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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망지 Oct 30. 2022

시간과 공간을 볏짚으로 엮어 베개맡에 두고

두시부터 다섯시간, 서른네번째 편지

오늘은 첫 반차를 쓰는 날입니다. 점심 먹고 나서 얼마 안 있다가 오후 반차!를 외치며 이 사무실 밖으로 걸어 나가게 되겠죠? 노곤 노곤합니다. 졸음이 쏟아져오네요. 갓생 아닌 갓생을 꾸려나가며 새벽 1시가 되기 전엔 무조건 잠에 들곤 했는데, 어제는 그 균열이 깨졌습니다. 새벽 3시가 될 때까지 잠들지 못했어요. 잠도 결국 타이밍입니다. 분명 두 눈이 절로 감기던 때가 있었는데, 더 깨어있고 싶은 마음에 내면의 목소리를 잠시 무시했더니, 꼬박 말똥말똥한 눈빛으로 새벽녘을 깨어있었네요. 



수면 패턴이 일그러지면, 밤에 깨어있는 시간이 길어진다면, 저는 터벅터벅 옥상으로 향합니다. 차마 빈손으로 올라간다고는 말 못 하겠네요. 내가 허락한 자그만 나의 일탈, 담배가 곁을 채워주죠. 저희 집은 한강뷰는 아니지만, 뒷집의 작고 옹골찬 나무와 식물들이 도심 속 나만의 숲을 이루어줍니다. 가만히 풀벌레 소리를 듣고, 어두워 구분이 되지는 않지만 분명 녹색을 띠고 있을 초록의 잎들을 눈으로 더듬다 보면, 하루의 일과로 지친 마음이 저절로 정화되고 있는 마음입니다. 내 방의 창문으로도 나의 정원은 한눈에 들어옵니다. 봄에는 라일락이 화창하게 피고, 여름에는 초록 내음이 가득히 햇빛을 반사시키고, 가을에는 뜬금없이 곳곳의 감이 보입니다. 겨울에는 이 모든 풍요를 뒤로하고 잔뜩 헐벗은 앙상한 가지만 보이지만, 또 눈이 내리면 아담하게 코트를 갖춰 입은 나무가 그리도 정겹습니다. 내가 가꾸는 정원은 아니지만, 저는 이렇게 열렬한 객입니다. 눈으로 귀로 코로, 네모난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그 작은 공간의 모든 감각을 감히 매일같이 빌려 나를 적십니다.  



침대에 걸터앉아 수평으로 바라보는 나의 정원과 밤의 옥상에서 광활하게 내려다보는 나의 정원. 밤낮으로 내 시선이 머물 곳이 있어 온난한 마음입니다. 나의 소유가 아니지만 내가 감각으로 누리는 나의 도처의 공간. 이 집에 살고 있어 뒷집의 정원을 탐할 수 있고, 이 집에 살고 있어 밤의 옥상을 차지할 수 있어서. 문득 나의 집이 더욱 사랑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안전하고 편리한 아파트 단지가 서울 곳곳에서 멋들어진 성과 요새처럼 존재감을 뻗치고 있지만, 신기하게도 2n 년의 서울 토박이는 한 번을 아파트에서 살아보질 못했네요. 덕분에 옥상이나 동네 골목, 남의 집 정원 등 보너스 같은 공간들도 얄팍하게 소유할 수 있어 오히려 좋습니다.  



유년기에 신촌에서 자랄 때, 저희 집의 호수는 빌라 옆의 딸린 작은 정원도 소유하고 관리하는 조건으로 계약을 했습니다. B01호, 반지하에서 살았기 때문에 창문을 열면 곧바로 진짜 나의 정원이 보였습니다. 땅과 시선을 맞추어 바라보는 시야를 가졌기 때문에 내 눈에 수평으로 보이는 건 나무의 뿌리들. 어릴 때라 키가 작았기 때문에 수직으로 고개를 치켜들어야 눈에 들어오는 나무의 가지와 푸르른 잎들. 우리 정원엔 목련나무가 심어져 있었기에, 매해 봄마다 눈처럼 하얗게 물들어갔습니다. 때때로 동네 고양이들이 정기모임을 그곳에서 했기 때문에, 어느 날의 밤은 너무도 시끄러웠고, 친해지고파 참치캔을 따서 두었더니 이 녀석들이 타이밍을 놓치고 떠난 후라, 애꿎은 개미만 잔뜩 꼬인 일도 있었죠. 방학이 되면 조그만 텐트를 정원 바닥에 치고는 동네 친구들을 불러 모아 아지트로 삼곤 했습니다. 반지하의 창문을 열면 곧바로 내부와 외부가 연결이 되기 때문에, 그 조그만 창문을 통로 삼아 샌드위치도 옮겨 받고, 델몬트 오렌지 주스도 넘겨받고. 보통의 창문답게 철장도 설치되어 있어서 흡사 감옥에서 밀거래를 하는 모습 같기도 했겠네요. 그러나 반지하의 집 안에서도 그 바깥의 정원에서도 한 번도 갇혀있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습니다. 이상하리만치 지독하게 좋았던 기억만 묻어있는 나의 신촌, 나의 첫 집, 나의 고향. 목련이 주기적으로 방문했던 그 공간으로 돌아가고 싶네요. 모든 걸 다 올려다봐야만 시선에 들어오던 시절. 거북목이 무슨 걱정이겠어요. 호기심이 가득했던 고개는 빳빳이 늘 위로만 향했겠죠.  



시공간은 항상 서로의 손을 잡고 있습니다. 공간이 그리워 옛집을 찾아갔다가 정원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옆에 위치한 빌라의 토지에 편입되어 크게 원룸텔이 자리를 잡은 걸 보고 왔습니다. 그리워하던 목련은, 하얀 울타리는,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세 잎 클로버는, 모두 다 옛 광경이 되어버렸죠. 더 이상 생생히 그릴 수 없어 지난한 추억들. 고향에 가도 나를 적실 향수가 남아있지 않다는 것. 그리운 공간에 더욱 그리울 시절을 덧칠해봅니다. 1m가 안 되는 길이의 꼬마 아이. 하얀 나무 울타리를 함부로 만지작거리다 가시에 찔리던 아이. 



시간과 공간을 볏짚으로 엮어 베개맡에 두고 잠을 청합니다. 새벽 세시의 꿈은 시린 듯 달콤하였기를 

반차로 평소보다 일과가 짧겠습니다. 산뜻한 하루가 되세요 



위로와 사랑을 여기에 두고,

2022년 10월 27일 PM 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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