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나, 살아 있지?
B01호에서 친구는 소년의 손에 깍지를 낀 후 심장에 갖다 댔다. 소년은 처음으로 다른 사람의 심장 고동을 느꼈다. 점점, 그 소리는 자신의 몸에서 나는 것 같았다. 소년의 심장도 두근두근 움직였다.
우리 함께 살아 있어.
소년은 혼잣말을 삼켰다. 태어난 자신이 처음으로 고마웠다. 본 적 없는 부모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 생겼다. 낳아주어서 다행이라고 말이다. 소년은 원장을 미워하지 않았다. 원장은 기껏해야 소년의 몸에 멍이나 상처를 만들 뿐이다. 친구를 만난 후부터는 자신감이 생겼다. 마음만 먹으면 마른 장작 같은 늙은 원장쯤은 확 넘어뜨려 뇌진탕을 맛보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
그런데 그 적의는 어디서 왔을까.
그날 소년이 친구와 B01호에서 나왔을 때 밖에는 어스름이 깔려 있었다. 친구가 먼저 소년의 손을 잡았고 둘은 말없이 여름 어스름 속을 걸었다. 행인은 없었다. 소년은 조심히 걸으며 소년다운 다짐을 했다. 정거장이 드러나면 먼저 자연스럽게 자신의 손을 빼야겠다고. 하지만 그 전까지는 바람 한 점 들어오지 못하게 단단히 쥐고 있겠다고.
그 녀석은 거기에 작정한 듯 서 있었다. 녀석의 시선은 무심하면서도 날카로웠다. 친구만을 향한 시선이었다. 먼저 손을 놓은 건 친구였다.
너희가 어디서 왔는지 알지. 어젯밤에 나도 다녀왔어. 이거 가지러.
녀석의 손바닥에는 초소형 카메라가 놓여 있었다.
너희 아버지 부대로 보내면 어떨까. 대령님 앞으로.
녀석의 입에서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 나왔다. 소년은 그게 친구 아버지의 이름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친구는 녀석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가자.
소년에게만 낮은 목소리로 말했을뿐. 그런데 이상했다. 소년은 그 자리에서 열병과도 같은 소외감을 느꼈다. 혼자만 느낄 수 있는 열병. 친구가 자기한테 많은 말을 숨기고 그 녀석에게만 혼잣말을 들려준 느낌이었다. 망설임 끝에 무척 조심스럽게 소년은 혼잣말하듯이 어떤 사이인지 친구에게 질문했다.
모르고 싶은 사이.
친구는 망설이지 않고 간단하게 대답했다. 소년은 친구의 말이 잘 와 닿지 않았다. 누군가를 간단하게 요약할 수 있을까. 그렇다는 것은 서로에 대해 얼마나 잘 안다는 것일까. 나는 너를 얼마나 알고 있는 걸까. 소년은 처음으로 안으로 들어온 감정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여름 저녁 햇빛이 묻은 친구의 따뜻한 등마저 낯설게 느껴졌다. 언제 녀석에게 뒤를 밟혔는지 소년은 알 수 없었다. 캐내는 것은 무의미했다. 소년이 끝까지 알고 싶은 건 친구와 녀석이 정말 어떤 사이였냐는 것. 한편으로는 끝까지 모르고 싶어서 소년은 친구를 피했다. 하지만 친구는 소년이 혼자 다닐 때를 노려서 길을 막았다.
그놈은 아무 짓도 못해. 그냥 저런 놈이야.
처음 말을 주고받았던 그 담벼락에서 친구가 말했다. 처음부터 없던 것처럼 꽃무릇은 한 송이도 보이지 않았다.
어떤 놈이 저런 놈인 건데.
꽃이 있던 자리에서 소년은 조심스럽게 혼잣말처럼 물었다.
한때 친구였는데 지금은 열등감에 시달리는 괴물이야. 상대할 가치가 없다고.
친구가 누군가에 대해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걸 소년은 들어보지 못했다. 그 녀석에 대해 말할 때 친구의 표정에 적의가 느껴졌다.
친구였다면 무슨 문제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오해 풀고 다시 친구로 지내면......
절대 없어. 평생 안 보고 싶은 놈이야.
친구가 소년의 말을 끊었다. 여름이 깊어갈수록 소년의 마음으로 무엇이 침투해 들어왔다. 소년은 그것의 정체를 알 수 없었으나 증세만은 깊이 느꼈다. 입맛이 없었고, 생기가 빠져나간 환자 같은 얼굴로 유령처럼 걸어 다녔다. 학교에서 친구와 녀석의 눈빛이 허공에서 칼끝처럼 부딪히는 모습을 보기라도 하면 소년은 쓸쓸해졌다. 녀석이 친구와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0의 시간과 비교할 수 없는 질긴 시간을 겪은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짐작하자면 감정의 바닥까지 가 본 사이.
소년은 열여덟 살의 여름을 뜨겁게 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