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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sary Jul 04. 2023

오늘은 음력 5월 17일,  
엄마 생신입니다

엄마의 환한 얼굴을 다시 한번 볼 수 있다면…

2020년 9월, 엄마의 혈액검사에서 이상소견이 있어 CT 촬영을 하고 결과를 들으러 진료실에 갔더니 엄마의 여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을 들었다. 몇 주 만에 연로했지만 건강했던 부모님이 머지않아 연달아 내 곁을 떠날 것이라는 선고를 들으니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당시 엄마는 귀가 어두워서 의사가 속삭이듯 전한 이야기를 듣지 못했지만 진료실을 나서도 눈물이 멈추지 않고 흐르는 나를 보고  눈치를 채시고 내 눈물을 닦아주시면서 말씀하셨다.


“나 얼마 못 산대니? 많이 안 좋대?”


말없이 울고만 있는 내 어깨를 꽉 잡으면서 엄격한 표정을 하시더니


“울지 마, 사람은 누구나 세상에 왔으면 또 이렇게 가는 거야. 누구나 다… 괜찮아, 바보처럼 울지 마라. ”


스스로 몸이 안 좋아졌음을 알고 계셨던 건지도 모르겠지만, 아무리 노인이라고 해도 죽음 앞에 그렇게 의연할 수 있는지 지금 생각해도 엄마는 무척 강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엄마는 그날 이후로 늘 내 걱정을 했다. "네가 딱해서 어떡하니, 엄마 없으면… 아이고… " 엄마는 그런 사람이었다. 엄마는 내가 너무 딱했던 나머지 한 달 후를 기약할 수 없다는 상태였다는데 거의 1년을 더 내 옆에서 손을 잡아주고,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안아주시다가 가셨다.


그해 겨울이 시작될 무렵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는 본격적으로 엄마를 돌보게 되었다. 엄마를 두고 외출하는 것이 불가능해서 엄마가 주무시는 동안 아침 6시에서 7시 사이 1시간 정도 산에 다녀오는 것이 유일한 외출시간이었다. 그 시간에 잠에서 깬 엄마가 내가 없으면 전화를 해서 빨리 오라고 재촉을 하실 때가 있었는데 하루 1시간도 허락해주지 않는다고 야속해했다. 그때는…


음력 5월 17일, 7월 4일 오늘은 엄마 생신이다. 부모님은 두분 모두 음력 생신을 쇠느라 해마다 연초에 새 달력에 음력 날짜를 찾아서 표시를 해놓아야 잊지 않고 기억할 수 있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에도 여전히 달력에 생신 표시를 해놓는데 이번 엄마 생신은 좀 늦어졌다. 6월말만 해도 아버지와 함께 모신 수목장에라도 다녀올까 싶었는데 날씨가 너무 더워지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엄마가 살아계시다면 겨우 덥다고 엄마를 찾아가지 않을 리는 없을 텐데. 미역국이라도 끓일까, 생일 케이크라도 하나 사 올까 싶다가 그냥 라면 하나 끓여 먹고 말았다. 삶과 죽음의 차이란 이런 것인가. 쓴웃음이 나왔다.


엄마의 마지막 생신은 6월 26일었다. 단 둘이 맞은 엄마의 마지막 생신날 미역국도 끓이고, 깻잎전, 고추전도 부치고, 오이지무침, 숙주나물 무침으로 단출하기 짝이 없는 아침상을 차렸는데 엄마가 너무 맛있게 드시는 걸 보니 미안해서 눈물이 났던 기억이 난다. 연신 "너무 맛있다, 너무 맛있어!"를 연발하시던 엄마의 환한 얼굴을 다시 한번 볼 수 있다면… 이제는 엄마를 그리워하며 펑펑 우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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