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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정희 Aug 30. 2023

우크라이나 소녀 마리아 이야기 2

러시아 청년 라밀(Lamil)

참혹한 전쟁의  한가운데에서 두려움에 떨며 숨던 우크라이나에서의 삶만큼 내 미국 생활도 전쟁의 한가운데 서 있는 느낌이다. 매일이 도전이고  모든 것을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해야 해서 벅차고 힘들었다.  등록금은  해결하지 못해도 용돈이나 생활비 일부라도 스스로 해결하고 싶어  캐시잡(Cash job)을 시간 날 때마다 해야 해서 바쁘고 고단했다.


사촌 언니의 집은 서버브(Suburb) 지역이라 메트라(Metra)를 타고 통학을 해야 했고 대학 강의를 따라가기에 내 영어 실력은 언제나 모자랐다.

학기 중에는  강의를 따라가기도 벅차서 따로 영어 공부를 할 겨를이 없었지만 방학 중에는 College의 무료  영어 강의를 들을 수 있었다.

너무나  힘들어 방학 때는 쉬고 싶었지만 여기서 만난 우크라이나 친구  빅토리아의

"미국에 빨리 적응하려면 소통이 중요하니 힘들어도 주 2회 강의라도 같이 듣자."는 설득에 여름 특강을 신청했다.


수업 첫날 몇몇 익숙한 얼굴과 낯선 얼굴들 사이에서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이었다.

잘 생기고 귀족적인 이미지의 청년이 있어서 눈길이 갔다.

갈색빛이 도는 곱슬한 검은 머리에  흑갈색 눈의 백인으로 콧수염을 기른 세련되고 매력적인 남자였다.

남자 친구가 없는 빅토리아는 눈을 반짝이며 그를 흘깃거리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라밀(Lamil)이고 나이는 20대 중반으로 보였다. 말할 때 웃음 띤 얼굴은 장난기가 있어 보였고 듣기 좋은 목소리를 지녔다. 그는  수영을 좋아하고 식품공학을 전공했으며 17학년 만에 대학원까지 졸업한 것을 자랑스럽게 말했다.

당당한 목소리에서 한 학년도 허투루 보내지 않고 일 년을 조기 졸업한 그의 자부심이 느껴졌다.

보통은 이름 다음에 출신 국가를 말하는데 그의 자기소개에서는 출신 국가가 가장 나중이었다. 심지어 누가 호기심 있게 물어본 후에 나온 늦은 대답이었다.

그는... 러시아 남자였다.

빅토리아와 나를 아는 급우들은  모두 입을 다물었다. 특히 예비군이었다가 나라를 지키기 위해 자원입대한 빅토리아의 아버지가 부상으로 돌아가실지도 모른다는 소식을 함께 슬퍼했던 분들의 표정에서 묘한 긴장감이 돌았다.

그를 향한 적개심에 방학 특강을 포기할까도 생각했지만 굳이 빅토리아와 내가 그를 피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에 주 2회씩 수업에 참여했다.


빅토리아가 어디에서 들었는지 그의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그는 친구들을 만나러 나가다  아파트 단지에 갑자기 들이닥친 무차별적인 동원령의 징집자들을 피해 숨느라 약속 장소에 늦었다고  한다. 그가 도착하기 전에 친구들은 모임 장소인 카페에서 강제 징집을 당하고 그는  가족과 친지의 도움으로 천신만고 끝에 미국으로 왔다는 이야기였다.

'그가 그 자리에서 징집되었다면 내 친구들이나 가족들에게 총을 겨누거나 성폭행하거나 민간인을 서슴지 않고 살해하는 잔혹한 러시아 군인이겠지.' 하는 생각에 몸서리쳐졌다.

고국 소식을 알기 위해 뉴스를 볼 때마다 참호 속에 쓰러져 있거나 포탄을 맞은 탱크 속 러시아 군인들이 달아나는 장면을 볼 때 얼마나 통쾌했던가? '러시아 군인 00명 폭사' 같은 기사에서 신이 벌을 줬다는 생각이 들 만큼 그들은 단지 적이고 숫자일 뿐이었다.

하지만 평화로운 이곳 미국의 강의실에서 만난 그는 잘 생기고 똑똑한 젊은 남자였다. 페이스북 친구가 되길 원하고 수다를 떨기도 하는 같은 또래 20대의 매력적인 남자였다.

그가 급우들에게 공개한 페이스북에는  낚시를 하는 사진이나 서핑을 하는 사진들이 있었고 구김 없이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 속의 그는 행복해 보였다. 자유연애를 꿈꾼다는 그의 프로필을 보며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를 매주 만나면서 전쟁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그들로 인해 겪은 고통과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을 받아들여야 했고 증오와 복수심에 치를 떨며 살아가지만, 러시아 젊은이들 역시 명분 없는 전쟁을 원치 않아 동원령을 피해야 했고 가족과 친구들의 죽음을 받아들여야 했을 것이다.

그들도 자원입대한 내 친구들처럼 누군가의 아들이고 연인이며 꿈이 있는 또래 친구들일뿐인 것이다.

전쟁이 아니었다면 그와 빅토리아와 나는 미국의 강의실에서 만나게 된 인연을 반가워했을 것이고 러시아어로 내 남자 친구나 그의 자유연애에 대해 수다를 떨었을 것이다.( 우리는 소련에서 독립한 나라여서 자국어와 러시아어를  함께 구사할 줄 안다.)

어쩌면 여기에서 만날 일도 없었겠지만...

그도 우리도 모두 전쟁을 일으킨 거대한 악의 피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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