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되기 힘들어도 괴물은 되지 말자
미스터리, 서스펜스, 스릴러… 이런 장르의 영화를 좋아했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에피소드들이 등장하는 <그것이 알고싶다>같은 프로그램도 즐겨 보는 편이었다. 문제는 <그것이 알고싶다>같은 프로그램은 픽션이 아니라 논픽션이라는 거다. 방송을 보는 시청자 입장에서 잔혹하게 살해된 피해자는 영화 속 등장인물처럼 소비되지만 현실에서는 10년, 20년, 그보다 더 오랜 세월이 흘러도 피해자의 죽음으로 가슴에 한 맺힌 가족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것이 알고싶다>는 미제사건의 진범을 찾는 사건들이 주로 등장하고, 실제로 진범을 찾는 성과도 있었다. 이 프로그램의 제작의도가 충실히 반영한 에피소드도 있지만 간혹 자극적인 낚시성 에피소드는 실망스러울 때도 있다. 유튜브가 레거시 미디어보다 더 활발해진 이후 각종 범죄와 사건을 다루는 유튜브 채널이 앞다퉈 개설되어 미스터리 소비자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현업에서 활약했던 형사, 프로파일러까지 유튜버로 등장하고 있다.
사건의 진실 따위는 안중에도 없고 단지 조회수만 끌어올려서 돈벌이를 하려는 일부 채널은 새로운 내용 없이 미디어에서 마르고 닳도록 소개되었던 사건들을 자극적인 멘트와 영상으로 반복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끔찍하고 참혹한 사건일수록 얼씨구나 달려드는 그들에게 피해자와 유족들에 대한 고민과 배려가 존재할까.
오래된 사건들은 사건을 다루는 방식이 매우 편협하고 조심성이 없다. 간혹 끔찍한 학대를 당하다가 학대 당사자를 살해한 피의자와 그 가족도 숱하게 소개되고 있지만 그들에 대한 시선 또한 마찬가지다.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고 살게 된 사람들에 대한 최소한의 동정심과 연민조차 없이 그저 자신들의 조회수를 올리는 도구로만 이용될 뿐이다. 감정이 없는 AI가 제작하는 게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다.
며칠 동안 택시기사 살인사건으로 시끌시끌하다. 연쇄살인의 의혹이 짙어 미디어에서 사건의 알려진 내용과 알려지지 않은 내용까지 서둘러 전달하기 위해 범죄 전문가, 변호사 등등이 앞다퉈 등장하여 섣부른 추측과 가정을 내놓고 있다. 참혹하게 희생된 피해자와 유족들에 대한 배려는 역시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다.
오랫동안 자취를 감췄던 연쇄살인사건에 대해 연쇄살인은 사라진 게 아니라 발생하기 전에 잡기 때문이라고 범죄 전문가들은 자신 있게 말해왔다. 그런 와중에 피해자가 몇 명이 될지 예측하기 힘든 사건이 터졌으니 두려움과 흥분의 감정을 대중은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언론이 나서서 누군가에게 일어난 엄청난 비극을 일종의 엔터테인먼트로 소비하는 걸 부추기지는 말았으면 한다.
범죄 피해자는 누구라도 될 수 있다. 제발 사람 되기 힘들어도 괴물은 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