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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회상 1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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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배 Jul 13. 2023

회상 12

노동운동과 민주화

  어용단체인 한국노총을 탈퇴하고 서노협(서울지역 노동조합 협의회) 활동을 열심히 했다. 가입 노동조합은 청계피복노동조합을 비롯해 동아건설 노동조합 등 많은 노동조합들과 함께 활동을 했다. 당시 서노협 의장으로는 단병호 위원장님이었고, 항상 청계피복노동조합 사무실과 전태일 열사 기념관에서 정기 회의를 하였다. 서울지역뿐만 아니라 각 지역에서 지역 협의회가 결성되고 결국 전노협(전국 노동조합 협의회)이 탄생되었다. 전노협 초대 위원장으로 단병호 위원장님이 선출되면서 전국 조직이 완성되었다. 단병호 위원장님은 늘 집회 장소에 머리띠를 하고 회색 작업복에 목이 긴 밤색 안전화를 질끈 동여매고 연단에 오르셨다. 단병호 위원장님이 연단에 오르면 많은 노동자들이 환호성을 지르곤 했다. 노동자들의 우상이었던 것이다.      


  당시의 군부정권에 맞서 온 국민이 민주화를 외치며 거리로 나섰다. 특히 학생운동권에서 전면에 나서 사회 민주주의를 요구했고, 따라서 노, 학 연대가 필연적이었다. 노동운동은 사회적 요구에 의한 민주화 운동이 함께 이루어지고 전 국민적 요구로 인한 군부의 6.29 선언을 이끌어내 국민 직접선거를 통해 대통령을 선출할 수 있었다. 당시 연세대학교 노천 광장에서 집회를 마치고 여의도 국회의사당까지 행진을 할 때 거리의 온 시민들이 함께 구호를 외치고 손뼉 치는 모습을 보며 가슴 뜨거운 눈물을 흘리곤 했다. 그 먼 거리를 걸어도 힘든 줄 모르고 끝까지 함께 했다. 역동적인 역사 흐름의 한가운데 내가 함께 서 있었고 민주주의의 주역으로 나는 당당히 최루탄 쏟아지는 거리에서 싸웠던 것이다.      


  그렇게 나는 노동운동가로 성장하여 서노협 의장 후보로 유력한 위원장이었으나 가족들의 간곡한 저항에 부딪히고 말았다. 가장 먼저 현역 장교였던 매형이 나를 잡고 사정을 했다. 진급을 해야 하는데 혹여라도 처남이 감옥이라도 가거나 좌익으로 밝혀지면 군 생활을 하는데 어려움이 크다는 것이다. 집안 형제들 또한 노동운동하다 감옥이라도 가면 사회에서 적응하기 힘들어지고 취업도 할 수 없으니 그만하라고 만류가 심했다. 그런 가족들의 간곡한 만류가 가슴 한쪽을 짓누르고 있었다. 결국은 위원장 임기를 마치고 새로운 위원장에게 노동조합을 부탁하고 회사를 퇴직하였다. 조합원들이 집에까지 찾아와 만류를 하였지만 이미 결정을 내리고 사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뜨거웠던 시간은 그렇게 마무리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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