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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sary Nov 18. 2022

花樣年華

X세대가 기억하는 2003년 한국영화

17일 밤 KBS 아카이브 모던 코리아 한국영화 화양연화를 보고 추억이 새록새록했다. 그 시절 업계 종사자였던 까닭에 프로그램에서 소개한 67편의 한국영화 중 60편 이상은 보지 않았나 싶다. 


2003년은 정말이지 한국영화 화양연화라고 부르기 손색이 없는 해였다. 새해 벽두를 여는 대작 <이중간첩>이 다소 기대에 못 미치는 평가와 흥행성적으로 시작은 불안했지만 4월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는 정말 뭐 이런 영화가 있나(좋은 의미에서) 싶은 신선한 충격을 주었고, 이어 개봉한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은 흥행과 비평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며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 “날 보러 와요” 연극을 영화화한 <살인의 추억>은 화성 연쇄살인사건이라는 미제사건을 다루고 있지만, 블랙 코미디의 진수를 보여주며 “봉준호”라는 이름을 관객에게 각인시켰다.  

7월 개봉한 권칠인 감독의 <싱글즈>는 지금은 우리 곁을 떠난 장진영, 김주혁의 매력을 최대로 끌어올리며 잘 만든 로맨틱 코미디의 모범을 보여주었고, 광복절 개봉한 임상수 감독의 <바람난 가족>은 가족이 해체되는 모습을 도발적으로 풀어내며 문제작으로 등극했다. 문소리, 윤여정 두 여배우의 연기가 돋보였는데 특히 윤여정은 이전까지 김수현 드라마의 따따부따 캐릭터로 익숙했지만 이 영화에서 죽음을 앞둔 남편을 뒤로하고 초등학교 동창생과 바람난 환갑의 시어머니로 그녀 특유의 냉소적인 연기를 선보여 호평을 받았다. <바람난 가족>은 윤여정에게 탤런트가 아닌 영화배우의 정체성을 되찾아주었고, 70대 중반 나이에 아카데미 무관의 동갑내기 헐리웃 배우  글렌 크로즈를 따돌리고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조연상에 오르는 교두보를 마련한 작품으로 기억될 만하다.

9월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은 김기덕 특유의 불편함을 버리고 숲 속 암자의 아름다운 사계절과 함께 동자승, 청년승, 노승의 에피소드를 통해 불교적 세계관을 그려내며 호평을 받았다. 10월 이재용 감독의 <스캔들-남녀상열지사>는 “욘사마 열풍”을 이끈 배용준의 출연으로 화제가 되었으며 아름다운 영상미로 관객의 시선을 끌었다. 11월에는 설명이 필요 없는 <올드보이>가 개봉했는데 파격적인 설정과 충격적인 반전으로 언론시사회를 열광의 도가니로 이끌면서 박찬욱 감독이 2004년 칸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코미디, 드라마, 액션, 멜로, 애니메이션까지 다양한 장르에서 수준 높은 작품들이 쏟아져 나온 2003년 대미를 장식한 영화는 강우석 감독의 <실미도>였다. 잊힌 북파공작원 문제를 수면으로 끌어올려 논란이 되기도 했지만 천만 관객 돌파라는 엄청난 흥행을 기록했다. 스크린쿼터 폐지에 저항하는 영화인들의 시위가 이어졌던 2003년이 한국영화 역사상 가장 화려한 전성기의 해로 기록될 것을 그 누가 알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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