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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회상 1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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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배 Jul 28. 2023

회상 13

노동의 새벽

  노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많은 것들을 배우고, 많은 사람을 만났다. 선배 노동자들의 노동 운동과 희생, 그리고 노동운동을 한 훌륭한 분들의 책을 만나기도 했다. 특히 전태일 열사는 분신을 통해 노동자들의 횃불이 되었다. 노동자로서 전태일 열사의 정신을 가슴에 꼭꼭 담아보기도 했다. 또 하나 내 가슴을 뜨겁게 만들었던 박노해 시인의 『노동의 새벽 』 시집이다. 시라는 것은 어릴 적에 학교에서 몇 번 읽었을 뿐, 시가 무엇인지도 잘 몰랐지만 박노해 시인의 시를 한 줄, 한 줄 읽어가면서 가슴은 분노로 뜨거워져 눈물이 나고, 입으로는 날카로운 독백을 토해내고 있었다. 시집 속에는 글자가 아닌 노동자들의 삶이 그대로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전쟁 같은 장시간 노동으로 쓰러지고, 산업 재해로 잘린 손목이 피눈물로 책 속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암울했던 그 시절의 노동자들은 열악했던 환경과 저임금이 내가 못 배우고 못난 탓으로만 여겨가며 온몸이 부서지는 지옥 같은 노동을 견디며 살았다. 새벽 조출을 하고 그것도 모자라 연장근무에 철야까지 꼬박 하루 16시간 이상을 기계 앞에서 졸음을 쫓아가며 일을 해야 했다. 

  웃으면서 이야기하지만 웃지 못할 슬픈 무용담을 여성 조합원이 한 이야기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철야를 마치고 지친 몸으로 잠이 들었는데 잠결에 답답한 무게를 느껴 눈을 떠보니 남편이 자기 배 위를 누르고 성관계를 하고 있었는데도 눈은 천근 만근이라 다시 잠에 빠져들었고, 무거운 몸으로 아침에 일어나니 남편이 몹시 화를 내었다. 도대체 당신은 죽어 썩은 통나무 같다며” 불만스러워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가슴이 먹먹했다. 사랑하는 부부가 부부로서 서로 사랑을 하지 못하는 현실이 너무 가슴 아프고 슬픈 이야기였다.     


  노동운동을 통해 노동해방을 원했던 우리의 노동 현실이 지금은 어떨까? 나는 지금도 그때의 그 암담한 현실을 보고 있다는 것이다. 노동조합을 만들 수 없는 영세 사업장이나 대기업에 속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지금도 최저임금이라는 가이드라인에 붙잡혀 최저 생계비도 부족한 임금으로 힘든 노동에 허덕이고 있다. 원청직원들의 갑질과 칼날 같은 위협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해고의 위협에 노출되고, 부당함에 맞서는 노동자는 가차 없이 해고되는 세상에서 우리는 지금도 살고 있다는 것이다. 노동법의 사각지대에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지금도 관리자들의 비인권적 언어폭력과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서 웃음을 잃은 채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2024년 최저임금이 9,860 원으로 확정되었다는 뉴스를 접하며 또 한 번 쓰린 가슴을 쓸어 담는다. 한 달 월 급여가 50,160원 인상된 것이다. 오만 원!!! 달랑 오만 원 친구들과 소주 한 잔 마실 수 없는 돈을 노동자들의 임금이라고 올려놓고, 몇 달씩 모여 앉아서 회의를 한 저들은 그렇게 큰일 했다고 어마어마한 돈을 받아 갈 것이다. OECD 한국 경제 12위인 나라, 그런 나라에서 우리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차별을 받아가며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다. 진정한 노동해방이란 무엇인가? 하루 8시간 일하고, 하루 8시간 잠자고, 하루 8시간 쉬면서 살아가는 세상, 그런 넉넉한 사회에서 결혼도 하고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 예쁜 아이도 많이 낳아서 풍요로운 미래를 꿈꾸며 살아가고 싶은 그런 세상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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