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월요일, 부모님 모신 곳에 가기 전에 꽃집에 갔다. 무슨 꽃을 살까 구경을 하는데 마침 작약이 눈에 띄었다. 작약은 4~5월 잠깐 피었다가 사라져서 구경하기 힘든데 마침 막 피어나려고 하는 소담스러운 꽃송이가 눈길을 사로잡아서 작약 두 송이와 하얀 데이지 한송이를 샀다. 날씨가 갑자기 무더워서인지 택시를 타고 가는 차 안에서 꽃송이가 벌어지는 모습을 보고 당황했다. 아니 뭐가 이렇게 순식간에 피어나는 거지. 작약이 영어로 Peony라 그런 건가…
부모님께 한 송이 드리고, 나도 한 송이를 가져와서 와인병에 꽂아두었더니 단 한 송이일 뿐인데 생각 보다 봉오리가 너무 커져서 왜 함박꽃이라고 하는지 수긍하게 되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이 되어 꽃을 보니 전날과 꽃색깔이 확연히 흐려진 것을 알 수 있었다. 작약을 사본 것이 처음이라 그 변화가 신기하기도 하고 허무하기도 했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 일어나 보니 꽃송이가 우수수 떨어져 있었다.
보통 꽃들은 시들어도 꽃대에서 떨어지려면 시간이 좀 걸리는데 반해 작약은 아주 찰나의 순간 피어있다가 시드는 과정 없이 꽃잎을 화끈하고 미련 없이(?) 떨구는 모습이 매력적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작약은 꽃이 피기 전 단단한 몽우리 상태로 꽤 오랜 기간 유지되는데 일단 피기 시작하면 초스피드로 진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가격이 비싼 꽃인데 생각보다 저렴하길래 반가운 마음에 덥석 구입했거늘 한순간에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지니 꿈처럼 허망하긴 하다.
심었다던 작약_유희경
네가 심었다던 작약이 밤을 타고 굼실거리며 피어나, 그게 언제 피는 꽃인지도 모르면서 이제 여름이라 생각하고, 네게 마당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면서 그게 아니면, 화분에다 심었는지 그 화분이 어떻게 허연빛을 떨어뜨리는지 아는 것도 없으면서 네가 심은 작약이 어둠을 끌고 와 발아래서 머리 쪽으로 다시 코로 숨으로 번지며 입에서 피어나고, 둥근 것들은 왜 그리 환한지 그게 아니면 지금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가르쳐주지도 않으면서, 봄은 이렇게 지나고 다시 여름이구나 몸을 벽에 붙여보는 것이다. 그러니 작약이라니 나는 그게 어떻게 생긴 꽃인지도 모르고 나도 아니고 너는 더구나 아닌 그 식물의 이름이 둥그렇게 떠올라 나는 네가 심었다는 그것이 몹시 궁금하고 또 그런 작약이 마냥 지겨운 건 무슨 까닭인지 심고 두 손을 소리 내어 털었을 네가, 그 꽃이, 심었다던 작약이 징그럽게 피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