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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n유미 Nov 11. 2024

손님, 택시비는 내셔야죠(술 취한 딸 신용카드 긁기)

Chap. 2   음/주(잘 먹고 즐겁게 마시는 이야기)


 

고등학교를 졸업 후 어른이 되었다는 생각으로 가장 먼저 하고 싶었던 것은 ‘생머리 만들기’와 '술 마시기'였다. 어른의 길은 ‘멋진 스타일과 더 멋지게 술을 기울이는 것’으로 시작된다고 생각했다.

 

반 곱슬이라 장마철이면 앞머리는 라면처럼 뽀글거렸고, 뒷머리는 자연 펌을 한 듯 구불거렸다. 찰랑거리고 윤기 나는 생머리가 너무 갖고 싶었다. 친구들과 손에 손잡고 이대 앞 신촌거리에서 매직펌(아이롱)을 했고 갈색으로 염색까지 곁들였더니… 어색한 염색을 하고 한국에 여행 온 이방인 같았다. 머리카락이 쫙 달라붙어 얼굴이 너무 커 보였다. 

 

그렇게 머리도 했겠다, 고대하던 술을 마시며 시작한 나의 20대는 한마디로 '주(酒)인공'의 연속이었다. 물론 첫 술은 아빠에게 배웠다. 어른보다 잔을 살짝 아래에 대고 짠을 해야 하며, 물을 옆에 두고 자주 마시고, 잔을 꺽지 말라고(그때는 한 잔을 나눠 마시는 것도, 장판을 까는 것도 예의에 어긋났었다?) 아빠와 백세주 여러 병을 나눠 마셨는데, 달짝지근하고 쌉쌀한 것이 딱 내 스타일이었다. 그걸 본 아빠는 "앞으로 큰일이구나" 한 것 같다. 


-   가장 좋은 주사는 '귀소본능'입니다. 고주망태가 되기 전, 필름이 끊기기 전에 반드시 귀가하십시오.


이런 깨달음이 있어서, 나는 회사 동료나 친구들과 놀고 나면 아빠의 위치를 묻곤 했다. 벌써부터 잔소리가 들리지만 가장 안전한 귀갓길 아니겠는가. 어느 날은 내가 3차를 쏜다며 아빠 택시를 불렀고, 아빠도 이 참에 영업을 종료하고 집 근처에서 한잔 기울일까 했단다. 나는 잠이 들었고, 잠 속에서 알코올은 점점 더 혈액을 타고 흘렀다. 내가 잠이 깨지 않아, 엄마를 불러 두 분이 나를 짐짝처럼 옮겼다. 그러고 나서 아빠는 딸의 생애 첫 신용카드로 택시비를 긁었다. 

 

다음날 아침, 숙취에 머리를 부여잡고 겨우 출근하던 길에 본 휴대폰 문자 카드 사용내역에 깜짝 놀라 아빠에게 전화를 했다.

무슨 택시비가 이렇게 많이 나왔어?”

괘씸죄 할증료가 추가되었습니다. 손님” 

취기의 맛을 봐버린 나는 대학교 입학 후 정신 못 차리고 술을 퍼마시고 다녀서, MT를 안 보내겠다는 아빠와 전쟁도 했다. 

회사 생활을 시작하고 나서는 집에 와서 화장실에 뭘 먹었는지 확인하는 통에 가족들을 잠 못 자게 했고. 
동료들은 함께 마신 죄로 차마 얼굴 뵐 면목이 없어, 뒤에 숨어 아빠 택시를 타는 나를 지켜봐 주었다. 

이제서야 술을 적당히 즐기는 법을 알아간다. 물론 아빠와 반주를 곁들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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