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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혼잣말 0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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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우 Jan 09. 2023

B01호의 시간

08


  08

 

  소년은 앓는 중임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친구가 전화를 걸어 잠이 안 온다고 했을 때 그래서 서둘러 전화를 끊기 위하여 빈말을 했다. 단지 그래서만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여름이 지나갈 때까지만이라도 B01호의 시간을 잠시 공백의 페이지로 두고 싶었다. 소년은 몇 번인가 친구의 전화를 받지 못했고 다시 전화를 할까 하다가 내버려두었고 또 몇 번인가는 받아서 어른 같지도 않은 어른처럼 형편없이 대꾸했다. 바쁘다거나 다음에 내가 전화 걸게 같은. 

  여름이 끝나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장난인가 했다. 그러니까 이런 걸 뭐라고 해야 하지. 극단적 장난? 친구의 거주 관할 경찰서에서 전화를 받았을 때 하마터면 소년은 그대로 질문할 뻔했다. 혹시 친구하고 짜고 극단적 장난하는 거 아니에요? 친구는 유서를 남겨놓지 않았다. 타살 가능성은 거의 희박하다고 했다. 다만 소년은 마지막 통화 상대로서 경찰 앞에서 진술을 해야 했다. 

  이제 잠들 수 있을 것 같다. 너는 잘 지내라. 친구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경찰은 그 말을 듣고 이상한 점을 눈치 채지 못했냐고 물었다. 네, 소년은 짧게 대답했다. 경찰은 그 이전에는 친구가 전화로 뭐라고 말했냐고 물었다. 

  잠이 안 온다고 해서 따뜻한 물을 먹어보라고 했습니다.

  소년은 고개를 숙인 채 대답했다. 경찰은 혹시 친구에게 무슨 고민이나 문제가 있었는지 물었다. 소년은 무릎에 올려놓은 두 손을 마주잡았다. 친구의 휴대폰에는 최근 발신기록이 소년의 휴대폰 번호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경찰은 둘이 친한 친구 같은데 마지막에 다른 말은 없었는지 다시 물었다. 

  마지막 말이......너는 잘 지내라가 아니라 너도 잘 자 같습니다.  

  확실한 건 아니라고 소년은 덧붙여 말했다. 경찰은 친구가 왜 소년에게 마지막으로 전화를 한 것 같냐고 물었다. 

  친구니까요. 아니 모르겠어요. 

 소년은 마지막으로 대답했다. 진술을 마치고 경찰서 건물을 나오자 기다렸다는 듯이 햇빛이 가슴을 찔렀다. 소년은 되돌아가 담당 경찰에게 다시 말했다. 마지막 말은 침묵이었습니다. 친구는 몇 초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아무 말 없음이 마지막 말이었습니다. 경찰은 조서를 수정하지 않았다. 알았다고 한 말이 다였다.   

  누군지 알 수 없는 검은 양복들이 군인 아버지의 엄격한 교육방법으로 갈등을 빚어왔고 결국 극단적 선택을 했다더라. 불면증에 시달리다가 수면제를 과다 복용해서 깨어나지 못했다더라. 방학 보충수업을 받으러 나온 학생들의 입에서 선생들의 수군거림에서 먼지 같은 이야기가 떠다녔다. 

  녀석은 장례식장 뒤에서 목이 부러진 것 마냥 고개를 떨어뜨리고 있었다. 사람의 눈에서 눈물이 비처럼 오래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을 소년은 처음 목격했다. 그토록 친구의 뒤를 캐고 다닌 녀석은 소년의 날선 눈빛을 모르는 듯했다. 소년은 날카로운 흉기가 슬프게 뭉그러진 마음을 찌르고 헤집는 것을 실감했다. 그 흉기로 녀석의 목을 찌르고 싶었다. 적의였다. 

 소년은 그 녀석을 죽이고 싶었다. 손에 잡히지 않는 도무지 형체를 알 수 없는 감정이었다. 그 녀석을 생각하면 주먹이 쥐어졌고, 벽이든 바닥이든 내리쳐야 제대로 숨을 쉴 수 있었다. 소년은 알았다. 자신은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하는 소심한 인간일 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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