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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성탈출

물과 전기가 없이 살아야 한다면...

by Rosary

며칠 전 저녁 준비를 하려고 하는데 물이 나오지 않았다. 욕실 수도를 확인해 봤지만 마찬가지였다. 물이 안 나오는 것도 문제지만 보일러도 걱정이었다. 집에 난로나 온수매트 같은 난방기구가 없어 보일러 가동이 안되면 집에서 자는 건 어려울텐데 어디 가서 자야하지… 우리 집만 물이 나오지 않는 건지, 동네가 전체 문제가 생긴 건지 확인해야 할 것 같아서 집 앞 골목에 나가봤더니 식당 주인 한분도 물이 안 나온다고 걱정하시길래 마음이 느긋해졌다. 우리 집만 문제가 아니라 동네 전체가 물이 나오지 않는 거라면 구청에서 금세 해결해주겠지 싶어서다. 예상대로 40분 만에 정상적으로 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아파트에서 생활할 때는 단수가 되더라도 관리 사무소에서 미리 사전안내방송을 하기 때문에 단수될 동안 사용할 물을 미리 받아둬서 불편이 없었지만, 주택으로 이사 오고 처음으로 갑자기 물이 나오지 않자 난감하기 이를 데 없다. 원하는 만큼 물을 마음껏 쓸 수 있다는 건 참 편하고 행복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과 전기를 아끼는 어머니와 함께 생활했기 때문에 평소에도 에너지 절약은 몸에 배어 있었다. 어릴 때부터 보고 배운 생활습관은 지금도 여전해서 채소를 씻은 물이나 쌀뜨물도 그냥 흘려버리지 않고 화초에 물을 주거나, 걸레 빨 때 사용하는 등 재활용하고, 전기요금은 매월 확인하면서 필요 이상 쓰지 않도록 점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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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한국계 호주 싱어송 라이터 사리타를 인터뷰한 적이 있었다. 그녀가 가수를 하기로 마음먹은 계기가 참 인상적이었다. 대학 시절 세계 인구의 아주 적은 일부만이 식수, 전기 등의 문명을 누린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그녀는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이런 행운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 음악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2004년 발표한 첫 앨범 <Gratitude. 감사하는 마음>인 이유다. 사리타는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것들에 감사하면서 자연과 대지를 사랑하고, 지구환경을 보호하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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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신념과 선의를 전하기 위해 가수가 되었다는 사실이 낯설고, 놀라웠다. 내가 생각했던 ‘가수’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가수 사리타와의 만남은 내가 누리는 혜택에 대해 감사하고 아껴 써야겠다는 마음을 단단하게 했다. 우리는 문명을 누리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때로는 낭비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모든 에너지를 ‘물 쓰듯’ 소비하고 있다. 충전하고 또 충전해야 사용할 수 있는 제품들은 점점 늘어만 간다. 콘센트는 쉴 틈이 없다.

이렇게 별다른 고민 없이 에너지를 소비하다가 어느 날 문명이 끝장나는 시대가 올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상상에 이른다. 등골이 서늘했던 영화 <혹성탈출. 1968>의 마지막 장면이 간혹 떠오를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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