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 2 음/주(잘 먹고 즐겁게 마시는 이야기)
나의 주당인생을 되돌아봤다.
{ 술을 좋아하면 앵겔지수가 높아져 개인 경제에 악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
옷이나 신발 사는 것보다, 술 사고 안주 페어링하는 게 더 재미있다. 편의점에 가면 나도 모르게 홀린 듯 냉장코너의 4개 12,000원짜리 맥주로 향한다. ‘스텔라’와 ‘기린’을 담는다. 그런데 옆에 있는 ‘코젤다크’에 새겨진 "터프한 염소"가 앞 발을 들어 날 부른다. 나도 데려가라고. 차마 거절할 수 없어 데려간다.
{ 술을 자주 마시면 건강에 해를 끼칠 수 있습니다 }
- 따스한 햇살이 시작되는 봄 : 산미가 있는 시원한 화이트와인은 이 햇살과 친구.
- 저녁에도 후텁지근한 여름 : 샤워를 마치기 전까지 목이 말라도 참는다. 목에 끼얹는 샤워는 따로 있으니깐. 청량감과 피로를 해소시켜주는 맥주.
- 찬바람이 불어 마음도 싱숭생숭한 가을 : 괜히 분위기 잡고 싶어, 레드와인을 꺼낸다. 말벡, 까쇼 같은 진한 와인은 아직 이르다. 치즈나 밑반찬과도 어울리는 메를로나 피노누아로 시작한다.
- 겉옷이 완전히 내 몸을 감싸는 겨울 : 배에 힘도 안 줘도 되고, 엉덩이가 커져도 아무도 모른다. 이제는 주종 가리지 않는다. 청하, 막걸리, 소주, 하이볼.. 추위와 함께 다 등장한다.
그래서..이 풍요로움엔 대가와 준비가 따른다.
위ㆍ장 내시경을 격년으로 한다. 탄단지로 가리는 거 없이 잘 먹는다.
땀이 뻘뻘흐르는 운동, 계단오르기, 덤벨 등도 주기적으로 한다.
그래야 이 즐거움을 계속 누릴 수 있으니까..
{ 가장 좋은 주사는 '귀소본능'입니다. 고주망태가 되기 전, 필름이 끊기기 전에 반드시 귀가하십시오 }
고주망태가 되어서 소지품 다 잃어버리고, 목에 건 체크카드 하나 덕분에 집에 겨우 기어 들어온 일.
택시나 버스에 휴대폰이나 지갑을 두고 내린 일. 그런데 모두 좋은 사람들을 만나 다 되찾았다. 너무나 감사하고 다행한 일이다.
이러다 변이라도 생길까싶어, 이제는 절대 빈 속에 독주부터 마시지 않는다. (이제는 절대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 거짓을 고할 순 없다.) 공복상태이면 소맥으로 속을 살살 채우며 시작한다.
부어라 마셔라하는 분위기는 코로나를 기점으로 크게 바뀌었다. 건강한 일이다. 이제 회식자리에서도 윗사람이 억지로 권하는 일은 없다. 원하는 주종으로 원하는 만큼만 마시면 된다. 그래도 내 카드 아닌 것으로 마시게 되면, 달리고 싶은 마음의 고삐를 잡느라 늘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