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들의 체벌이 사라진 자리에 교권이 바로 섰다면...
학창 시절을 돌이켜 생각해 보면 불운하게도 참스승이라고 할만한 선생님을 만난 기억은 없다. 그렇지만 다행스러운 것은 악덕 교사에게 시달린 기억도 없다는 것이다. 요즘은 교사가 학생에게 미치는 영향이 예전 같지 않은 것이 사실이지만 내가 자랄 때에는 학교에서 교사의 영향력이란 건 절대적이었다.
무색무취였던 내 학창 시절의 시작은 꽤 괜찮은 편이었다. 인생의 첫 번째 선생님이었던 초등학교 1학년 담임 선생님이 교사생활 시작한 지 몇 년 되지 않아 순수하고 어린 제자들에게 애정도 많은 분이었다. 칭찬으로 꽉꽉 채워 써주신 생활통지표 교과학습발달상황이나, 방학 때 보낸 편지에도 정성스레 보내주신 답장은 지금도 간직하고 있을 정도로 학교생활 시작의 큰 힘이 되어주었다.
12년 동안 만났던 선생님 가운데 가장 오래된 첫 번째 선생님만큼 내게 좋은 영향을 주었던 선생님은 없는 것 같다. 아니 선생님들은 대체로 학생들의 가정환경, 성적에 따라 차별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학생들 모두가 느낄 정도로 대놓고 차별하느냐, 은근히 차별적 태도를 가지느냐의 차이가 있었을 뿐 선생님들의 공정하지 못한 태도는 학생들에게 알게 모르게 상처를 주었다.
그런 경험도 한두 번 일 때나 상처지, 여러 차례 반복되면 딱지가 생기고, 둔감해진다. 해를 거듭할수록 선생님에게 기대하는 바가 없기 때문에 크게 상처받는 일도 사라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이 저지른 잘못에 교사가 과도한 체벌을 가하는 일은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잊히지 않는 부당한 권력행사이고 폭력으로 기억에 남아있다.
내가 다닌 중학교는 ‘교육을 통한 선교’라는 설립 목적으로 세웠다는 전형적인 기독교 재단 사립학교였고 매주 금요일 오전 9시에 전교생이 예배에 참석해야 했다. 10대 학생들이 1시간 동안 정숙함을 지키면서 예배를 본다는 건 쉽지 않은 도전이지만 3년 동안 예배는 비교적 평온하게 진행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배 시간에 소곤소곤 수다 정도는 눈감아줘도 될 것 같은데 이 학교 교사들은 가차 없이 그 수다마저 응징했다. 예배 시간이 끝난 후 교사에게 지적받아 이름표를 빼앗긴 학생들은 강단 위에 불려 나와 매타작을 당하는 것이었다. 체벌을 담당했던 체육교사는 손목의 시계를 풀고 일렬로 늘어선 학생들의 귓방망이를 후려치는 장면이 하느님을 기쁘게 하는 게 설립 목적이라는 학교에서 매주 벌어지는 풍경이었다.
철없는 소견으로도 떠들었다는 이유만으로 그렇게까지 맞을 일이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 시대에는 통용되는 수준이었다. 도저히 사라지지 않을 것 같던 교사들의 폭력적인 체벌은 카메라가 장착된 휴대폰이 보급되면서 사라졌다. 교사의 권위라는 말 자체가 어색해진 지금의 시각으로 돌아보면 믿을 수 없는 일들이 당시에는 대수롭지 않게 벌어지곤 했었다. 하지만 야만의 시대가 완전히 막을 내렸다고 볼 수 있을까? 지금의 학교에서는 학생들을 좀 더 정교하게 고립시키는 야만행위를 벌이고 있는 건 아닌지 들여다봐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