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이렇게 폴더 속에 처박혀 잊히는 소설들이 자꾸 생기는 이유 중 하나는 문체 때문이다. 문체는 정말 골치 아픈데 내 기분에 따라서 문체가 너무 달라지기 때문이고 기분에 따라서 이전에 써 놓은 문장이 다른 목소리로 읽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미 썼던 문장을 가다듬다 보면 모든 문장을 새로 써야 하고 그러다 보면 점차 모든 문장과 이야기에 대한 회의가 몰려오기 시작한다. 이럴 때 내가 나와 타협하는 방법은 글꼴을 계속해서 바꾸는 것이다. 바탕체로 읽었을 때는 지루해 보였던 문장이 고딕체로 읽으면 깔끔해 보이고, 그러다 문장이 너무 단순한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면 돋움체로 바꾸어 보는데, 그러면 똑 부러지는 인상이라 괜찮아 보이고, 그러나 다시 보면 문장이 뚝뚝 끊기는 것 같아서, 글꼴을 또 바꾸는데, 정신을 차려 보면 양재샤넬체나 양재와당체 같은 그림이 새겨져 있어 글자를 제대로 읽을 수조차 없게 된다. 그제야 나는 내가 뭘 하고 있나 한심해하면서 글꼴 바꾸기를 그만둔다.
레몽 크노는 컴퓨터로 글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한심한 짓은 하지 않았고 대신 버스와 광장에서 같은 남자를 두 번 마주친다는 별것 없는 일화를 아흔아홉 가지 문체로 변주해 『문체 연습』이라는 책을 썼다. 나는 이 책을 프랑스어본으로 읽은 것이 아니라 번역본으로 읽었기 때문에, 이 책을 레몽 크노의 문체 연습이라고 보아야 할지 번역자인 조재룡의 문체 연습이라고 보아야 할지 모르겠으나, 시제를 바꾸는 단순한 작업에서, 희곡, 고문, 동요 투로 바꾸는 걸로 모자라서, 맛이나 소리로 표현해 내고, 소네트에 집합론에 기하학에 난리도 아니었다. 아니 이걸 이렇게 쓰나, 기가 막혀서 깔깔거리다가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쯤에는 와하하 만세! 를 외치지 않을 수 없었다. 레몽 크노 만세! 조재룡 만세! 소설 만세!
조재룡이 역자 해설에서 인용한 바에 따르면, 귀스타브 플로베르는 이렇게 말했다. “아름다운 주제도 추악한 주제도 존재하지 않는다….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가까스로 밝혀낼 수 있을 뿐이며, 문체 오로지 그 자체만이 사물들을 바라보는 절대적인 방법이다.”1)
현대 소설의 아버지가 그렇게까지 말했다는데, 그의 조언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가 있나. 이야기가 문제가 아니라 정말로 문체가 문제였을지도 모르니까. 그래서 이상한 것 같아서 포기하려던 소설의 도입부를 다른 문체로 고쳐 써 보기로 했다.
―객관적인 이야기
절두산 성지를 산책하려고 한강변을 따라 걷는데 유람선 한 척이 양화철교를 통과해 다가오는 것이 보인다. 하얀색 삼각돛 두 개를 단 유람선은 빠른 속도로 잠두봉 선착장에 안착한다. 나는 잠두봉 선착장 앞에서 유람선을 올려다본다. 비둘기들이 낮게 날아 시야를 어지럽히지만 유람선 갑판에 중절모자를 쓴 남자가 보인다. 그는 부산스럽게 주변을 살피다가 검정색 트렁크를 들고 배에서 내린다. 작고 야윈 남자는 콧수염을 길렀고 동그란 안경을 썼다. 나는 그가 페르난두 페소아라는 것을 알아본다.
―머뭇머뭇
절두산 성지에 가는 길이었던가, 선유도 공원에 가는 길이었던가, 정확하지 않지만, 한강변을 따라서 걷고 있었는데 아니 뛰고 있었나…. 그런데 유람선 한 척이, 그러나 그것을 유람선이라고 할 수가 있나, 하얀색, 아니 검정색이었던가, 삼각돛 두 개를 달고 있는데, 하나인지도 모르는데, 제법 빠른 속도로, 유람선이 다 그렇게 빠른지도 모르겠지만, 잠두봉 선착장에, 그게 절두산 선착장이었는지도 모르겠네, 아무튼 도착한다. 나는 선착장 앞에서 유람선을 쳐다보는데, 비둘기들이 많고, 아니 어쩌면 비둘기가 아니라 기러기였을지도! 유람선 갑판에 남자가 보이는데, 중절모자를 쓰고 있나, 아니면 검정색 트렁크를 머리에 이고 있나, 정확하지 않지만 검정색 무언가가 머리통 위에 있고, 남자는 배에서 내린다. 그는 키가 작고 말랐는데, 아니 말라서 작아 보였나, 그랬을지도. 콧수염을 기른 것은 분명하고, 그러나 턱수염이 있는지는 모르겠네, 안경을 썼던 것 같은데, 안경이 동그랬나, 네모났나. 나는 그 사람을 아는 것 같은데, 이름이 뭐였더라, 페르난두 뭐였던 것 같은데, 뭐였더라, 페페….
―정확하게 따져서
절두산 성지를 산책하려고(산 척하려 했다는 것이 아니고) 한강변을 따라(한강변을 따라했다는 게 아니고) 걷는데, 유람선 한 척이(유랑선 한 척이 아니라) 양화철교를 통과해(한강철교도 통과했겠지만 정확하지는 않고) 다가오는 것이 보인다. 하얀색 삼각돛(검정색은 아니고 사각돛도 아니고) 두 개를 단(두 마리의 개를 매달았다는 게 아니고) 유람선은 빠른 속도로(바른 손 뒤로가 아니라) 잠두봉 선착장(상암 선착장으로 오해해서는 곤란하고)에 안착한다(착하지 않다는 게 아니다). 나는 잠두봉 선착장 앞에서(날고 있는 잠두봉 선착장이 아니고) 유람선을 올려다본다(유람선에 올라간 것은 정말이지 아니다). 비둘기들이(기러기들은 아니고) 낮게 날아(낮에 난다는 것은 아니고) 시야를 어지럽히지만(어질렀다는 것은 아니고) 유람선 갑판에(유람선에 가판을 벌였다는 것이 아니라) 중절모자를(중이 절모자를 썼다는 것은 아니고) 쓴 남자(씁쓸한 남자라는 것이 아니고)가 보인다. 그는 부산스럽게(부산광역시를 연상시킨다는 것은 아니고) 주변을(난데없이 주번이 아니고) 살피다가 검정색 트렁크를(트렁크 팬티를 말하는 것은 아니고) 들고 배에서(가슴 아래 배를 말하는 것은 아니고) 내린다.(지퍼를 내린다는 것도 값을 내린다는 것도 아니다.) 작고(돌아가셨다는 것이 아니고) 야윈 남자는 콧수염(턱수염은 아니고)을 길렀고(길을 냈다는 건 아니고) 동그란 안경을 썼다.(머리에 썼다는 것은 아니다.) 나는 그가(그가 날고 있다는 것은 아니고) 페르난두 페소아(배를 탄 두 명의 배수아는 아니고)라는 것을 알아본다.(조사를 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이게 문체 연습이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식으로 계속 가다가는 정말로 바틀비가 될 것 같았다. 게다가 내가 언제부터 아버지 말을 잘 들었다고 삼촌이 쓴 문체 연습장을 흉내 내고 있나. 나는 긴 한숨을 내쉬고 플로베르의 말을 고쳐 썼다.
아름다운 주제도 추악한 주제도 존재하지 않는다. 아름다운 문체도 추악한 문체도 존재하지 않는다. 문체는 그저 문체일 뿐이다. 사물을 절대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것은 소설을 쓰는 행위 그 자체다.
1) 레몽 크노, 『문체 연습』. 문학동네. 16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