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연우 개인전 "혼자보단 둘, 둘보다는 셋" 전시 서문
<문턱 앞에 선 사람>
사람은 어느 나이에 이르면 사랑의 매체, 혹은 그것이 깃들 수 있는 구조를 고민하게 된다. 처음에는 언어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랑을 말로 꺼내서 발음하고, 그 온기 속에 오래 머물고자 한다. 서툰 말들은 여린 마음속에서 조금씩 영글어가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것은 문자로 표현되고자 한다. 종이 위에서 자리를 확보해 굳어지고, 편지의 형태로 전달되고자 한다. 마치 상형문자처럼 더듬어 해석해야 할 미지의 대상 앞에서, 나 역시 상형문자에 가까운 감정의 더미를 선물처럼 건네게 된다. 그것은 타인에게 받아들여지거나 되돌아오고, 마치 이 자리에 없었던 것처럼 제 자취와 흔적을 순식간에 감추기도 한다. 몇 차례의 단절과 훼손이 이어지고, 이제 나의 마음은 인칭이라는 개념으로 구분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 자리에, 경계에 다다른 사람이 있다.
인칭과 인칭 사이에 혼자 비스듬히 서 있는 사람.
그는 헐거워진 내면 안쪽을 들여다보고 있다.
사실 사랑의 구조는 환영에 가까운 것이다. 그러나 이곳에서 표현되는 ‘너’는 꼭 오래된 덤불처럼 보인다. 울창하게 우거진 자연처럼, 내가 가로질러야 할 숲처럼 보인다. 가장 사적이고 고독한 면을 들여다보려는 시도와 한걸음 디딜 수 있는 자리에 대한 모색. 분명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문턱이 있다. 때론 너무 아득해서 넘어설 수 없는 협곡이 있다. 그러나 내가 ‘나’라고 믿어왔던 마음의 구조는 빼곡하다가도 잠시 느슨해지고, 간혹 헐거워진 틈 사이로 조금씩 새어 나오다 흘러넘치는 감정들은 이제 직물로서 궁리 되고 대변된다. 물감의 속성을 얻어 면을 메우고 결을 이루며 일렁인다.
지금까지 태피스트리라는 장르로 점, 선, 면을 활용해 내면의 풍경을 구현해왔던 윤연우 작가는 이제 인칭과 인칭 사이를 열어젖히고자 한다. 1인칭의 바깥으로 넘어서려는 이 시도는 직물과 자기, 평면화를 통해 다양하게 시각화된다. 작품들은 마치 한 권의 책 속에 연쇄되는 풍경들처럼 유기적이다. 이것이 한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토로이기 때문이다.
그가 표현하는 색은 무한히 분출되는 타래처럼 제 몫의 풍경을 이루다가도, 녹음이 속삭이는 빛처럼 스스로 고요해진다. 일정한 칸을 할당받은 점처럼, 성실히 또 아득하게 확보해나가는 2인칭의 자리. 그 안에서 너는 이제 종횡으로 꿰어지는 풍경이 된다. 오랫동안 마주앉아 듣고 싶은 이야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