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장기 취재 여행을 떠나려고 합니다

다정한 친구들, 고마워!

by 유랑

잔뜩 심란해져서 독서모임 친구들에게 카톡으로 하소연을 했다.

집주인이 나가라고 했는데 어떡해ㅜㅜㅜㅜ


다정한 친구들은 처음에는 속상하겠다고 위로해 주다가 각자 창의적이고 다양한 방식으로 기운을 북돋아 주었다.




활달한 K는 오두막집에서 나가라는 게 아니라 더 좋은 집으로 가라며 잘 보내주는 거라고 말했다.

차분한 Y는 집 보러 갈 때 같이 다니자고 했다.

기분 좋은 친구인 Y랑 나서면 집 알아보러 다니는 것도 처량한 발품 팔이가 아니라 설레는 데이트가 될지도 몰랐다.


Y는 자신도 일월이 계약만기인데 이참에 제주시 쪽으로 이사 오는 건 어떠냐고 물었다.

나는 꼭 마당이 있는 집이라야 하는데 혼자 살 만한 집이 있을까, 했더니 그러면 마당 있는 집을 구해서 같이 살면 어떻냐고, 출퇴근 가능한 거리라면 제주 시내가 아니라도 상관없다고 말했다.


그냥 한번 해보는 소리이거나 농담이라도 고맙고 반가웠다.

제주 타운하우스들은 대부분 가족 단위로 설계되었기 때문에 이층 집에 방 세 개 화장실 두 개가 기본이다. 가족도 없으면서 커다란 이층 집에 덩그러니 혼자 사는 게 싫었다. 그 때문에 오두막집 떠나는 게 그렇게 서러웠는데.


예능 프로그램에서나 보던 그림처럼 멋진 제주 타운하우스를 구해서 Y랑 같이 살면 어떨까.


사무실에서 일하던 활달한 K가 뒤늦게 끼어들어 난리가 났다.

자신도 같이 살아야만 한다고, 둘이 아니라 셋이라고, 셋이 살 집을 알아보라고!


이게 레알 현실인가 헷갈려하다가, 정신줄을 붙잡고 신속함과 정확도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소문난 인터넷 검색 신공을 발휘해서 타운하우스를 알아보았다.

방 세 개, 화장실 세 개에 프라이빗 자쿠지까지 있는 타운하우스 임대 매물을 찾아내서 인터넷 주소 링크를 카톡에 올렸다.

다들 마음에 든다고 당장 집 보러 가자고 카톡방이 소란스러워졌다.


그러고 보면 생판 남이었던 사람과 결혼도 하고 집도 사는데 취향 맞는 친구들과 연세로 일 년 사는 거야 뭐 어떤가!

독서모임으로 만난 우리는 셋 다 독서를 무척 사랑하므로 책 읽기 좋은 집에서 한번 살아보면 어떨까.

덤으로 나는 글 쓰기도 좋아하므로 이 참에 ‘제주 타운하우스에서 친구들과 같이 살기’ 에세이를 써 보고 싶었다.


혼자 편하게 살다가 가족이 아닌 이들과 한 집에서 살다 보면 불편하거나 감정 상하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도 되었다.

그렇지만 장기 취재 여행을 떠나는 셈 쳐보니까 어떤 문제가 닥치든 여행자의 배려심과 매너를 발휘하여 잘 해결해 나갈 것 같았다.


남들 결혼할 나이에 혼자 제주로 온 독립심 강한 젊은 이들에게서는 배울 점도 많았다.

바로 직전 독서모임에서는 에리히 프롬의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를 읽었는데, 프롬에게 배운 지혜를 발휘해서 각자 좋아하는 활동에서 활력을 얻고 영감을 나누는 생활을 시도해 보면 정말로 이상적일 것 같았다.


만약에 ‘제주 타운하우스에서 친구들과 같이 살기’가 잘 안 되면 그냥 나 혼자 작업하기 편한 공간을 찾아봐도 되는 거니까.




좋은 친구들 덕분에 오두막집에 대한 미련과 집착을 내려놓고 앞으로 또 멋진 시간이 올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생겼다.

고맙다, 친구들!


내년에는 또 다른 집,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취재하기 위해서 장기여행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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