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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에 흔들린 꽃들 Nov 19. 2022

나는 이십 대에 고아가 됐다

어쩌다 미국에 살게 된 한국 남자 (ep. 6)

그 일은 내가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지 1년이 조금 넘었을 때 일어났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일은 그때 일어났다기보단 이미 서서히 진행되고 있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대학원에 입학한 후 첫 중간고사 기간에 누나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엄마가 위독하다는 소식이었다. 그제야 의사의 말을 귀 기울여 들었어야 했다는 후회를 안고 한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내가 지금의 와이프를 처음 만나 부부가 되어 그녀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 오기까지 고작 2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 사이 엄마는 난소암 3기 진단을 받고 투병생활을 시작한 상태였다. "네가 미국에 가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렇지만 나 때문에 어떤 결정을 내리진 마", 엄마는 이민을 고민하던 내게 말했다. 엄마를 빼놓고 생각할 수 없는 결정인데, 그녀가 아프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녀를 지켜줄 남편도 없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건 된 건 내 스무 번째 생일이 지난 지 얼마 안 됐을 때였다. 그날은 추석 연휴 첫날이었고, 날씨가 굉장히 좋았다. 그런 좋은 날에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다. 그전부터 신장투석을 받던 환자였고, 의사는 신장이식 없이는 그가 몇 년 살지 못할 거라 했었다. 의사 말대로 아버지는 군대에서 첫 휴가를 마치고 돌아가는 나를 배웅한 뒤 안방에서 홀로 숨을 거둔 채 발견됐다.


시간이 지나 이번엔 엄마가 아프게 됐고, 의사는 내게 3년이란 구체적인 기간을 제시했다. 사람은 누구나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할 때가 있다. 나에게 그런 때는 아버지가 아팠을 때였고 또, 엄마가 아팠을 때였다. 나는 엄마에게 3년 정도의 시간만 남아있단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아니, 믿으려는 조금의 노력도 하지 않았다. "암을 이겨낸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데", 엄마와 나 자신에게 습관처럼 말했다. 그리고 이민을 떠날 즈음 의사는 엄마에게 암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판정을 내렸고, 나는 약간은 가벼워진 마음으로 결국 이민을 선택했다. 재발 위험이나 전이 같은 건 전혀 생각지도 못한 채.


그러나 미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엄마는 암이 재발했단 소식을 전했고, 누나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고 알려줬다. 엄마가 아직 걷고 말할 수 있는 동안 자식들과 삶을 정리할 수 있도록 내가 빨리 한국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누나는 돌려서 말했다. 그러나 나는 이때마저도 엄마가 암을 이겨낼 거란 최면에 빠져 상황의 심각성을 모른 채 다신 없을 엄마와의 마지막 하루들을 허비하고 있었다. 누나가 병상에 누운 엄마의 사진을 전송했을 때 마침내 나는 뒤통수가 얼얼할 정도로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한국에 도착한 그날은 추석 연휴가 막 끝난 뒤였다. 엄마는 이미 걸을 수도 말을 할 수도 없는 상태였다. 그럼에도 엄마는 온 힘을 다해 몇 마디를 건네었는데, 나는 지금까지도 그 말을 잊을 수가 없다. 병실에 도착한 나는 하나라도 좋은 소식을 전하고 싶은 마음에 엄마에게 와이프가 임신했다고 거짓말을 했는데, 정신이 혼미했던 엄마는 자신이 병실의 산소를 허비하면 안 된다며 태어날 아이를 위해 산소마스크를 꺼야 한다고 말했던 것이다. 삶의 마지막 이틀마저도 오로지 자식들만 생각하던 엄마는 자신의 결혼기념일에 떠나셨다. 그날은 날씨가 참 좋았다.


나는 그렇게 스물아홉 살에 고아가 됐다. 이십 대의 시작과 끝에 부모님을 잃은 나는 날씨가 좋은 가을날엔 어김없이 그들을 떠올린다. 그리고 기억하려 애쓴다. 내가 그 둘에 의해 만들어졌고, 그들은 나로서 살아있는 거라고. 수년이 지난 지금도 부모님을 생각하면 눈물이 쏟아질 것 같지만, 이제는 나 또한 지켜야 할 자녀가 있기에 눈물을 흘리진 않는다. 깊은 슬픔을 극복할 수 없단 걸 알기에 나는 그 슬픔을 삼킨 채 다신 오지 않을 내 자식들과의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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