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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맨은 오지 않는다

에린 브로코비치 소송, 30년 후 바뀐 것은 무엇인가

by Rosary

2000년 개봉한 <에린 브로코비치>라는 영화가 있었다. 줄리아 로버츠에게 아카데미 여우 주연상을 안겨준 영화로 유명하지만 20여 년이 지나고 보니 이 영화가 어떤 내용이었는지 가물가물하다. 1982년 에린 브로코비치는 스물두 살에 두 번의 이혼 후 아이 셋을 키우는 싱글맘이었다. 배운 것도 없고, 가진 것도 없지만 세상과 맞서는데 두려움도 없던 그녀는 우연히 변호사 사무실에서 잡다한 업무를 처리하는 일자리를 얻지만 주위 시선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튀는 행동으로 눈총을 받는다.

2000_4.jpg 영화에도 특별출연한 에린 브로코비치의 모습

모처럼 얻은 직장이라 열심히 일하던 그녀의 눈에 수상한 문서더미가 들어온다. 그녀가 살고 있는 캘리포니아 힝클리 주민들이 암을 비롯한 질병에 시달리는 의료 기록을 보고 뭔가 잘못되었음을 알게 된다. 이날 이후 에린 브로코비치는 저돌적으로 이 일에 뛰어들어 마을을 폐허로 만드는 퍼시픽 가스전력(PG&E)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여 4년 동안 지루한 법정다툼을 한 끝에 1992년 3억 3천만 달러(한화 약 4천억 원)의 천문학적인 배상금을 받아낸다.


완벽하게 해피엔딩 같은 이야기지만 30여 년이 흐른 지금,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소송에서 패한 퍼시픽 가스전력이 방제를 하겠다고 한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힝클리에 있는 주택들을 전부 사들여서 불도저로 밀어버렸다. 마을은 아무도 살지 않는 사막이 되어버렸고, 땅밑에는 독성물질이 그대로 묻혀있다. 소송에서 배상금을 받았지만 상당수의 주민들은 질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2020.jpg 에린 브로코비치의 책 『슈퍼맨은 오지 않는다』2021

보잘것없는 변호사 사무실 말단 직원이었던 싱글맘 에린 브로코비치의 인생은 완전히 바뀌었지만 물이 오염되는 상황은 바뀐 것이 없다. 거대기업과의 소송에서 승리를 쟁취한 야심만만했던 에린 브로코비치는 이제 60대에 접어들었지만 그녀의 싸움은 현재진행형이다. 미국 전역에 독성물질에 오염된 상수도와 토양으로 고통받는 사람이 2억 명에 달한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비슷한 시기였던 1991년 낙동강 페놀 불법방류로 영남지역의 식수원을 오염시켰던 일이 있다. 두산전자가 고작 500만 원의 정화비용을 아끼기 위해 30톤의 페놀을 방류하여 국민들을 위험에 빠뜨렸지만 피해보상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부도덕한 기업의 행태로 미루어볼 때 페놀 방류가 그 당시 한번뿐이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해 인과관계를 입증할 수 없다는 이유로 영업정지 20일, 대구시에 13억 5천여만 원, 주민들에게 11억 원의 배상이 이루어졌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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