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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벤트는 항시대기

by 김소희

신발을 신으며 벽에 걸린 시계를 올려보았다.

"서둘러야겠다." 바닥에 놓여있던 가방을 왼쪽 어깨에 걸치며 현관문을 힘껏 밀었다.

열리던 문이 '턱'하며 뭔가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직감적으로 필~이 왔다. "이건 택배다."

문 옆으로 고개를 내밀고 네모난 상자 위치를 확인하며 짧은 다리를 뻗어 쓱쓱 옆으로 밀었다.

활짝 열린 문을 붙잡고 운송장에 적힌 주소를 확인하니 우리 집 주소가 맞다.

시간에 쫓겨 다른건 보지도 않았다. 바로 상자를 열린 현관문 안으로 밀어 넣고 부랴부랴 엘리베이터 안에서 몸을 던졌다.

배달 온 물건이 무엇인지 생각하려 했지만 좀처럼 기억나지 않았다.

"뭐지? 무거워 보이던데."


늦은 저녁, 허기진 배를 끌어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현관 입구에 밀어넣은 그대로 놓여있는 네모난 택배를 다시 마주했다. 쪼그려 않아 상자에 붙은 운송장을 자세히 보았다.

"아~책이 왔구나. 백 년 만에 받아보는 교과서네."

지난달, 방송대 수강신청을 하며 도서 신청도 동시에 진행했다. 1-2주 전의 일이라 배송이 올 거라는 걸 까맣게 잊고 있던 것이다.

크리스마스 아침에 빨간 양말 속 선물을 발견한 것처럼 심장이 두근거렸다. 테이프를 벅벅 떼어내고 상자를 열었다.

그 속에 빼곡히 들어있는 전공서적들.

나는 기쁘고 설렐지 알았다. 아니 기쁘고 설렜다. 그 마음은 잠깐이었다. 진짜 찰나였다.


+나, 또 저질렀구나


꺼낸 책을 옆에 쌓아 놓고 휘리릭 넘겨보았다.

"이걸 또 시작해야 하는 거잖아. 처음부터. 와~ 너란 여자는.." 나 자신에게 뒷말을 아꼈다.


어제의 나는 저지르고 오늘의 나는 미션을 해결한다.

그러다 오늘의 내가 저지르고 내일의 나에게 미션을 맡긴다.

내 인생의 이벤트 항시대기다.

어제의 내가 보낸 선물이 달갑지 않을 때도 있지만 고맙게 받아야지 뭐 어쩌겠는가.

모든 게 마늘이고 쑥이 되어 나를 진화시킨다. 그럴 거라 믿는다.

-그나저나 나는 사람이 되는 게 목표인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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