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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희 Nov 19. 2022

[중편소설] 소설 없는 소설(7)

9) 자기 자신에게 집착하면서 완성하지도 못할 글을 자꾸 쓰는 것으로 따지면 페르난두 페소아를 빼놓을 수 없다. 페르난두 페소아는 자기 안에서 수십 개의 이름을 끄집어냈는데, 그 이명들은 각자 고유한 삶의 스토리가 있었고 모두 다른 스타일로 글을 썼다. 페소아는 진정 자기 자신이 되는 데 골몰하며 자기 자신만을 숭배했고, 타인이 자신과 같은 영혼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어 했다. 이 과도한 자의식은 많은 현대인들의 내면에 들끓고 있는 것이라서 페르난두 페소아의 존재를 아는 사람치고 이 사람을 동시대인 혹은 영혼의 친구라고 느끼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 같다.

 

 페르난두 페소아는 여섯 살 때부터 이명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그가 만든 첫 번째 이명은 슈발리에 드 파였다. 슈발리에는 페소아에게 애정 어린 편지를 보냈고, 페소아는 슈발리에의 생일을 달력에 적어 놓았다. 페소아는 슈발리에를 비롯한 이명들의 존재가 너무나도 생생하게 느껴져서 그들이 어떤 얼굴로 어떤 행동을 하는지가 눈앞에 보일 지경이라고 했다. 밀란 쿤데라는 자기 소설 속의 인물들은 실현되지 않은, 다만 가능성으로만 남아 있는 자기 자신으로, 그들을 서로 다른 실존적 상황에 몰아넣고 자신이 살지 못한 삶을 탐구하게 하는 것이 소설이라고 했는데,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페르난두 페소아에게 실현되지 않은 다른 삶이란 다만 다른 종류의 글을 쓰는 삶이고, 이명들을 통해 다른 종류의 글을 쓰는 삶을 사는 형식으로 소설을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오얏의 실패 이후로 나는 다른 가능성으로서의 나를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페소아와 달리 내 안에는 내가 그렇게 많지 않았고, 어설프게 뭉쳐진 세포 덩어리로서 유리병 안에 꼼짝없이 갇혀 있을 뿐이었다. 그러면 페소아의 영혼을 빌려 볼까. 페소아를 여기로 불러내 볼까. 아니 어차피 빌리는데 페소아만 빌려 올 필요는 없지. 나는 마구잡이로 초대장을 뿌렸고 어렵지 않게 많은 영혼들을 합정동과 망원동 일대에 풀어놓을 수 있었다. 물론 페르난두 페소아를 포함해서 말이다.


 페소아는 리스본을 떠나지 않으려고 했지만 나는 그를 배에 태웠다. 테주강에서 출발한 배는 바스쿠 다가마 코스를 따라서 희망봉을 돌고 인도에 다다르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고 한참을 내달려 한강으로 흘러들어 왔다. 버전에 따라서는 페소아가 유령으로서 유령선을 타고 오기도 했고, 바스쿠 다가마가 탔던 범선을 타고 온 적도 있었고, 어쩐 일인지 한강 유람선 이랜드 크루즈에서 내린 적도 있었다. 그러나 모든 버전에서 페소아는 결국에 다시 배를 타고 돌아갔는데, 페소아와 나는 둘 다 내성적이라서 서로 별로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그가 선착장에 검정색 트렁크를 두고 간 탓에 트렁크에서 페소아의 이명들, 즉, 알베르투 카이에르, 알바루 드 캄푸스, 리카르두 레이스가 튀어나왔다. 난데없이 마포구에 떨어진 가엾은 그들을 거둔 것은 안토니오 타부키였다.


 안토니오 타부키는 한동안 페소아의 이명들과 어울리며 시간을 보냈으나, 성산대교 아래에서 익사체가 발견된 후에는 익사체의 신원을 조사하는 일에 지나치게 몰두했다. “혹시 아는 사람인가요?” 나는 물었는데, 타부키는 아는 사람은 아니라고 했다. 나는 아는 사람도 아닌데 그 일에 어째서 그렇게 매달리는 거냐고 물었다. 안토니오 타부키는 답하기 어려운 질문인 듯 연거푸 에스프레소만 들이켰다. 그는 이탈리아인이기 때문에 에스프레소를 마셔야 했고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무슈부부 커피스탠드에서 만났다. 타부키가 에스프레소 잔 바닥에 가라앉은 설탕을 긁어 먹으면서 말했다.


 “왜냐하면 그는 죽었고 나는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1)


 안토니오 타부키는 에스프레소를 한 잔 더 주문하면서 바리스타에게 한강에서 발견된 익사체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없는지 묻기 시작했다. 나는 에스프레소를 세 잔이나 마신 대가로 손을 덜덜 떨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우편함에는 마포구청에서 보낸 독촉 고지서가 꽂혀 있었는데, 이 고지서는 벌써 대여섯 번은 받은 것이었다. 고지서의 수신인 자리에는 내 이름이 아니라 Mary Sulhee Spino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아마도 그는 내가 이사 오기 전에 이 집에 살았던 사람일 텐데, 어쩌자고 이렇게 세금을 안 내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미납한 세액은 6,780원이었다. 이 정도면 고지서를 보내는 데 들인 비용이 Mary Sulhee Spino가 미납한 세액 6,780원과 비슷하지 않을까. 괜스레 오지랖을 부려 보고 싶어서 마포구청에 전화를 걸어 Mary Sulhee Spino는 더 이상 이 집에 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과로와 무사안일주의에 찌든 마포구청 공무원은 심드렁한 말투로 그럴 경우 고지서를 찢어 버리면 된다고 답했다. 마치 별것 아닌 것까지 구청에 문의를 하는 진상 민원인을 다루는 것처럼.


 진상 민원인은 독촉 고지서를 책상 한쪽에 밀어두고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어디까지 썼더라. 그러니까 홍상수는 원당 국수 잘하는 집에서 영화 관계자와 함께 잔치국수를 먹고 있었다. 잔치국수를 먹고 있었지만 스테인리스 컵에는 소주가 채워져 있었고 두 사람은 얼굴이 발그레 달아올라 있었다.


 “그러니까 감독님, 이번 영화는 서사가 완결되지 않고, 계속해서 뭔가가 새로 시작되는 걸로 진행이 되는데요, 뭔가를 계속 기다리는 그런 장면들이 병렬적으로 나열되어 있는데, 그게 영화가 됩니까?”

 영화 관계자는 흥에 취해 커다란 목소리로 물었다.

“영화가 그렇게 찍기를 요구해서 그렇게 찍었으니까요. 그러면 그게 영화겠지요.”

 홍상수가 느릿느릿 답했다. 나는 잔치국수를 먹으면서 두 사람의 혀 꼬부라진 발음을 옆 테이블에서 엿들었다. 국수를 다 먹고도 계속 앉아 있고 싶었는데, 그러다 술에 취한 그들과 말을 섞게 되고, 나도 소주를 마시게 되고, 불현듯 목소리를 높이고 화를 내며 낯 뜨거운 이야기를 늘어놓게 될까 봐 자리에서 일어났다.


 배를 두드리면서 가게에서 나와 한강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망원초록길 입구 따릉이 대여소에서 마르코발도가 따릉이를 반납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따릉이 바구니에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검정색 비닐봉지가 담겨 있었다. 마르코발도는 따릉이를 타고 한강 일대를 돌아다니면서 쑥이나 냉이 같은 것들을 캐 오고는 했다. 그는 딸린 식구가 많았기 때문에 식비가 많이 들었고 그래서 자연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들은 가급적 직접 마련하는 것을 선호했다. 


 “안녕하세요. 마르코발도 씨.” 나는 마르코발도에게 알은체를 했다. 마르코발도는 환하게 웃으면서 손을 흔들었다. 오늘따라 유난히 기분이 좋아 보였다. “무슨 좋은 일 있으세요?” 마르코발도는 나에게 다가오라는 손짓을 했고 검정 비닐봉지를 열어 보여주었다. “으악. 이게 다 뭐에요?” 나는 뒷걸음질 쳤다. 비닐봉지 안에는 죽은 비둘기 서너 마리가 들어 있었다. 

 “애들이 자꾸 치킨 먹고 싶다고 하지 뭐예요.” 

 마르코발도는 히죽거리면서 비닐봉지를 다시 묶었다. 

 “그걸 잡은 거예요?” 

 “잡았지요. 그물 덫을 설치해 놓고, 뻥튀기를 뿌려 놓으니까, 녀석들이 마구 몰려오더라고요. 아, 오해하지 마세요. 어차피 비둘기는 유해 조류로 지정되어 있어서 잡아도 상관없으니까요.” 

 마르코발도는 콧노래를 부르면서 비닐봉지를 어깨에 둘러메고 망원정사거리 쪽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한강 공원은 나들이 나온 사람들로 북적였는데, 무심하게도 햇볕이 따뜻하게 내리쬐었고, 그래서 화창한 한낮의 지옥이었다. 나는 공원을 걸으면서 오래된 기름 냄새, 조금 부패한 고기 냄새, 느글느글한 라면 냄새 같은 것으로 오염된 공기를 들이마시지 않으려 최소한도로 숨을 쉬었다. 글쎄,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 목청 큰 이야기꾼의 목소리, 하하하하하 웃음소리, 웍웍웍웍웍 개 짖는 소리, 이야약 웃음인지 울음인지 모를 아이들의 비명 소리 같은 것들이 나를 공격해서, 나는 사람들을 피해, 개를 피해, 자전거를 피해, 킥보드를 피해, 끊임없이 경로를 수정해야 했다. 내가 바라는 것은 그저 저소음과 저밀도일 뿐이어서, 나는 살아 있는 자들, 육체를 가진 자들로부터 도망쳐 절두산 성지로 향했다.

 

 절두산 성지에서 십자가의 길을 따라 걷는데, 야윈 남자가 남종삼 동상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무언가에 골몰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그가 로베르트 발저라는 것을 알았는데, 때때로 발저가 이 일대를 산책한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발저를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 까치발로 조용히 걸으면서도 집요하게 그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살펴보았다. 그는 왼손에 작은 종이를 올려놓고 무언가를 열심히 쓰고 있었다. 뒤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발저는 그 소리에 놀란 듯 어깨를 들썩였고 종이를 떨어뜨렸다. 그리고 도망치듯 십자가의 길을 빠져나갔다. 그가 떨어뜨린 종이에는 아주 작은 글씨가 빼곡하게 적혀 있었는데, 그걸 읽으려면 돋보기가 필요할 정도였다. 허리를 숙여 종이를 집으려는데, 그 순간 커다란 개 한 마리가 달려들었다. 나는 놀라서 뒤로 넘어지면서 엉덩방아를 찧었다. 어떤 남자가 “요르고스!”라고 외치며 헐레벌떡 달려왔다. 그 사이에 맹랑한 개는 발저가 떨어뜨린 종잇조각을 혓바닥으로 날름 낚아챘고, 나는 “안 돼!” 비명을 질렀다.


 “괜찮으세요? 죄송합니다.”

 남자가 손을 내밀어 나를 일으켰다. 그는 골똘하게 맹한 얼굴이었는데, 그러고 보니 그는 콜린 파렐이었다.

 “요르고스, 제발 좀!”

 콜린 파렐은 개의 목줄을 쥐고 그것을 거칠게 당기면서 말했다. 

 “그런데 요르고슨지 뭔지 그 개가 제 종이를 집어 먹었어요. 삼켰나요? 중요한 건데.”

 콜린 파렐은 요르고스의 입을 벌려 입 안을 살펴보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요르고스는 하품을 하듯 입을 벌려 빈 혓바닥을 내밀었다.

 “정말 죄송해요. 저희 형이 활자 중독이라서요.”

 “형이요?”

 나는 재채기라도 하듯이 반사적으로 물었는데, 그러고 보니 내가 우선적으로 물어야 했던 것이 저 개가 그의 형이라는 부분인지 활자 중독이라는 부분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 되었든 콜린 파렐의 말에 따르면 요르고스는 그의 형이었다. 오랫동안 혼자 살던 요르고스는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개가 되는 쪽을 택했는데, 아직 인간이었던 시절의 습관이 남아 있어서 활자가 적힌 종잇조각만 보면 미친 듯이 달려들어 먹어 버린다는 것이었다. 나는 콜린 파렐을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고, 콜린 파렐도 나를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고, 요르고스는 계속해서 침을 흘렸다. 


 그 상태에서 나는 깜빡이는 커서를 바라보며 가만히 앉아 있었다. 소설 속에서 나와 콜린 파렐과 요르고스는 내가 대사를 주기만을 기다리며 멀뚱거렸는데, 나는 그들에게 대사를 주고 싶지 않았다. 소설이 잘 풀리지 않을 때는 다음 스토리가 생각나지 않을 때가 아니라 대략 정해놓은 이야기가 있는데 아무래도 쓰기 싫을 때다. 쓸 이야기가 있는데 쓰기 싫은 이유는 그 이야기가 재미없다는 것을 내 몸이 직감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이렇게 소설이 잘 풀리지 않을 때는 내 기분을 상하게 할 것이 분명한 작가들이 책장에서 고개를 내밀고 나를 부른다. 이번에는 공살루 M. 타바리스였다. 그가 쓴 『작가들이 사는 동네』는 책장 맨 아래 칸에서 다른 책들에 눌려 찌그러져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그 책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 저 책이 있었지. 언젠가 저 책을 읽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났다. 


 『작가들이 사는 동네』는 말 그대로 작가들이 사는 동네에 대한 이야기로, 이탈로 칼비노나 로베르트 발저, 베르톨트 브레히트를 포함한 열 명의 작가들이 그들의 캐릭터대로 동네를 누비면서 산책을 하고 대화도 하는 그런 내용인데, 미니멀 하면서도 재치 있고 우아한 에피소드들이 나열되어 있다. 나는 책장에 꽂힌 『작가들이 사는 동네』를 쳐다보면서, 내가 쓴 소설과 타바리스의 소설을 머릿속으로 교대로 읽어 보았고, 그러면 안 되었는데 그렇게 하였고, 그런 결과로 다시 콜린 파렐과 요르고스에게 돌아갈 힘을 잃었다.


 소파에 아무렇게나 몸을 구기고 누웠다. 아무래도 나는 침대에 편하게 누울 자격이 없는 것 같아서 그렇게 누웠는데, 염치없게 잠이 들었다. 어디선가 낯선 여자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모르게 속닥거리는 소리였는데 귀를 기울이자 점차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 나를 찾아줘. 여자는 틀림없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나를 찾아 줘. 온몸에 싸늘한 기운이 퍼지면서 소름이 돋았지만 이상하게 무섭지는 않았다. 다만 찾아 달라니 찾아 주어야겠다는 순종적인 생각을 했다.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려 했지만 가위에 눌려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가위에 자주 눌려서 이럴 때는 몸을 움직이려 애쓰지 말고 눈동자를 굴리는 게 낫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천천히 눈동자를 굴렸다. 내 시선이 닿은 곳에는 Mary Sulhee Spino 앞으로 온 독촉 고지서가 놓여 있었다.


1)  안토니오 타부키, 『수평선 자락』. 문학동네. 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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