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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혼잣말 0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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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우 Jan 09. 2023

B01호의 시간

09



09


  소년은 머뭇거리다 병원 장례식장 안으로 들어왔다. 정면 전광판에 친구의 얼굴이 보였다. 세상의 어떤 규범도 거스르지 않겠다는 듯이 고등학교 교복을 입고 단정하게 찍힌 상반신 사진. 학생증으로나 어울릴 법한 사진이 확대되어 고인의 얼굴을 알리는 용도로 사용되고 있었다. 사진 옆에는 친구와 상주 이름, 빈소 호실, 발인 날짜, 장지 위치 등이 나와 있었다. 다른 고인들과 다르게 친구만이 십대의 모습을 하고 있었고 나이가 적혀 있지 않았다. 복도식 장례식장 끝이 친구의 빈소였다. 소년은 그곳으로 무심히 시선을 던졌다. 어찌 보면 학교 복도와 교실 같은 구조였다. 소년의 친구는 앞으로 학교에 나올 일이 없었다. 소년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학교에 나갈 이유가 없었다. 소년은 뒤돌아 장례식장을 나왔다. 그리고 그날 밤, 교복을 챙겨서 육아원을 나왔다. 

  소년은 친구의 목을 묶은 넥타이를 풀어주었다. 얼굴을 덮은 교복 상의를 걷어내서 표정을 보려고 했다. 그런데 그 순간 친구가 소년의 손을 잡았다. 그 꿈을 꾼 곳은 B01호였다. 

 소년인 라이터를 켜서 벽을 비추었다. 친구가 붙여놓은 그림이 그대로 있었다. 지나간 날에 친구는 랜턴으로 그림을 비추며 말했다.  

  이 그림의 제목은 연인들이야. 화가는 르네 마그리트. 뭘로 보여?

  남자랑 여자랑 천을 뒤집어쓰고 키스?

  나는 대답했다.  

  그게 화가의 트릭일지도 몰라. 이 둘은 너하고 나 같은 사람일 수도 있어.  

  우리 같은 사람?

  사실 소년은 너하고 나 같은 사람이 연인이냐고 묻고 싶었다. 

  그래. 우리 같은 친구.  

  소년은 그림을 떼어냈다. 그림을 찢어버리기 위하여 온 것처럼 소년은 그림 속 두 인물을 갈라놓았다. B01호에서 소년은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받지 않았다. 여름밤, 신호만 살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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