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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희 Nov 19. 2022

[중편소설] 소설 없는 소설(8)

10) 메리 설희 스피노, 마리 술리 스피누, 메어리 설리 스파이노…. 나는 돌림노래를 변주해 부르듯이 독촉고지서에 적힌 이름을 불렀다. 그는 누구일까. 그는 나와는 전혀 무관한 사람, W빌라 301호에 살았던 적이 있다는 공통점밖에 없는 사람, 고지서에 적힌 낯선 이름으로만 존재하는 사람, 그러나 틀림없이 육체를 가지고 있는 사람. 나는 이 고지서를 받은 것에, 그러니까 내가 이 집에 살게 되고 그가 지방세를 납부하는 것을 잊어버린 것에, 특별한 의미가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일종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고나 할까. 그러니까 그는 독촉 고지서의 형태로 불쑥 출현한 나의 신, 나의 히로인, 나의 인지망에 포획된 적이 없는 미지의 현실, 살과 피를 가진 비어 있는 텍스트…. 그렇게 해서 나는 그의 이름이 큼지막하게 적힌 텅 빈 무대와 마주하게 되었는데, 그러면 그 무대에서 벌어진 일들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볼까.   

  

 [이 단락은 너무 많은 수정과 삭제가 이루어져 누더기가 되어 버린 단락. 이 단락은 메리 설희 스피노라는 미스터리한 인물을 추적하는 탐정소설이었고, 마리 술리 스피누를 둘러싼 위험과 음모가 속도감 있게 펼쳐지는 스릴러였고, 메어리 설리 스파이노와 시공간을 넘나드는 우정을 나누는 모험소설이었으나, 개연성과 핍진성이라는 소설의 장르적 규칙을 충족시키지 못하여 모조리 실패작이라는 판결을 받고 삭제되는 처벌을 받았다. 그러나 맙소사. 정말 기막히게 재밌었는데. 재미로 말할 것 같으면 더할 나위가 없었는데. 불운한 독자들은 그 재미를 맛볼 기회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누더기가 되어 버린 단락 사이에 남아 있는 흔적을 살펴보면 그래도 간신히 읽을 수 있는 것은 일종의 다큐멘터리 기법을 사용한 소설이다. 그것은 실제로 Mary Sulhee Spino를 찾아가는 여정을 그린 것으로, 결국에는 그를 찾아내지 못할 가능성이 높지만 또 대단한 서스펜스가 있을 가능성은 낮지만, Mary Sulhee Spino에 대한 정보를 모으는 과정이 그대로 소설이 되는 것으로, 내 두 발로 서사를 만들어 나가는 것으로, 말하자면 삶을 바쳐서 소설을 쓰는 것으로, 나의 일상이 곧 소설이 되는 것이다. 


 나는 이 집을 계약할 때 중개를 맡았던 부동산을 찾아갔다. 부동산 중개업자는 Mary Sulhee Spino에 대해 기억하는 것이 별로 없었다. 젊은 여자 두 명이 그 집에서 살기는 했었는데, 그것 말고는 아는 것이 없다, 요즘 사람들이 동네 사람들과 교류를 하거나 하지는 않으니까, 어렴풋이 기억이 나는 것은 두 명 다 그러니까 상당히 말이 없었다는 것이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 노트를 펼쳤다. 


 부동산 중개업자의 증언: 젊고 말 없는 여자와 함께 살았던 역시나 젊고 말 없는 Mary Sulhee Spino. 

그리고 W빌라 주민들에게 301호에 살던 Mary Sulhee Spino를 아느냐고 물었는데, 모두 다 약속이라도 한 듯 정말이지 대답하기 귀찮은 듯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면 어딜 가서 그를 찾나. 동네 카페나 빵집, 식당 같은 데를 돌아볼까 생각하였으나, 누가 자기 이름을 대고 커피를 사고 빵을 먹나, 가뜩이나 말이 없는 사람이라는데, 싶어서 그만두었다. 


 구글에 Mary Sulhee Spino를 검색하는 편이 낫겠다. 요즘 사람들은 길바닥보다는 온라인에 개인 정보를 흘리고 다니는 편이니까. 그러나 Mary Sulhee Spino는 품행이 방정한 편인지, 그의 이름이 모두 포함된 웹 페이지는 고작 세 개밖에 없었다. 하나는 그의 인스타그램 계정이었고, 다른 하나는 ‘더 그레이트 저니’라는 몬트리올에 있는 여행사의 홈페이지였고, 또 다른 하나는 ‘평온한 작별’이라는 네덜란드 상조 회사의 홈페이지였다. 


 인스타그램 계정으로 말할 것 같으면 게시물이 하나도 올라와 있지 않았고 팔로워도 팔로우도 아무것도 없었고 그저 그의 긴 이름만이 적혀 있어서, 비어 있는 텍스트로서의 그의 존재를 은유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더 그레이트 저니’ 여행사의 홈페이지는 여행사가 폐업을 했는지 열리지 않았는데, 구글 검색 페이지에서 미리 본 바로는 ‘귀여운 마트료시카를 기념품으로 받아서 감사’라는 문장이 적혀 있었지만, 그래서 뭐 귀엽고 감사하구나 싶을 따름이었다. 마지막 희망은 ‘평온한 작별’ 상조 회사에 달려 있었다. 상조 회사는 폐업을 하지 않았고 비어 있는 텍스트도 아니었으며, 네덜란드어를 사용했지만 다행히도 구글은 열띤 번역을 제공했다.


 평온한 작별 상조 회사는 삼 대째 이어져 지역사회에 유서 깊다. 유가족들이 망자의 명복을 빈다. 서로의 슬픔을 위로하는 데 집중하기 위하여. 당신은 슬퍼-우리는 걱정해. 우리는 장례 절차를 정성껏 고품격 서비스 제공한다.


 나는 당신은 슬퍼-우리는 걱정해, 라는 문장을 중얼거리면서 홈페이지를 구경했다. ‘평온한 작별’ 상조 회사는 장례와 관련된 모든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로, 유골을 담을 항아리, 시신을 담을 관, 무덤을 장식할 꽃 및 기념품을 망라한 다양한 상품들을 제공하였고, 유가족들의 애도를 돕기 위한 심리 상담 프로그램까지 갖추고 있었다. 아차, 그런데 상조회사를 구경하러 온 게 아니라 Mary Sulhee Spino를 찾으러 왔지, 그러니까 그의 이름이 기입되어 있는 곳은 장례 등록 페이지였다. 장례 등록 페이지에는 망자들의 사진이 온라인 납골당처럼 혹은 사후 세계를 위한 앨범처럼 정렬되어 있었는데, 사진을 클릭하면 애도의 글을 쓸 수 있었다. 


 Mary Sulhee Spino는 살바토르 문디라는 사람에게 남긴 애도의 메시지들 중 하나에 언급이 되어 있었는데, 그가 직접 글을 남긴 것은 아니었고, 섬유 회사의 부대표가 쓴 글에 그의 이름이 포함되어 있었다. 


 살바토르 문디는 사려 깊은 사람 뛰어난 리더. 그에게 도움을 받은 우리 함께 추억해. 마리 설희 스피노, 빔 세가르트, 욜라 마리세가 애도하다. 


 나는 스크롤을 내리면서 애도의 메시지들을 읽어 나갔다. 그 메시지들은 살바토르 문디를 증언하는 기록과 같았고 그래서 상조 회사 홈페이지는 망자들의 영혼을 보관하는 온라인 박물관, 언젠가 도래할 부활의 날을 위한 기억 저장소처럼 느껴졌다. 


 살바토르 문디. 독수리처럼 빛나는 눈에는 지혜가 가득 진리가 가득. 아름다운 외모에 카리스마. 그와 나누었던 농담이 그리워요. 유쾌한 사람 또한 열정적인 사람. 주변 사람들의 재능을 자꾸 발견하고 네트워크를 만드는 능력이 우월했다. 뛰어난 카리스마를 지닌 진정한 기업가. 모든 정치인은 그를 숭배하라 국내 및 국제적으로. 임금 평화 노조에 따르면 살바토르 문디는 농업과 농업 기계화의 아이콘이었다. 사랑스러운 성격에 친구이자 이웃. 확고하고 명료하며 공정하고 맞춤형입니다. 우리는 가지가 없구나, 죽음도 돗자리도 없다. 안녕이라고 말하지 마. 또 보자! 우리는 서로를 생각할 때 연결됩니다. 항상 재회가 있지요. 살바토르의 죽음에 대한 기독교적 애도를 표합니다. 농업 원예 학교, 오래된 트랙터 클럽, 브뤼셀의 농업 박람회 등 많은 아름다운 추억이 확실히 보존될 것이었습니다. 그는 잘생기고 쾌활한 사람. 세상에 많은 사람들은 모르지 소외, 그는 온 세상을 주었습니다. 시대를 현시대 좋은 사람.


 트랙터에 걸터앉아 장난스럽게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살바토르 문디의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그가 살아온 세월을 머릿속으로 그려 보았다. 때 지난 애도의 메시지라도 남기고 싶었지만, 내가 그에 대해서 아는 것은 사람들이 남긴 애도의 문장들밖에 없어서, 나는 그 문장들을 다만 재조합하는 것으로밖에 그를 생각할 수 없었다. 그의 눈은 잘생기고 지혜로 가득 찬 트랙터 클럽은 온 세상을 주었습니다. 브뤼셀의 농업 박람회에는 죽음도 돗자리도 없었지만 그와 나누었던 농담이 그리워요. 국제적으로 우월한 이웃을 자꾸 발견하고 임금 평화 노조는 유쾌하고 열정적인 맞춤형 네트워크. 우리는 서로를 생각할 때 또 보자! 시대를 현시대 아름다운 추억, 항상 확고하고 재회가 있지요…. 그를 증언하고 그리워하는 문장들은 이렇게 계속해서 생성될 수 있을 텐데, 그 생성 안에서 어쩌면 그는 영구히 존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Mary Sulhee Spino를 찾겠다고 하지 않았었나? 글쎄, 뭐 그랬지, 그랬는데, 그러니까 Mary Sulhee Spino는 체납 세금 6,780원으로 인하여 곤란을 겪고 있었는데… 그러니까 트랙터를 사려고 은행 대출을 알아보던 중에 세금을 체납한 사실이 알려져 인터폴에 쫓기는 신세가 되었고, 살바토르 문디는 공정하게 맞춤형으로 그를 도와주었는데, 살바토르 문디에 대해서 말할 것 같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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