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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혼잣말 1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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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우 Jan 09. 2023

B01호의 시간

10



  10


  화장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소년은 고개를 든다. 이어 사내의 목소리가 들린다. 사내는 화장실 앞에 갈아입을 옷을 놓아두었다고 했다. 새 옷이란다. 소년은 일어나 샤워를 시작했다. 남의 집 화장실에서 친구를 떠올리다니. 사내가 어서 일을 치러줬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 손만 내밀어 사내가 놓아둔 옷을 가져와서 입는다. 흰색 나이키 반팔티와 검은색 반바지 속옷까지 다 사내의 말처럼 새 거다. 방으로 나오니 사내는 눈을 감고 바닥에 옆으로 누워 있었다. 소년은 망설였다. 불을 끄고 잠 든 사내의 옆에 누워야 하나 아니면 지금 사내를 깨워야 하나.   

  "불 끄고 침대에서 자거라."

  잠든 줄 알았던 사내가 말했다. 휴우, 한숨마저 앳된 소년이 형광등 불을 껐다. 눈을 감고 있어도 사내는 느낄 수 있었다. 좁은 방 안에 퍼진 어둠을 조심스레 헤치고 침대에 눕는 소년의 기척.  

  '약 먹는 걸 깜빡했구나.' 

  사내는 몸을 움츠리며 생각한다. 꼼꼼했던 아내는 간 기능 수치가 높은 사내를 대신해 병원을 예약했고, 아침마다 제픽스 한 알을 챙겨 주었다. 사내는 6개월마다 정기검진을 받고 일주일에 두 번 아내가 주는 민들레 즙을 마셨다. 그런 일은 일상의 흐름이었다. 아내와 이혼을 한 후 그것이 가족으로서 누리는 혜택임을 알았다. 비의 표정은 한결 같다. 더 강하지도 약하지도 않게 내리고 있다. 아내도 그랬다. 언제부터인가 무표정한 얼굴이었지.

  "아저씨."

  등 뒤에서 여리고 낮은 소년의 목소리가 건너온다.

  "주무세요?"

  자?

  침대에서 다가와 아내가 말을 걸어올 때 사내는 대부분 눈을 감은 채 침묵했다. 아내에게선 은은하면서도 달콤한 향기가 났다. 그 향이 어쩌다 누그러진 성욕을 깨우는 날 아내의 위로 올라가기도 했다. 섹스는 사내의 의지에 의해서만 이루어졌다. 이혼 과정에서 아내가 제출한 서류에 의하면 두 사람은 정서적 육체적 단절 상태였다. 

  "제가 거기서 잘게요."

  사내는 길고 가느다란 한숨을 내뱉는다. 아내에 의하면 사내는 아내와 감정교류를 나누지 못하고 아들과도 대화하지 않는, 공감능력이 부족한 가장이었다. 사내가 한 일은 기계처럼 돈을 벌어다준 것뿐이라는데, 사내는 억울했다. 경제적인 부분이 채워지니 아내가 과한 요구를 한다고 생각했다. 아무 문제없다고 여겼던 것들이 실은 사내를 배반할 계획을 짜고 있었던 것 같았다. 뒤통수에서 날아오는 강속구에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아내 말로는 사내가 유책 배우자였다. 이유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정리 당했다, 고 사내는 생각했다.   

  "괜찮다. 푹 자거라."

  고등학생 아들은 사내를 투명 인간 취급했다. 의식하고 무시하는 게 아니라 자신만의 세계에 빠진 듯 고개를 푹 떨어뜨리고 사내를 지나쳐갔다. 사내는 밤늦게 주방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자신을 지나쳐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마시는 아들을 날선 눈빛으로 보았다. 아들의 표정은 섬뜩할 정도로 창백했다. 직장에서 나온 아버지 앞에서 저런 표정을 지어선 안 되는 거였다. 오후에 보았던 핏기 없는 면접관의 얼굴이 떠올랐다. 

  우리는 중간 관리자를 뽑습니다. 한 직장에서만 근무하셨는데 왜 그만두신 겁니까. 

 알 만 한 자식이 의뭉스럽게 묻고 있었다. 사내는 동요하지 않는 눈빛으로 ‘경영상 이유로 구조조정 됐습니다.’ 라고 말했다. 면접관은 미소를 유지하며 물었다. 

  뭐 당연히 아시겠지만 의제매출이 뭐죠? 

  사내의 표정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의제매출이라니. 그런 건 들어보지 못했다. 몇 년 만 더 젊었더라면 사내는 자신을 믿고 말했을 것이다. 의제매입을 의제매출로 잘못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사내는 구석에 몰린 짐승처럼 움츠러들었다. 

  모릅니다. 그런 말은 근무하면서 들어본 적 없습니다.  

  아들은 끝까지 사내를 유령 취급하며 등을 보였다. 이것들이 나를, 사내는 담배를 짓뭉개지게 비벼 껐다. 자신보다 키가 자란 아들을 돌려 세워, 그 창백한 얼굴에 주먹을 꽂았다. 겨우겨우 중심을 잡아 주던 안전핀이 픽 빠져나가, 순식간에 우르르 무너져 내린 느낌이었다. 아들은 사내를 경멸하는 눈빛으로 째려보았다. 그뿐이었다.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그 표정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아들은 전반적으로 잘 자라주었다. 자신보다 더 오래 버티는 인간이 될 거라고, 사내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혼 후 아내는 한 번 사내에게 전화를 걸어 울먹였다. 사내가 선물투자 실패로 남은 재산을 손실해버린 후였다. 그때 사내는 뛰어내릴까, 목을 맬까 생각 중이었다. 아내는 아들이 무서워졌다고 말했다. 내신 1등급이 자살했는데 그 충격으로 아들이 어떻게 된 것 같다고 했다. 밥도 안 먹고 방에 틀어박혔다고 했다. 아내가 말이라도 걸면 그 말에 베이기라도 한 듯 악을 쓴다고 했다. 사내는 아들에게 그런 면이 있었다는 게 놀라웠다. 아비가 휘청거릴 때도 무심하던 아들이었다. 

  안 그래도 자기관리 잘 하는 앤데. 너무 잡지 마. 예민할 때니까 잠시 그런 거겠지. 

  아내는 죽은 아이 이름을 대며 아들의 어릴 적 친구라고 했다. 

  알아서 제 자리를 찾을 애야. 너무 걱정하지 마. 

  사실 사내는 아들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아내에 의하면 아들은 동면을 하는 짐승처럼 해가 지나도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차롤 몰고 학교 앞으로 무작정 찾아갔던 그때처럼 사내는 다시 아들을 보러 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다 잃은 모습으로 아들을 찾아가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자신은 세상에서 퇴장할 수도 있는 아비인 만큼 아들을 찾아가선 안 되는 거였다. 그럼에도 언젠가 아들이 이 방에 찾아온다면 잘해주어야지 다짐했다. 그 날을 대비해서 사내는 아들의 옷을 샀다. 어느 날 문득 찾아온 아들이 방에서 자고 가는 상상. 아들에게 침대를 주고 자신은 바닥에 누워서 잠들 때까지 이야기를 나누는 상상. 하지만 빗소리조차 사내의 방을 노크하지 않았다. 우연히 지하철에서 아들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언젠가 사내는 아들의 휴대폰 번호를 보며 이런 생각을 한 적 있다. 소년은 맞은편 좌석에 쓰러져 있었다. 아들이 다닌 고등학교의 교복을 입은 채로. 사내의 시선이 소년에게서 어느새 본 적 없는 아들의 모습으로 향했다. 사내의 머릿속에서 아들은 혼자 어딘가에서 쓰러져 있었다. 사내는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헤어진 아내에게라도 아들의 안부를 물어볼까, 잠시 갈등했다.  아무 연락도 하지 않는 것. 이게 사내가 가족에게 보낼 수 있는 메시지였다. 가족과 소통할 의지가 없는 사람. 처음으로 사내는 아내의 말이 어느 정도 맞다고 생각했다.  

  "아저씨, 이 방이 B01호잖아요. 제가 예전에 친구하고 같이 있던 방도 B01호였어요. 0자만 알아볼 수 있었지만 확실해요. 저...... 혹시 제가 말 거는 게 귀찮으세요?"

  "상처 난 얼굴로 돌아다니면 네 아버지가 슬퍼하실 거다."

  "아버지요? 그런 거 없는데... 가족 같은 친구가 딱 한 명 있긴 했는데......"

  "그럼 그 애가 슬퍼할 거다."

  "죽은 사람도 슬퍼할까요?" 

  사내는 침묵한다. 하지만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한다. 소년은 사내의 아들이 아니지만 이대로 침묵한다는 건 사내 자신이 무능한 아비가 되는 것만 같다. 

  "죽지 않은 사람, 죽은 사람, 죽으려는 사람 다 사람 아니겠니." 

  "제 친구는 늘 뛰어났어요. 공부, 운동, 게임 다 잘했어요. 저하고 꽃무릇도 보러 가자고 했단 말이에요. 그런데 자살했어요. 처음에는 친구를 등 떠민 사람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지금은 모르겠어요. 알 수 없어요."

  "그게 정답일 수도 있다."

  "알 수 없는 거요?"  

  "그래."   

  사내는 머뭇거리다가 교복 명찰에 박혀 있던 소년의 이름을 불러본다. 

  "학교는 빠지지 말거라. 혼자 너무 오래 나와 있으면......" 

  사내는 말을 잇지 못하고 침묵한다. 빗줄기가 그 공백을 메우나 싶었는데 네, 라는 소년의 단정한 목소리가 건너온다. 사내는 문 밖에서 아들의 이름을 불렀던 그때를 잊을 수 없다. 술에 취해서 딱 한 번 무작정 살고 싶어지던 순간이 있었다. 사내는 택시를 타고 아들을 보러 왔다. 하지만 아들은 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끝내 열어주지 않았다. 악을 쓰며 문을 향해 닥치는 대로 물건을 집어 던졌고, 제발 자기를 내버려두라고 소리쳤다. 사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내와 아들이 있는 집에서 퇴장하는 것뿐이었다. 결정적 원인이 있었는지, 모두가 자기를 불운에 빠뜨리기로 공모한 것인지 사내는 정말 알 수 없었다. 사내의 가슴 한 곳에 빗물이 고인다. 빗소리가 몸 속에 스며드는 듯한 깊은 밤이다. 아내는 애인과 한 침대에 있을까. 오늘밤, 아들은 방에서 나왔을까. 소식을 듣지 못했으니 더 살아야겠다고 다짐한다.  

  어쨌거나 지금은 사내도 소년도 혼자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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