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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문난 이작가 Nov 15. 2022

올가미

11. 올가미

6장      

한우근 사장실 안상태 국회의원 사무실 

(간단한 소도구와 조명으로 번갈아 가며 두 장소를 이동한다)

 

한우근 사장실     

한우근, 화난 모습으로 정신없이 왔다 갔다 한다. 

서지만, 어쩔 줄 몰라 쩔쩔매며 서 있고.      


한우근    미쳤군, 미쳤어. 회사 그만두라는 한마디에 자살을 해?

서지만    원래 우울증 약을 복용했다고 합니다. 

한우근    직원들 우울증까지 우리가 어떻게 책임지나, 원. 

서지만    치매 걸린 홀어머니를 먼저 죽이고 자살했다고 하니…….

한우근    어휴, 큰 이슈가 되겠구만. 아주 큰 이슈가 되겠어. 

서지만   회사 책임이라고 볼 순 없잖습니까? 개인의 선택이죠. 권고사직 들었다고 가족이랑 동반자살 한다는 건 말이 안 됩니다.

한우근    그렇게 이성적인 상황이 아니야. 언론들이 또 얼마나 자극적으로 쏟아내겠어. 해고 통보에 비관했다고 우리 회사를 쪼아댈 게 분명해. 안상태 의원한테 전화 넣었어? 

서지만    예. 들른다고 하셨습니다. 

한우근    아주 망해라 망해라 하는구먼. 고공농성 때문에 구겨진 이미지 이제 만회하는가 싶었더니, 기름을 붓네. 내 참. (뻐근한 듯 머리를 이리저리 돌리며) 아주 자살공장이라고 광고를 해라. 아무튼 사람이 제일 힘들어. 기계야 불만을 토하냐, 데모를 하냐, 조용히 일만 하지.  

서지만    매각협정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겠는데요.      


한우근, 주변을 살피며 엄지손가락을 입에 대고 은밀한 목소리로 나무란다.    

  

한우근    그런 얘기 함부로 꺼내지 마.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서지만, 실수했다는 듯 지퍼로 입을 닫는 제스처를 취한다. 

     

서지만    사장님. 자살 이유는 아무도 알 수 없어요. 본인만 알죠. 직장은 그 사람 삶의 일부분입니다. 늦은 나이에 결혼도 안 했고, 함께 살던 어머니 치매에 걸려 병원비도 헉헉댔다던데. 게다 우울증약까지 복용하고 있었대요.

한우근    그러면 뭐 하나. 누가 그렇게 조곤조곤 헤아리나? 자극적으로 건수 하나 잡아서 회사에 물 먹이려는 인간들만 진 치고 있는데.

서지만    그 직원한테 친형만큼 가까운 사람이 있었어요.

한우근    누군데?

서지만    고진옹. 고공농성 할 때 매일 밥을 올려줬죠.       


한우근, 뭔가 되짚어보더니.     

 

한우근    이번에 인사팀장 만든 놈?     


서지만이 고개를 끄덕인다.      


한우근    그러니까. 

서지만    그러니까 이 척박한 세상에 유일하게 믿던 형이 고진옹이었죠. 그런데 그 고진옹이 도근행한테 해고 통보를 한 거죠. 

한우근    배신감이 컸겠네. 

서지만    그렇겠죠, 아무래도. 

한우근    그래서?

서지만    아무래도 그게 이 사건의 빌미가 된 게 아닌가…….     


한우근, 함박웃음을 짓는다.

한우근 사장실 조명 어두워지고, 국회의원 사무실 밝아진다.   

   

안상태 국회의원 사무실     

안상태가 가운데, 고진옹이 그 옆에 앉아 있다.  

탁자 위에는 커다란 지도가 있다. 안상태는 사인펜으로 도로 정비가 될 장소에 표시를 해두고 장난감 자동차들을 세운다.      


안상태    여기에 도로가 생기면 말이야. 미래자동차에서 만든 차들이 질주를 하겠지.     

 

안상태, 장난감 자동차를 뒤로 뺐다가 손을 놓으면, 자동차가 앞으로 빠르게 나간다.  

    

안상태    전기차랑 수소차도 머지않았으니, 회사의 비전은 밝아. 자긍심을 가져. 

고진옹    내가 이렇게 복직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     

안상태    고생을 많이 하면 거기에 익숙해져. 고생이 숙명인 것처럼 산다니까. 다른 길이 있다는 건, 아예 생각을 안 해요. 

고진옹    동료들한테 희망퇴직을 받는 게, 잔인한 일 같고.     


안상태, 지도 위에 표시된 도로 옆으로 아파트나 숲을 표현하는 미니어처를 세운다.

     

안상태    말 그대로 희망퇴직이야. 그냥 있으면 어떻게 될 거 같아? 복직도 안 되고 취직도 안 되고 그야말로 시간만 탕진하는 거야. 허송세월 보내기밖에 더 해. 노조들 그러지, 복직 안 돼도 좋다, 저런 악덕 기업 가만두면 안 된다, 복수해서 죗값 치르게 만들겠다. 너도 이제까지 봤잖아? 그렇게 복수한 노조 있었어? 없어. 그저 열패감에 분노의 화살을 퍼붓지만 아무 소용없어요. 그게 세상 이치야. 좀 더 생산성 있는 방법을 찾아야지. 

고진옹    정리해고 당하기 전에 챙겨갈 수 있는 모든 걸 얻고 그만둘 수 있게 노력은 하는데.  

안상태    됐어. 네가 오히려 그들한테 구세주야. 좀 더 큰일 하려면 죄책감이나 동정 따위는 버려.      


안상태, 지도 위에 지하철역을 나타내는 미니어처를 세운다.      


안상태    (떨어진 자동차를 가리키며) 저것 좀 주워줄래.      


고진옹, 순간 잠깐 망설이다 자동차를 주워 갖다 준다.     


안상태    (자동차를 지도 위 도로에 놓고) 이렇게 아우토반 같은 도로가 닦이니, 여기 지하철역 하나 들어오면 게임 끝인데. 진옹아, 국회의원 하니까 세상이 다르게 보여. (지도만큼 팔을 벌리고) 세상이 생각보다 커. 할 수 있는 일도 많고. 이제 장관도 하고, 대통령도 하면 일이 더 많겠지. (펜을 던지듯 놓고) 너 노조 할 땐 그 세계가 전부인 줄 알지? 회사 안으로 들어가 봐. 또 다른 세계가 보일 거야. 더 큰 세계. 너도 힘을 키워야지. 이제 나이도 지천명인데 언제까지 그렇게 쪼잔하게 살 거야.     

 

안상태, 일어나서 창문 쪽으로 걸어가 밖을 보다가,    

  

안상태    내가 널 괜히 인사팀에 넣어달라고 한 게 아니야.

고진옹    네가?

안상태    그럼. 한우근이 눈엣가시 같은 널 왜 고용해? 다 책잡힌 게 있으니까 서로 물고 물리는 거지. (창문 밖을 가리키며) 저기, 딱 저기 역이 들어오면 좋을 텐데.  

    

안상태, 돌아와 앉는다. 두 다리를 책상 위에 올리고.      


안상태    회사가 경영난 때문에 뭔가 포장한 뒤 매각할 계산이 있는 것 같아.     

 

고진옹, 놀라 쳐다보면.      


안상태    부도낼 위기 몇 번 막아야 한다고 빌어대서 은행권도 연결해줬어. 그런데 파업이 장기화되니 사장도 죽을 맛이지. 한우근이 괜히 엄살떠는 건 아닐 거야. 어쨌든 그놈이 잘되어야 나도 정치 생활이 편해지니까. 넌 이번 은혜 잊지 말고 기억해라. 내가 부탁할 일이 있을 거야.      


고진옹, 생각이 복잡해진다.      


안상태    내 뿌리가 노동운동 아니냐. 노동자들 지지가 없으면 재선은 어림없지. 여당 거물급 지역구에서 내가 어떻게 당선됐는데. 앞으로도 네 도움이 필요할 거다. 이번 일도 노사 간의 아름다운 합의로 마무리 지어야 해.      


이때, 밖에서 노크 소리.    

  

안상태    더 할 얘기 없지? 

고진옹    …….

안상태    (문에다 대고) 들어오세요. (일어나며) 내가 스케줄이 꽉꽉 차서.      


급하게 들어오는 보좌관.      


보좌관    의원님, 안 좋은 소식입니다. 미래자동차 도근행 씨가…….     


고진옹, 이상함을 직감하고 일어나는데. 

보좌관, 계속 말을 해도 될지 안상태 눈치를 본다.   

   

안상태    무슨 일인데요?

보좌관    자살했다고 합니다. 의원님이 노조와 합의에 엮인 게 아니냐는 추측 때문에 기자들이 인터뷰 요청을 해왔습니다. 빨리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고진옹, 그대로 뛰어나가려 하자, 안상태가 팔을 잡는다.  

   

안상태    가지 마! 잠깐 나랑 얘기 좀 하자.      


국회의원 사무실 조명 나가고, 한우근 사장실 조명 들어온다.  

    

한우근 사장실     


서지만    도근행을 후려치는 말을 했겠죠. 신변을 정리하고 싶을 만큼.  

한우근    모두 조용히 권고사직으로 정리하겠다더니. 사람을 아주 보내버렸구만. 

서지만    인사팀장한테 악감정 품은 사람들도 많을 거예요.      


한우근, 뭔가 계획하는 듯하다.      


서지만    본래 적보다 배신자를 더 싫어하잖아요.      


사이.     


한우근    권고사직 면담했던 사람들 불러서 고진옹 팀장 행태에 대해 따져 물어. 비참하진 않았는지, 자존심 추락시키진 않았는지, 사직 권고할 때 기분이 어땠는지. 할 말들이 많을 거야. <한지일보> 박 기자도 동석시키고. 

서지만    예. 불만이 많은 사람들이니까 먹잇감 하나 던져주면 모두 달려들 겁니다. 

한우근    안상태 국회의원은 뭐야? 농성하는 놈들 중 하나를 인사팀장시키면 정리해고가 쉬워진다더니. 

서지만    의원님이 진짜 우리 편인지는 곰곰이 따져 봐야 하지 않을까요? 

한우근    훗! 여우 같은 놈.   

   

한우근 사장실 조명 나가고, 국회의원 사무실 조명 들어온다.      


안상태 국회의원 사무실     

안상태와 고진옹, 서 있다.      


안상태    너, 알고 있었어?    

 

고진옹, 패닉에 빠진 채, 어쩔 줄 몰라 한다.    

  

안상태    여기 온 이유가 뭐야? 저 일 때문이야?

고진옹    근행이, 근행이 어떡해? 상태야, 근행이 어떡해?

안상태    처음 들었어?     


고진옹,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고 괴로워한다. 

손이 눈에 띄게 떨린다.      


안상태    해고당하고 자살하는 일이 어제오늘 일이냐? 정신 차려! 정신 차리고 이 일을 어떻게 수습해야 하나 정리 좀 해 보자. 잘못 엮이면 화살이 쏟아질지 몰라. 너 도근행 언제 만났어?     


고진옹, 크게 소리 지르고.     


안상태    진정해. 혹시 네가 희망퇴직 권유한 직원이야?

고진옹    나 때문에, 나 때문에…….

안상태    너 때문이 아니야. 너 분명히 내 말 들어! OECD 자살률 부동의 1위가 우리나라야. 다 저마다 이유가 있겠지. 아무튼 너 때문은 아니라는 거야. 그러니까 기자가 몰려오든 한우근이 협박하든 넌 발목 잡힐 말은 삼가야 해. 무슨 말인지 알아들어? 

고진옹    가 봐야겠어. 

안상태    진옹아. (망설이다) 나 엮지 마라.    

  

안상태, 나가려는 고진옹 잡으며.      


안상태    입 단속해. 내 이름 튀어나오지 않게.   

   

고진옹, 안상태를 밀치고 나간다.      


안상태    고진옹!     


암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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