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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n유미 Nov 08. 2024

길도 잃고, 요금도 따불

Chap. 4  조르바가 되기 위한 조건-수준 높은 지껄임

학창 시절, 내가 배정된 고등학교로 가는 버스 노선 중에는 아빠가 속한 회사 버스도 있었다. 입학 전, 아빠는 본인이 운전하는 버스를 만나면 부끄럽겠냐고 물어봤던 기억이 난다. 물론 전혀 아니라고 했고, 정말로 그랬다. 친구들을 모조리 공짜로 태울 수 있겠다는 음흉한 생각에 신이 났을 뿐이었다. 


어느 날 친구가 탄 버스에서 어떤 손님이 돈이 부족하다며 승차하면서 얘기하는데, 버스기사님이 “타고 가야지 어쩌겠어요. 다음에는 꼭 내세요” 하고 친절히 말했단다. 얼굴을 들어서 보니 네 아빠였다고 전해줬다. 나는 회사에 걸리면 어쩌려고 돈 안내는 손님을 태웠냐고 괜한 걱정을 던졌다. 그러면서 나는 공짜로 탈 생각뿐이었지만 말이다.


성실했지만 조금 더 놀고 싶었던 조르바 아빠는 출퇴근이 정해진 버스보다 이틀 일하고 하루를 쉬는 개인택시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개인택시 기사로 자리를 잡은 아빠는 왠지 더 잘 맞는 옷을 입은 느낌이었다. 쉬는 날이 많은 것뿐 아니라, 내 공간에서 손님과 마음껏 수다를 떨 수 있는 기막힌 직업이 아닌가. 어떤 손님을 만났는지, 어떤 이야기 꽃을 피웠는지 각종 에피소드는 우리 가족의 주요 수다거리였다.  


좋은 에피소드만 있지는 않았다. 술 취한 승객이 뒤에서 다짜고짜 욕을 섞어 모욕을 주기도 했단다. 술이 덜 취한 일행이 말리지 않았다면, 뉴스에 나오는 큰 일을 당했을지도 모른다. 또 여성 승객이 잠들었을 때에는 반드시 신체접촉을 하면 안되기에, 수첩에 끼워놨던 볼펜으로 어깨를 톡톡 건드려서 깨워야 된다고도 했다. 


어느 날 느닷없이 아빠는 문신을 새기겠다고 했다. 

운전 중 차선변경 할 때면 늘 왼팔을 내밀고 상대 차주에게 양해를 구하던 친절한 아빠인데, 택시기사가 되니 친절과 두려움을 함께 주려던 것일까?

엄마는 이혼하거나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안된다고 했지만. 결국 이혼도, 엄마 눈도 멀쩡한 상태로 아빠의 왼쪽 팔뚝에는 애매한(뱀인지 용인지 알 수 없는 모양과, 작다고 우기는 조금 커 보이는) 문신이 새겨졌다. 화상 자국을 덮는 것이라고 했지만, 방어용품과 같은 용도임이 짐작이 갔다.


하지만 대부분은 평범하고, 다정한 손님들이다. 어느 날은 공항 가는 손님이 탔는데 너무 즐겁게 수다 떠는 나머지 나갈 길을 놓쳤단다. 더 돌아가니 비행기 시간에 쫓기고, 택시비가 원래 나와야 할 금액보다 만원 가량 더 나왔단다. 아빠는 미안해서 예정 비용만 받겠다 했지만, 손님은 덕분에 즐거웠다고 값을 다 치르고 내렸단다. 


참고로 이렇게 수다 떨기 좋아하는 나의 아빠는 경상도 사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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