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돈내산인데 택배는 왜 설렐까?
두근두근할 일이 거의 없는 일상에 유일한 두근거림을 선물하는 것이 바로 택배다. 직접 마트나 매장에 가서 쇼핑하는 걸 선호해서 매일같이 택배 상자가 쌓일 정도로 온라인 쇼핑을 이용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가끔 온라인으로 제품을 구매할 때가 있다.
옷이나 식재료는 제품을 보고 살 수 있는 매장을 이용하는 편이고, 공산품은 온라인을 이용하기도 한다. 주로 사는 품목은 일정 기간에 집중되어 있는데 청소에 꽂혀 있을 때는 청소, 수납용품을, 인테리어에 꽂혀 있을 때는 각종 패브릭 제품과 가드닝 제품을 구입한다. 사실 이런 제품들에 특별한 두근거림을 느낄 이유도 없는데 택배로 수령할 때는 이상하게 설렌다.
내돈내산임에도 불구하고 무언가를 기다린다는 건 참 설레는 감정인가 보다. 기술이 발달할수록 기다릴 일이 사라져 버리는 현대인들에게 기다리는 감정을 느낄 수 있는 택배는 참 소중하고, 기다리는 물건을 배달하는 택배원은 거의 산타 클로즈 같은 직업이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잊어버릴 만하면 등장하는 ‘택배원 지상 출입 금지’ 관련 뉴스를 접할 때마다 씁쓸하기 이를 데 없다. 주문자가 있으니 배송해주는 택배원이 있음에도 보이지 않는 곳을 이용해 달라는 주민들(특히 차량과 주차장 여건이 여의치 않음에도 손수레를 이용하라는 식의 무리한 요구를 하는 일부 아파트)을 보면 이해 당사자가 아닌 사람이 보기에도 여간 서운한 게 아니다.
예전에는 찌는 듯한 한여름이면 시원한 음료수를 건네기도 하고, 요즘처럼 추운 한파에는 따뜻한 차 한잔을 대접하기도 했지만, 택배원과 마주치지 않는 배송이 일반화된 요즘에는 그런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정을 나누던 일은 추억이 되어버렸다.
‘공감’의 영역을 ‘공감능력’으로 높이 평가하고 있지만 아주 기본적인 공감조차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아이러니한 세상이 되고 있는 게 안타깝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