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토머스 트웨이츠는 『알프스의 염소들』을 성경처럼 옆구리에 끼고 다녔다. 토스터 프로젝트에 이은 염소 프로젝트를 가동한 것이었다. 골치 아픈 인간의 삶에서 벗어나 알프스 목장을 누리는 염소로 자유롭게 살겠다고. 토머스 트웨이츠는 염소 목장과 수의대를 뻔질나게 드나들며 염소의 해부학적 특성과 생태를 조사했고, 염소의 관절 구조를 모방한 의족을 제작하겠다면서 의료기기 업체와 협업을 시작했다. 또 알프스에 있는 염소 목장들에 프로젝트 참여 가능성을 타진하는 이메일을 보냈으며, 염소 프로젝트에 필요한 경비를 지원받기 위하여 프로젝트 계획서를 쓰고 서류를 떼러 다녔다. 그가 염소로 변신할 준비를 하는 동안, 나는 아기 똥이 되기 위하여 똥의 구성 성분을 연구하고 살아있는 인간의 육체를 똥으로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대장의학과와 식품영양학과의 자문을 받고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아기 똥이 되어서 변기를 타고 내려가 정화조에 머물렀다가 오수 처리장을 떠도는 삶을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다만 의미가 사라진 이 세계를 지배하는 유일한 원리인 ‘우연’이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을 똑똑히 알아듣기는 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한 말씀 해 달라고? 이상적인 삶이 뭐고, 네 존재의 의미는 또 뭐냐고? 그건 바로 똥이란다! 뭐 이런 식으로 날 우롱했다고밖에 볼 수 없지 않아?”
나는 염소 의족을 팔에 끼고 나타난 토머스 트웨이츠에게 투덜거리듯이 말했다.
“그래, 똥이 되어 보라고는 나도 차마 못 하겠다.”
토머스 트웨이츠는 염소 의족을 낀 손을 까닥거리면서 말했다.
“근데 소설을 쓸 수는 있잖아. 로트만 헌책방에서 네가 눈을 감고 고른 책이 『아기 똥의 여행』이 아니라 다른 책이었다면 어땠을지 말이야.”
토머스 트웨이츠는 염소 의족에 정신이 팔려서 건성건성 아무렇게나 말했다. 그런데 책을 재현하는 삶을 사는 인물에 대한 소설이라, 나쁘지 않은 것 같네. 다음 날 나는 다시 로트만 헌책방을 찾았다. 지난번과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어린이 책 코너를 피하려 책방 안으로 깊숙이 걸어 들어갔다. 그러다가 책 먼지가 콧구멍을 간질여 재채기가 나왔을 때, 에취, 하는 소리와 함께 그 자리에 멈추어 섰다. 그리고 책장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렇게 해서 내가 고른 책은 김우중이 쓴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였다. 맙소사. 손바닥에 땀이 맺혔다. 글로벌 경영인이 되자고 세계를 떠돌면서 탱크 같은 세탁기를 만들어 팔고 싶지는 않은데, 아니 지금 세계 경제 상황이 탱크 같은 세탁기를 팔아서 성공하기에는 무리가 있는데, 아하 망하는 것까지 자동으로 재현이 되는 건가. 나는 재빨리 책을 도로 꽂아 넣고 손을 털었다. 손을 털면 방금 있었던 일이 없었던 일이 되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리고 다시 눈을 감았고 책장을 더듬었다. 이번에는 홍정욱의 『7막 7장』이었다. 이건 또 무슨, 이제 와서 하버드라도 가라는 건가, 아니면 아버지를 영화배우로 만들라는 건가. 나는 책을 아무렇게나 밀어 놓고 또 손을 털었고, 눈을 감았다. 그렇게 책을 뺐다 꽂기를 반복해서 내가 고른 것은 『어린 왕자』, 『가시고기』, 『개미』 같은 책들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손바닥이 얼얼해서 더 이상 책을 뽑을 수 없어졌을 때 나는 허탈하게 책방을 나왔다.
그날 밤 나는 토머스 트웨이츠와 로트만 헌책방에 가는 꿈을 꾸었다. 어제 그와 나누었던 이야기를 다시 한번 더 나누었고 다시 또 눈을 감고 책을 골랐다. 토머스 트웨이츠는 이번에도 『알프스의 염소들』을 골랐다. 그는 제자리에서 폴짝 뛰면서 기뻐했고 팔과 다리를 반으로 접어 사족보행 자세를 취했다. 그러자 그는 한 마리 건강한 염소가 되었고, 음메, 하고 기운찬 울음을 토해내며 책방을 빠져나갔다. 나는 토머스 트웨이츠의 뒷모습을 보면서, 그러니까 경쾌하게 춤추는 그의 작은 꼬리를 보면서, 내가 고른 책을 꽉 움켜쥐었다. 손바닥에 뜨거운 기운이 전해졌다.
“그래서 그게 뭐였는데?”
토마스 트웨이츠가 물었다. 염소로 한 달 살기를 위해 알프스 목장으로 떠나는 그를 배웅하는 길이었다. 꿈에서 내가 손에 쥐고 있던 책은 일기장이었다. 검정색 비닐 표지가 덮인, 클래식한 디자인의 일기장. 그러니까 나는 일기장에 적힌 대로, 일기장을 따라서 살게 되는 것이다. 토마스 트웨이츠는 내 말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는데, 그는 옥수수수염으로 만든 염소 가죽 모자를 뒤집어쓰고 있어서 움직일 때마다 고소한 냄새를 풍겼다.
“일기장이라, 그걸 어디서 구하지?”
“그게 진짜 중요한 거야.”
나는 가방에서 검정색 비닐 표지가 덮인 일기장을 꺼냈다.
“뭐야? 어디서 구한 거야?”
토마스 트웨이츠가 눈을 부릅뜨고 격앙된 목소리로 물었다.
“왜 놀라는 거야? 알파문구에서 샀어. 뭐, 드림디포에도 있겠지만. 중요한 건 이게 단순한 일기장이 아니라 셀프로 구원받을 수 있는 장치라는 거야.”
“무슨 소리야?”
“들어 봐. 소설을 쓰려면 일단 일기장을 소설 속으로 던져 주어야겠지. 그러려면 이 일기장부터 채워야 할 거고. 여기서 나는 일기를 쓰고 저기서 나는 일기장을 줍고 일기에 적힌 것을 그대로 재현하는 삶을 사는 거지. 그렇게 내 삶은 두 번 반복되는 거야. 현실에서 한 번, 소설에서 또 한 번. 소설의 구성에 따라서는 영원히 반복되도록 만들 수도 있어. 그렇게 되면 내 삶은 일회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반복되는 거야. 말하자면 영원회귀랄까.”
“영원회귀라고? 그게 구원이라는 거야? 영원회귀가?”
“그거야 당연하지.”
나는 검정색 비닐 표지 일기장을 쓰다듬었다. 이 일기장을 성경 말씀처럼 끼고 다닐 소설 속 나를 생각하니 기분이 야릇했다.
…그래서 영원회귀 프로젝트가 어떻게 되었냐고? 어떻게 되었냐면, 잘되지 않았다. 이쯤 되면 잘되지 않는 게 당연한 것 같기도 하지만 그게 다 이유가 있었다. 계획대로 나는 일기를 계속 썼지만, 소설은 시작도 하지 못했다. 왜냐면 일기는 여전히 연재 중이어서 완결된 삶을 보여 주지 못했고, 완결되지 않은 일기장을 헌책방에 넘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