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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오 Oct 28. 2022

라이너 릴케를 장미 가시로 찔러 죽인 파상풍

    바닷가 절벽에서 시인은 바람이 외치는 소리를 받아 적기 시작했다. ‘내가 이렇게 소리친들, 천사들 중에 대체 그 누가 내 목소리를 들어줄까?’ 정말 바람이 그렇게 소리쳤을까?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받아 적었다’는 ‘두이노의 비가’ 첫 구절이다. 이탈리아 아드리아 해안에 있는 두이노 성의 절벽 아래를 산책하다가 떠오른 시상(詩想)이다. 


    두이노 성을 떠난 시인은 말년에 스위스 뮈조 성에서 장미를 보살피며 지친 시심(詩心)을 가꾸었다. 어느 날 시인은 장미가 속삭이는 밀어(密語)를 엿듣다가 대뜸 장미에게 물었다. ‘장미며, 누구에게 맞서려고 너는 그 가시를 가지기로 마음 먹었는가?’ 릴케는 도대체 어떻게 바람이 외치는 소리를 받아 적고, 장미와 밀어로 대화할 수 있었을까? 


    어머니는 외아들을 인형처럼 키웠다. 태어나 일 주일 만에 죽은 첫 딸을 잊지 못해 우울증에 걸린 어머니는 아들에게 ‘르네’(Rene)와 ‘마리아’라는 여자 이름을 붙이고, 예쁜 여자옷을 입혔다. 여덟 살에 부모가 이혼하면서 전혀 따뜻하지 않은 어머니의 품에서 자란 ‘커다란 인형’은 외톨이가 되어 혼자 산책하면서 햇살과 바람의 양을 세어보고, 물과 흙의 이야기를 듣는 법을 배웠다. 


    ‘커다란 인형’을 남자로 만들어 준 여인은 22살 때 문학모임에서 만난 루 살로메였다. 나이가 14살이나 많은 그녀에게서 ‘라이너’(Rainer)라는 이름을 받은 시인은 처음으로 ‘따스한 품’을 느꼈다. ‘나의 누이여 나의 신부여’를 연발하던 시인은 감미로운 사랑의 감탄사를 쏟아냈다. ‘사랑이 어떻게 너에게로 왔는가 / 햇빛처럼 꽃보라처럼 / 또는 기도처럼 왔는가?’


    얼마나 낭만적인 죽음인가? 시인이 장미 가시에 찔려 죽다니! 게다가 시인은 자신이 그 가시에 찔려 상처를 입을 것을 알고 있었다. 장미에게 가시를 가진 이유를 물었던 시인은 곧바로 ‘사람들이 너에게 쏟는 보살핌에 상처를 준다’며 씁쓸해 했다. 그러곤 젊은 분신 ‘말테’의 입을 빌려 ‘나의 모든 비상(飛上)은 내 피에서 시작되었다’는 예언 같은 말을 던졌었다. 


    그렇다. 그의 죽음은 피에서 시작됐다. 그것도 장미가 준 상처로! 1926년 9월 릴케는 ‘말테의 수기’를 읽고 작가를 만나려고 먼 길을 찾아온 젊고 아름다운 이집트 여인에게 선물을 주고 싶었다. 직접 가꾼 장미를 직접 꺾어 꽃다발을 만들어 준 것이다. 미모의 여인에게 반했을까, 장미의 향기에 취했을까? 시인은 그만 가시에 찔렸다. 


    장미에게 배반당한 시인은 친구에게 하소연했다. ‘가시에 깊이 찔려 생긴 상처가 왼손을 몇 주 동안 못쓰게 만들었고 아픈 것이 감염되어 오른손을 쓰는 것도 어려워졌다. 붕대를 매긴 했지만 두 손이 열흘 동안이나 쑤시고 아팠다. 이 사태를 극복하기도 전에 장염에 걸려 또 2주일이나 아주 쇠약한 상태로 침대에 누워 있어야 했다.’ 


    석 달 뒤, 릴케는 51세의 나이로 ‘장미정원’을 떠났다. 가시에 찔린 상처에 옮은 파상풍 균이 곪아 패혈증으로 번진 것이다. 애초 면역이 약했던 그는 뒤늦게 백혈병으로 진단받아 ‘장미 가시에 찔려 죽은 시인’이 되어 버렸다. 시인은 고통 속에 자신의 묘비에 마지막 시를 남겼다. ‘장미여, 오 순수한 모순이여, 기쁨이여, 그 많은 눈꺼풀 아래에서 그 누구의 잠도 아닌 잠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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