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제주에서 만난 예술가
그림 그렸다가 지우는 허윤희 화가
화가 허윤희는 서양화와 목탄 드로잉을 주로 그린다.
날마다 나뭇잎 한 장을 그리고 손으로 쓴 서너 줄 일기를 곁들인 ‘나뭇잎 일기’ 책을 펴낸 작가이기도 하다.
우연히 만나서 마음의 거리가 스윽 가까워졌던 날, 허윤희 화가는 앞으로 십 년 동안은 작품활동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으리라 마음먹고 제주로 내려왔다고 말했다.
육지 생활은 번잡했고 어느덧 오십 대 중반, 앞으로는 체력과 정신력을 온전히 작품에 쏟아부을 수 있는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며.
탄력을 잃어가는 피부와 희끗희끗한 새치가 잔뜩 돋은 부스스한 머리카락은 허윤희 화가와 내가 별다를 바 없건만 그녀의 표정은 어린아이처럼 해맑고 순수했다. 반짝이는 눈동자는 때 묻지 않은 소녀 같았다.
맑고 곧은 에너지를 가진 이의 곁에 있으면 그 빛이 가까운 이들까지도 은은하게 비춰준다.
글을 쓰겠다는 마음은 곰팡내 풍기는 소파 뒤편에 밀어놓고 새벽까지도 침대에 늘어져서 무협지 읽으며 게을러지기만 하던 일상에서 허윤희 화가의 말은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다른 사람이 똑같이 말했다면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허윤희 화가는 볼 때마다 나를 정신이 번쩍 들게 했다.
예전에 흰 벽에 목탄으로 거대한 빙하를 그리고 지우는 퍼포먼스 영상을 보여 준 적도 있었는데 빙하가 녹고 있는 기후위기를 고발하는 것과 동시에 ‘그림 그리는 지금 이 순간이 존재할 뿐’이라는 불교적 의미를 담은 퍼포먼스 였다고 말했다.
그림 그리는 순간에 충실하기 위해 수많은 그림을 그렸다가 바로 지웠다고.
세상에, 그 아까운 그 작품들을 다 지워버리다니!
아쉬운 탄성이 절로 나왔지만 작품에 담았던 에너지는 사라지지 않고 고스란히 되돌아갔는지, 허윤희 화가는 반짝반짝 빛이 나는 사람이었다.
십여 년 전 허윤희 화가는 남프랑스에서 ‘예술로서의 집짓기’ 프로젝트에 참여했을 때 ‘삶의 관(館)으로서의 집(coffin house)’을 지었다고 했다.
신체에 딱 맞게 디자인한 작은 집에 들어가서 잠들면 죽음과 같고, 일어나서 나오면 다시 하루를 살아간다는 의미라고 했다. 관을 뜻하는'coffin'은 '낡은 배'를 뜻하기도 하므로 관을 만들면서 여행을 준비한 셈이었다.
내 오두막집이 처음 본 순간 왜 그토록 내 마음을 잡아끌었는지 그제서야 이해가 갈 것만 같았다. 오두막집의 작은 침실은 나무로 만든 아늑한 관 같고 내 상상 속에서 이부자리는 열차의 침대칸으로 둔갑한다.
밤마다 작은 침실의 높다란 침대에 누울 때면 은하철도 999에 탄 철이처럼 미지의 세계로 정처없이 여행을 떠나는 상상을 한다.
아침에 눈 뜨면 허윤희 화가는 마당의 초록 페퍼민트 잎을 따서 물병을 채우고 나뭇잎 한 장이든 거대한 빙하든 자신만의 그림을 그린다. 모든 일상이 그녀에겐 창의적인 활동이자 예술을 하는 시간이다.
처음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을 때 나는 직장 다니듯 하루 여덟 시간 글만 쓰면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을 줄 알았다. 몇 년 간 삽질을 해본 지금은 알 것도 같다.
반짝반짝 빛나는 영혼이 빛으로 천을 짜듯 만들어지는 게 예술품이자 작품인데, 욕심만 갖고 노동하듯 하는 덜떨어진 정신으로는 시간과 노력을 들여봤자 작품이라고 할 만한 게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제주 오두막집에 온 이후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시간과 공간을 채워가면서 잃어버렸던 개성을 되찾는 중이다.
어린 시절부터 예술가의 꿈을 갖고 오랜 시간 갈고닦아온 허윤희 화가처럼 할 수 없지만, 앞으로 십 년 아니라 한두 달 동안만이라도 글쓰기에 온전히 에너지를 쏟아붓고 싶다.
허윤희 화가를 동경한다고 해서 당장 친구가 될 만큼 영감을 나누는 예술가가 될 수는 없겠지만 그녀를 보고 있으면 글 쓰고 싶은 마음이 애틋하게 든다.
잘 쓰고 못 쓰고는 상관없이 '글 쓰는 지금 이순간이 오직 진실할 뿐'이라는 걸 알려준 허윤희 화가는, 아주 멋진 예술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