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나기 전 그냥 평범한 11학년 여고생이었습니다. 친구들과 나는 한국 가수 BTS를 좋아해서 아미로 활동하고 있었고 서로 자기가 좋아하는 멤버에 대해 이야기하다 가끔 다투기도 하며 지냈습니다. 또 패션에 대한 잡담을 하거나 남자 친구에 대해 수다를 떨기도 하고 때로는 진지하게 진로에 대한 고민으로 시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졸업식이 다가오자 우리는 어떤 드레스를 입고 뒤풀이를 어디서 할 것인지 밤새 어디서 놀지 술은 어떤 것으로 마실지 소소한 이야기를 하며 들떠 있었습니다.
졸업을 몇 달 앞둔 2월 말 상상도 못 했던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매일 고막이 찢어질 것 같은 폭발 소리에 마을이 파괴되고 학교가 부서졌습니다. 집과 대피소를 오가며 살얼음판 같은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춥고 무섭고 불안했습니다. 죽음은 늘 가까이 있었고 일상처럼 장례식을 봐야 했습니다. 살아간다는 것도 점점 힘겨워졌습니다. 식료품을 사려면 언제나 긴 줄을 서야 했습니다.
전쟁 중에도 졸업의 시간은 다가왔고 친구들과 나는 폐허가 된 학교를 배경으로 졸업 사진을 찍었습니다. 우리는 우리들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시간이 어떤 상황 속에 있었는지 기록해야 했습니다.
사진=스타니슬라브 세니크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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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급박해지자 아빠는 엄마와 오랜 상의 끝에 어린 동생과 부모님은 조금 덜 위험한 중부 쪽으로 거주할 곳을 옮기기로 하고 우선 나 혼자만 외국으로 유학 보내기로 결정하셨습니다. 아빠가 곡물 수출 사업을 하셔서 외국 사정도 잘 알고 경제적 여유도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가족과 헤어지는 것도 싫고 친구들과 헤어지는 것도 싫어서 유학 가는 것을 거부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어, 네가 공부를 열심히 해서 돌아와 우리나라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면 좋겠구나.”라는 아빠의 말에 유학을 결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유학을 오게 된 또 다른 이유는 전쟁 중이라 진로가 막막하기도 했고, 같이 졸업한 남자 동창들과 내 남자 친구가 자원입대를 해서 며칠간의 훈련 끝에 민병대에 들어간 상황을 견디기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호주, 캐나다 등 여러 곳을 찾다 미국에 살고 있는 사촌 언니 부부의 도움으로 지난가을 학기에 드디어 미국으로 올 수 있었습니다.
갑작스럽게 떠나온 미국 유학으로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지만 가족과 고국의 상황 때문에 철없이 불평만 할 수는 없었습니다.
갑작스러운 유학으로 준비가 덜 된 영어 공부 때문에 대학수업을 곧바로 따라가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따로 ESL교실에 등록해서 영어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처음 ESL 교실에서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제각각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었고 직장인이거나 가정주부였습니다. 제가 가장 나이가 적은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우크라이나에서 온 마리아예요. 18살입니다. 미국에 공부를 하러 혼자 왔어요, 온 지 다섯 달 되었습니다. 저는 IT엔지니어가 되려고 해요.”간단하게 인사를 하자 그분들이 보기에 딸 같은 어린 학생이 혼자 미국에 왔다는 사실에 그동안 뉴스에서 본 우크라이나 상황이 연상됐는지 한 순간 조용해지며 측은한 눈빛으로 일제히 나를 바라보았습니다.
내 뒤를 이어 한 러시아 아주머니는 “나는 러시아 사람이에요. 우크라이나에도 오랫동안 살았지요. 그곳에 친구들도 많아요. 러시아 사람인 것이 미안합니다.”라고 소개하는 말을 하며 나를 쳐다봤습니다.
참 이상하고 묘한 상황이었습니다.
우리 반에는 몽골, 태국, 한국, 에콰도르, 러시아, 일본 사람 그리고 스페인 사람 이렇게 8명이 함께 공부를 합니다. 그중 스페인 사람 이름도 ‘마리아’여서 각각 ‘스페니쉬 마리아’, ‘우크레인 마리아’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ESL 수업을 시작하면서 누구도 우리나라의 상황에 대해 묻거나 가족에 대해 묻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엄마나 이모 뻘인 classmate 모두 나의 상황에 대해 조심스러워하고 친절하고 따뜻하게 대해주고 있습니다.
아직 가족과 꾸준히 연락이 되고 있고, 남자 친구도 무사하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라서조금씩 안정을 찾고 적응하고 있습니다.
가끔 대학의 같은 또래들은 전쟁을 궁금해하거나 우리 가족이나 남자 친구는 지금 어디에 있는지 호기심을 갖고 묻기도 합니다.
나라는 전쟁 중이고 이곳에서 나는 또 다른 전쟁을 견디고 있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나는 나의 꿈을 이루기 위해 희망을 갖고 열심히 공부하려 합니다.
나라를 위해 목숨 바쳐 전쟁에 나가는 친구들이나 군인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전쟁이 나를 철들게 한 것 같습니다.
언제나 나 자신만 생각하며 살았던 철없던 내가 이제는 조국을 생각하고 나라에 필요한 사람이 되기 위해 열심히 살아가려 합니다.
전쟁 중인 나라를 가진 유학생 십 대의 삶이 어떤지 아십니까?
매일밤 가족 걱정에 잠을 설치고 그리움에 눈물을 흘립니다.
그리고마치 부모 없는 고아처럼 남들의 측은한 눈길을 받아야 한답니다.
참혹하게 폐허가 된 조국의 모습을 뉴스로 봐야 하며 전장에 나간 친구의 전사 소식도 들어야 되는슬픔을 혼자견뎌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