대로 되지 않아

그래도 만났다는 게 중요하지


'강의실이 여기가 아닌가?'

수업 1분 전이니 살금살금 들어가려던 계획이 무색하게, 강의실은 시끌벅적했다.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며칠 전 받은 강의 안내 문자를 살폈다. 3층 C홀 10시. 여기가 맞다. 분위기가 낯설면서 익숙하다. 수업 종이 쳐도 선생님 등장 전까지는 여전히 쉬는 시간이던 학창 시절 교실 풍경 같달까. 아주 사소한 차이가 있다면, 같은 반 친구들과 나이 차이가 조금 난다는 사실뿐. 아침 수업이라 나 같은 주부들이 많을 거로 생각했는데, 언뜻 봐도 멋쟁이로 보이는 부모님 연배 어르신들이 강의실에 가득했다. 막내 당첨이다.


문득 수강 신청 때문에 상담 직원과 통화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곳의 수업은 분기별로 수강 신청이 가능하다. 그러니까 이번에는 2분기인 4월에서 6월까지 열리는 수업을 들을 수 있는 셈이다. 그런데 센터 내부 공사 관계로 2월 한 달간 문을 닫는 바람에, 이번에는 예외적으로 3월 수업도 신청할 수 있는 게 아닌가. 혹시 1, 2월 수업을 듣지 않아도 3월 진도를 따라갈 수 있을지 궁금한 마음에 사무실에 전화를 걸었다. 상담 직원은 말했다. “아, 그 수업이요? 3개월 과정이라고 되어있지만, 따로 개월 수가 정해져 있는 수업이 아니에요. 한번 들으신 분들이 꾸준히 재수강하시거든요.” 어쩐지 다른 수업보다 빠르게 마감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래도 중간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4월에 새로 시작하는 편이 낫겠지 싶어 2분기에 시작하는 수업을 신청했다.


‘1학년 1학기로 입학한 게 아니라, 5학년 2학기 교실에 전학 온 거 같네.’ 

수강생들은 다들 잘 아는 사이처럼 보였다. 앞뒤로 마주 보며 웃는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려왔다. 몇몇 사람은 무언가를 확인하며 분주하게 손에 든 종이를 나눠주고 있었다. 책상마다 뭔지 모를 A4용지가 쌓여있었다. 비어있는 분단 제일 끝자리에 혼자 앉았다. 어색함에 가방에서 다이어리와 펜을 꺼내 만지작거렸다. 한 수강생이 다가와 물었다.  

“15번 가지고 있어요?” 

“네? 아, 제가 오늘 처음 와서 무슨 말씀인지...." 

얼떨떨한 표정으로 어색하게 말끝을 흐리며 대답하는 나에게 종이마다 적혀있는 번호를 가리켰다. 정말이었다. 종이마다 번호가 적혀있었다. 그는 15번이 있는 걸 확인하고 자리로 돌아갔다. 그때 앞에 앉아있던 다른 수강생이 나를 향해 몸을 돌렸다.

“처음 오셨죠? 매주 자기가 써 온 시를 발표하거든요. 이 번호가 그 순서예요. 저기 앞에 보이는 칠판에 발표할 번호와 이름, 시 제목을 쓰는 거예요.” 친절한 설명에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책상 위 종이 더미는 그냥 종이가 아니었다. 창작의 고통을 겪고 탄생한 시(詩)였다. '매주 발표'라는 말을 떠올리며 번호 순서대로 시를 정리했다. 한글 배우러 학교에 왔는데, 이미 친구들은 문학 공부를 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까막눈은 나밖에 없는 건가 싶어 머쓱했다. 그러고는 스무 편 넘는 시를 찬찬히 읽어보았다. 어떤 시는 위트가, 어떤 시는 삶의 연륜이, 어떤 시는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시를 쓴다는 게...."

"요즘엔 시가...."

"이번 주 시는...."  

얼핏얼핏 스치는 수강생들의 대화는 시 이야기로 가득했다. 시작정원(詩作庭園)에 이제 막 뿌려진 씨앗 같은 나도 언젠가 싹을 틔우고 열매 맺는 날이 올까.


그때 철컹 뒷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강의를 진행하실 교수님이 드디어 오셨다. 




다음 편에 계속

매거진의 이전글 여유의 시작(詩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