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상희 Nov 19. 2022

[중편소설] 소설 없는 소설(10)

12) “이건 너무 레디메이드 아니야? 소설이 레고 블록도 아니고.”


 토머스 트웨이츠가 말했다. 그는 ‘토스터 프로젝트’ 이후에 슬럼프에 빠졌고 그래서 우울하다고 말했는데, 내가 쓴 소설에 대해 악평을 하는 그의 입가에는 미소가 감돌고 있었다.


 “레고 블록 같은 레디메이드 소설을 쓰려고 했으니까 그렇지. 원래 창조는 기존의 것을 새롭게 배치하는 데서 나오는 거야.”


 “으음. 패러디든 패스티시든, 그런 건 이제 낡았어.”


 나는 토머스 트웨이츠의 말이 좀 짜증스러웠다.


 “리얼리즘은 더 낡았는데 왜 뭐라고 안 해?”


 “그거야 뭐….”


 나는 토머스 트웨이츠와 더 이상 입씨름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가 저런 말을 하는 이유를 알았기 때문이다. 토머스 트웨이츠는 아직도 토스터 프로젝트의 성공에 도취되어 있는 것이었다. 토스터 프로젝트는 토스터를 원재료에서부터 직접 만드는 프로젝트인데, 그는 토스터를 만들겠다고 구리를 직접 캐러 돌아다니기까지 했다. 몇만 원밖에 안 하는 조그만 토스터에는 무려 사백여 개의 부품이 들어 있었고, 원재료부터 직접 만들어 낸 수제 토스터의 생산 가격은 무려 이백만 원이 넘어서, 그 조잡한 토스터는 소비와 환경과 노동의 문제를 담고 있는 문제적인 토스터로 전시되었고, 심지어는 예상 밖의 큰 성공을 거두기까지 했다. 그래서 토머스 트웨이츠가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은 분명했다. 나는 토스터 하나 만들려고 비행기를 몇 번이나 탔는데 너는 방구석에 앉아서 남의 소설이나 가져다가 뭘 하는 거냐, 뭐 이런 것이겠지.


 “아니, 다른 소설들이 그냥 네 소설을 위한 재료로만 사용되는 것 같아서. 사실 며칠 전에 헌책방에 갔었거든. 그 왜 있잖아. 우리 어렸을 때 자주 다녔던 로트만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헌책방.”


 토머스 트웨이츠는 로트만 헌책방에 갔던 이야기를 주절주절 늘어놓았다. 로트만은 오래된 햇볕과 먼지가 묻은 낡은 책들에 파묻혀 반쯤 눈을 감고 있었다. 토머스 트웨이츠가 로트만에게 인사를 건네자 그는 눈꺼풀을 조금 꿈틀거렸는데, 토머스 트웨이츠를 알아보고 그런 것은 아니었다. 다만 로트만은 마른 입술을 바르르 떨면서 천천히 자기 안에 고여 있던 말들을 내뱉기 시작했다.


 “책에는 오로지 진실만이 기록되어 있다네. 아무리 거짓을 기록하려고 해도 그럴 수가 없다네. 왜냐면 인간은 진실을 담은 문장만을 떠올릴 수 있기 때문에, 진실이 아닌 것은 상상할 수조차 없기 때문이라네. 그게 뇌과학적으로 그렇다네. 신학적으로 그렇다네. 사회학적으로 그렇다네. 그래서 나는 우리 인류의 역사를 다시 생각하고 있지. 나는 신이 존재했다고 믿네. 제우스와 헤라와 예수와 야훼와 알라와 브라마와 시바와 같은 그런 신들이 모두 존재했다고 믿네. 못된 장난을 하는 마귀와 마녀가 지배했던 시절도 있었지. 마녀를 붙잡아 불태우지 않았더라면 큰일이 났었을지도 모르지. 물론 애먼 여자들을 잡아다 마녀로 몰았다고도 믿지만. 그러나 어찌 되었든 신은 지금은 존재하지 않지. 신은 과거에는 존재했지만 지금은 존재하지 않지. 프리드리히 니체가 신의 사망을 선언한 순간에, 사람들이 그 선언을 따라 읊조린 순간에 죽어 버렸기 때문이지. 그래서 이제 우리는 신을 잃었고….”


 토머스 트웨이츠는 로트만의 우스꽝스러운 장광설에서 알 수 없는 감동을 받았다. 로트만은 수십 년간 헌책방을 운영했는데, 신실하게 자신의 일을 했고 그래서 자신의 손을 스쳐간 모든 책들을 믿었다. 


 “몰라. 이상하게 마음이 벅차오르더라고. 토스터 프로젝트 때문에 마음에도 없는 거창한 이야기를 떠들고 다녀서 그런지도 모르지.”


 토머스 트웨이츠는 말을 마치고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의 성공에 도취되어 남을 깔아뭉갤 생각 따위는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사람처럼. 토머스 트웨이츠가 다시 말을 이었다. 


 “로트만의 말을 듣고 나니까 거기 있는 오래된 책들이 좀 다르게 보였어. 먼저 산 사람들의 삶과 말이 압축된, 거대하고 숭고한 무덤처럼 보였다면, 뭐 물론 과장이겠지. 그렇지만 한번쯤은 로트만처럼 그들이 한 말을 믿고 그 말에 따라서 살아 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 않나… 싶더라고.”


 토마스 트웨이츠가 입맛을 다셨다. 나는 그를 쳐다보면서 고개를 끄덕이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을 말했다. 


 “그럼 책에 따라서 한번 살아 보는 건 어때? 책을 믿고 책에 따라서 책을 재현하면서 사는 거지.”


 “무슨 책?”


 “글쎄.” 


 나는 멀뚱히 토머스 트웨이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는 아무 생각이 없어 보였는데 아무 생각이 없는 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그것은 당연했는데, 무슨 책을 따라 살아야 할지 고르려면 신념 같은 것이 있어야 했지만 우리는 그런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관심이 있는 것이라면,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기는 것이라면, 자아를 실현하고 사회적 인정을 받고 뭐 그런 것일 텐데, 그것조차 사실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우리는 거대한 허무주의와 냉소주의의 시대를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의미가 없는 것, 필연적인 이유가 없는 것, 다만 우연적인 것. 그런 것밖에 없지 않나.


 “로트만 헌책방에 가서 눈을 감고 거기 있는 책들 중에서 아무 책이나 고르는 건 어때? 그리고 그 책에 따라서 사는 거지.”


 그리 깊이 고민하고 한 말은 아니었지만 말을 뱉고 보니 그게 또 그럴싸하게 느껴졌다. 토머스 트웨이츠도 같은 느낌인 듯 하이파이브를 하자고 손바닥을 내밀었는데, 뭐 그럴 것까지는 없을 것 같아서 고개를 내저었다. 어찌 되었든 우리는 서둘러 로트만 헌책방으로 갔다. 로트만은 헌책방 입구에 있는 의자에 앉아 안경을 코에 걸치고 책을 읽으며 졸고 있었다. 나는 로트만을 십 년 만에 보는 것이었는데, 그는 그때보다 조금도 늙지 않은 것 같았다. 마치 백 년 전부터 혹은 이백 년 전부터 내내 저 얼굴로 헌책방을 지키고 있었다는 듯이. 


 “자, 가 볼까?”


 토머스 트웨이츠와 나는 눈을 감고 더듬더듬 책장을 더듬으며 각자의 운명이 적힌 책을 찾았다. 점자를 읽듯이 손가락 끝에 정신을 집중하고 책등을 쓸어 만졌다. 뻣뻣하고 눅눅하고 성기고 단단한 종이의 질감을 느끼면서, 또 비에 젖은 박스나 콧물이 묻은 휴짓조각 같은 것을 연상시키는 냄새를 들이마시면서, 나는 나의 미래를 감각해 보려 애썼으나,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골랐어?”


 토머스 트웨이츠가 물었다. 딱히 뭘 고른 건 아니었지만 뭘 고를 수 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때 손에 걸린 책을 고른 걸로 하기로 했다.


 “골랐어.”


 “그럼, 이제 눈 뜨는 거다. 하나 둘 셋.”


 우리는 눈을 떴고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토머스 트웨이츠는 이내 자신이 고른 책으로 시선을 돌렸는데, 그가 고른 책은 『알프스의 염소들』이라는 제목의 그림책이었다. 토머스 트웨이츠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책을 펼쳤다. 광활한 알프스 목장에서 풀을 뜯는 염소들의 모습이 얼핏얼핏 보였다. 알프스의 염소라, 그러고 보니 토머스 트웨이츠와 내가 서 있는 곳은 어린이 책 코너였다.


 “넌 뭐야?”


 토머스 트웨이츠가 들뜬 표정으로 물었다. 나는 내가 고른 책을 들어 보였다. 토머스 트웨이츠는 침을 뿜으며 웃음을 터뜨렸다. 음, 불길한 반응이군. 어디 보자, 나는 내 손에 들린 책을 쳐다보았다. 그 책은 그러니까… 『아기 똥의 여행』이었다.


이전 09화 [중편소설] 소설 없는 소설(9)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