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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랑 Feb 16. 2024

2. 유민 아르누보 뮤지엄

섭지코지 절경과 안도 타다오의 건축 기행은 덤!

‘유민 아르누보 뮤지엄’이라는 곳을 들어본 적 있나요?


예전에는 ‘유민미술관’으로 불리기도 한 곳이지요,

‘혼자 떠나는 제주 미술관 여행’을 해 보려고 한다면 이곳은 꼭 가봐야 하는 곳이랍니다.

가능하면 만 하루를 다 비워놓고 가기를 추천드립니다.  

   



이곳은 미술품 전시도 봐야 하지만 성산 바다 쪽으로 뻗어 나온 섭지코지의 지형과 자연 속에서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안도 타다오의 건축 걸작품 유민 아르누보 미술관과 글라스하우스 건물부터 둘러봐야 하는 곳입니다. 전시 관람은 어디까지나 그 다음 순서예요.


항공사진으로 보면 섭지코지는 바다에 떠 있는 기다란 반도처럼 생겼습니다.

툭 튀어나온 끝부분에 오사카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타다오가 설계한 글라스하우스와 유민 아르누보 뮤지엄 건물이 위치해 있어요.


마냥 푸르다가 비췻빛이 나다가 초록빛으로 빛나다가 물보라를 뿌리며 하얗게 부서지는 아름다운 바다를

아래로 내려다보는 글라스하우스는 연푸른 빛 유리로 만든 건물인데요,

영화 스크린에서 방금 튀어나온 것처럼 독특하고도 멋진 외관을 자랑합니다.

박훈정 감독의 영화 ‘마녀 2’에서 베일에 싸인 막후의 실력자 조민수의 저택으로도 등장했던 곳이에요.

이곳에 서서 밀려오는 파도를 배경으로 서 있는 글라스하우스를 본다면 마음을 뒤흔드는 기묘한 설렘이 찾아올지도 모릅니다.


안도 타다오는 ‘건축이란 자연과의 교감, 비일상적 공간의 체험 등 미학적인 기능을 구현하기 위한 것’이라는 말을 남겼는데, 섭지코지와 글라스 하우스, 유민 아르누보 뮤지엄 앞에 선다면 누구나 평소와는 다른 공기를 느낄 거예요. 예술을 하는 분이라면 걸작을 완성하고 싶은 영감이 솟구칠  수도 있습니다.

그만큼 자연의 에너지와 인간의 재능 그리고 건축 기술이 빚어낸 에너지가 충만하고도 넘치는, 특별한 장소입니다.     


‘유민 아르누보 뮤지엄'을  찾는 날,  하루 일정을 비워둬야 할 또 다른 이유는 주차장에서 미술관까지 거리가 꽤나 멀기 때문입니다.

미술관 근처 도로는 전동 카트만 출입이 허용되며 주차장에서 도보로 이십 분 정도 걸어가야 해요.

몸이 불편하거나 날씨가 너무 험악하다면 매시간 정시, 20분, 40분에 세 번 운행하는 셔틀버스를 이용할 수 있어요. 전동 카트를 대여하려면 휴대폰 앱을 설치하고 대여 요금을 별도로 부담해야 합니다.

 

평소에 걷기 싫어하는 분이라면 불평불만이 터져 나올 수도 있을 텐데요,

아마도 미술관으로 가는 길을 몇 걸음 걷기 시작하면 짜증이 그만 쑥 들어가 버릴 거예요.


휘닉스 리조트의 아름답고 탁 트인 부지는 인적 하나 없이 고요한 데다가 야자수 매트를 깐 산책로로 접어들면 천혜의  제주 자연을 만나거든요.

허리까지 풀이 자란 오솔길에 튀어나온 현무암들을 피해서 걷다 보면 들려오는 소리라곤 바람 소리, 수풀 속에서 들려오는 새들이 지저귐 뿐입니다.

조금 더 걸어가면 푸릇푸릇한 초지와 작달막한 제주 조랑말들이 노니는 풍경을 지나가고요,


등 뒤로 불어오는 바람에 떠밀리며 날아갈 듯 걷다가 들판이 끝나는 지점에서 탁 트인 하늘과 바다를 만난 순간 그만 우뚝 멈춰 서 버릴지도 모릅니다.

눈앞에 펼쳐지는 섭지코지의 풍경과 바다 물빛은 세상 그 어느 곳의 절경과 견주어도 뒤지지 않거든요.


해변에는 고래 등 모양의 완만한 언덕이 있습니다.

정상에는 작고 하얀 등대가 있고요.

봄이 오면 널따랗게 펼쳐진 들판 가득히 노란 유채꽃이 환하게 피어오르고, 여름이나 가을에는 메리골드나 코스모스가 언덕을 가득 채우는 곳이지요.


계단을 올라가서 정상까지 한 번 올라가 보세요.

하늘과 바다를 배경으로 바닷바람에 옷자락을 펄럭이며 걸어가다 보면 영화나 드라마 속으로 들어와 버린 거 같은 기분이 드는데요, 실제로 드라마나 영화 여러 편을 촬영했던 장소입니다.

     

섭지코지의 자연과 안도 타다오가 설계한 글라스 하우스와 유민 아르누보 뮤지엄의 건물 외관을 충분히 감상하고 실컷 감탄도 하고 사진도 다 찍었으면 드디어 전시를 볼 차례인데요,


유민 아르누보 뮤지움은 중앙일보 선대회장인 고 홍진기 선생이 수집했던 낭시 파(Ecole de Nancy) 유리공예 작품을 전시한 곳이에요.


매표소를 지나서 전시실로 향하는 복도로 접어들자마자 분위기가 벌써 심상치 않네요.

풀 한 포기 찾아볼 수 없는 높은 벽 안으로 걸어 들어가다 보면 긴장감이 점점 고조됩니다.

사각 모퉁이를 돌면 가로로 긴 틈새로 한 줄기 빛이 보이는데, 무릎을 굽혀야만 눈높이를 맞출 수 있어요.

검은 현무암 돌벽에 가로로 난 직사각형 틈새로 보이는 섭지코지 바다 풍경은 마치 천국과도 흡사해 보입니다.


바깥에서 활개치고 다닐 땐 몰랐는데 높은 벽에 갇혀있는 죄수의 시선으로 보자니 자유로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안도 타다오가 치밀하게 의도한 대로 카타르시스가 찾아오는 곳이에요.


유민 아르누보 뮤지엄의 전시실 세 곳은 외부와 차단된 지하에 있습니다.

이 또한 전시 작품에 온전히 집중하도록 설계된 거예요.


거대한 벽처럼 생긴 자동문 안으로 한 발짝 들어가면 지하 세계의 보물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게임이나 판타지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드래건 던전이나 드워프들의 나라에 들어가는 기분이 들지도 모르겠네요.   


아르누보는 1890년~1910년 사이에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 전역에서 일어났던 공예 디자인 운동이에요.


유민 아르누보 뮤지엄의 주요 소장품은 '낭시 파'로 불렸던 에밀 갈레와 돔 형제 등 프랑스 낭시지역 예술가들의 아르누보 풍 유리공예 작품이 주를 이룹니다.   


<바다의 심연>                                                                                     <버섯 램프>



대표 컬렉션은 낭시 파의 창시자 에밀 갈레의 유리 공예품 중에서도 손꼽히게 아름다운 ‘바다의 심연’이에요.

매끄러운 유리로 만든 커다란 반원 모양의 반투명한 화병 내부에는 루비처럼 붉은 산호와 암모나이트 등 깊은 바닷속 풍경이 그대로 재현되어 있습니다.


또 하나 눈여겨보아야 할 작품은 에밀 갈레의 ‘버섯 램프’인데요,

허리께까지 자란 커다란 주황색 버섯처럼 생긴 유리 램프 공예품입니다.

각각 크기가 다른 세 갈래 버섯은 인간의 청춘, 장년,  노인을 상징한다고 해요.



아르누보 양식은 삶과 일상 속에서의 예술을 강조했다고 하는데요,

유민 아르누보 뮤지엄의 컬렉션도 당시의 부르주아들이 일상에서 사용하던 사치스러운 장식품 같아 보입니다.


예술의 속성에는 철학적인 표현 이외에도 삶을 아름답게 장식하는 기능도 있겠지요.

경주 고분에서 출토된 유리 장식품만 하더라도 당시에는 엄청난 사치품이었을 텐데, 요즘에는 유리나 도자기가 그렇게 비싼 제품은 아니므로 취향에 맞는 램프나 소품들을 골라서 자신만의 공간을 장식한다면 생활의 질을 한층 높여줄 것 같아요.


지하에 있는 영감의 방, 명작의 방, 아르누보 전성기의 방을 차례로 둘러본 후 계단을 올라가면 램프의 방이 나옵니다.  

비교적 현대에 산업화로 제작된 램프들을 전시해 놓은 곳이에요.

램프의 방에서는 스툴에 앉아서 쉴 수도 있고 관련 책들이나 잡지를 들춰보거나 색연필로 간단한 드로잉도 해볼 수 있는데요,

지하에 있는 보물 창고 예술 작품이 뿜어내는 엄청난 아우라에 압도되었다가 지상으로 나와서 한숨 돌리는 기분이 들 수도 있습니다.

        



오후가 다 지나가기 전에 유민미술관 관람을 마치고 나와서 글라스하우스에도 들러 보세요.

여기까지 왔으니 글라스 하우스 1층 카페에서 차 한 잔은 마시고 가야 하겠지요?

주머니 사정이 된다면 2층 민트 레스토랑에서 근사한 점심이나 저녁식사를 해 보는 것도 좋을 거 같아요.


런치 또는 디너 코스가 각각 5만 원과 9만 원으로 가격대가 살짝 있지만 ‘혼자 떠난 제주 미술관 여행’을 기념하는 식사로 무척 어울릴 거 같네요.

사실은 저도 언젠가 민트 레스토랑에 한 번 가보려 벼르고 있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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