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밀히 말해서 미술관은 아니지만 꼭 가봐야 할 제주도 갤러리
김영갑 사진가는 제주의 자연을 사진 속에 담아낸 예술가입니다.
두모악은 엄밀히 말하면 미술관은 아니지만 ‘혼자 떠나는 제주 미술관 여행’에 나섰다면 꼭 한번 들러보라고 권해드리고 싶어요.
이곳 또한 장소가 주는 특별한 아우라가 넘치는 곳이며, 제주의 자연이 가진 아름다움을 보는 눈이 트이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성산읍 삼달리에 있는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은 ‘삼달국민학교’ 폐교를 리모델링 한 곳입니다.
넓은 운동장이 딸려 있었던 시골 학교라 부지가 꽤 넓은데요, 버려진 초등학교를 김영갑 작가가 직접 가꾼 이곳은 표지판 하나까지 집요할 정도로 아름다움을 추구했던 디테일이 돋보이는 곳이에요.
갤러리 건물과 정원은 하나의 소우주라고나 할까요, 구불거리는 가지들이 뙤약볕을 가려주는 오솔길을 걷다 보면 우거진 나무들이 수군대며 말을 걸어오는 듯합니다.
갤러리 건물 오른편의 새파란 대나무 숲은 한때 이곳을 가득 채웠을 어린아이들을 떠올리게 해요.
그 너머에는 탁 트인 하늘에 초록 잔디가 눈부시게 아름다운 풀밭에 순백색 벤치가 있는데요,
갤러리 구경하느라 다리 아플 텐데 여기 앉아서 하늘을 한번 올려다보라고 권하는 거 같아요.
벤치에 잠시 앉아서 제주 하늘과 바람, 그리고 김영갑 갤러리 특유의 공기에 내맡겨 보세요.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 고요함이 찾아옵니다.
일어나서 몇 발짝 더 걸어가면 아까보다 더 예쁜 장소가 기다리고 있어요.
오름 분화구를 똑 닮은 연둣빛 찬란한 초지에 빨강 노랑 걸상이 오도카니 놓여있거든요.
의자가 아닌 걸상. 책걸상 책상 걸상 할 때 바로 그 걸상입니다.
폐교되기 전에 열 살도 안 된 저학년 가벼운 아이들이 앉았을 나무 걸상이에요.
빨강 노랑 페인트 칠을 한 걸상이 제주의 탐스러운 연둣빛 잔디밭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게 어찌나 예쁜지 사진 한 장 찍지 않고는 못 배길 겁니다.
김영갑 작가의 사진이 멋지기는 하겠지만 건물과 정원을 둘러보고 나면 전시 관람은 시작도 안 했는데도 뿌듯한 마음이 드는 게, 사진 작품 전시를 꼭 봐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솔직히 말해서 풍경 사진 같은 건 달력에서도 많이 봤잖아요.
여기까지 찾아왔으니 그래도 전시 작품을 보기는 봐야겠지요.
정면 출입구 양쪽으로 오른편은 초등학교 교무실 같은 매표소이고 왼편은 교장실처럼 생긴 김영갑 작가의 작업실입니다. 생전에 사용하던 작업실을 그대로 보존해 놓았어요.
전시실은 건물 왼편과 오른편에 두 곳이 있고 작은 초등학교의 벽을 일부만 잘라낸 듯 교실과 복도, 커다란 석탄 난로가 있던 공간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먼지 하나 없이 정갈한 갤러리 벽에는 김영갑 작가가 사시사철 제주의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고르고 골라서 찍은 사진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생전에 인터뷰했던 다큐멘터리 영상이 나오는 영상관람실도 있어요. 루게릭병으로 투병하느라 나중에는 셔터 누를 힘도 부족했다는데 제주의 자연을 사진 속에 담고 싶었던 마음, 두모악에 보금자리를 틀었던 과정을 영상 속에서 담담하게 말씀하시는걸 보다가 울컥해서 그만 눈물을 흘리는 분들도 많답니다.
갤러리를 둘러보다가 김영갑 작가의 대표 작품으로 유명한 용눈이 오름이나 성산 유채꽃 풍경, 제주의 기다란 풀들이 바람에 휘날리는 풍경을 보고 난 다음부터는 제주 자연 속에서 특별히 아름다운 장면을 볼 때면 마음속으로 찰칵 셔터를 누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오름 분화구가 그렇게 신비로운 모양인지 이전에는 몰랐거든요.
분화구 주위에 우거진 잡풀들과 나무들이 그냥 평범해 보였어요. 눈으로 봐도 그저 그랬고 특별한 아름다움을 느끼지도 못했어요.
그런데 제주 자연의 아름다움을 정말로 사랑했으며 그 모습을 작품 속에 고스란히 담았던 눈썰미 대단한 예술가의 사진 작품을 본 후부터는, 제주 자연을 보는 눈이 트인 거 같아요.
오름에 올라갈 때마다 부드러운 능선의 모양과 분화구의 곡선이 가진 아름다움이 보이거든요.
그러므로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은 혼자 떠나는 미술관 여행 중에서도, 제주 미술관 여행을 선택했다면 꼭 가봐야 하는 곳입니다.
전시실을 나와서 건물 오른편에 화장실이 있는데요, 가느다란 철사를 구부려서 아름다운 필체로 ‘화장실’이라는 글자를 만든 표지판도 예술 작품 같습니다.
하긴 갤러리 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도 한 폭의 그림 같은 게, 그토록 지독하게 사진의 완성도를 추구했던 김영갑 사진가가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도 허투루 가꿨을 리가 없었겠지요.
갤러리 건물 뒤편에는 무인찻집이 있습니다.
먼지 하나 없이 정갈한 자그마한 단층 건물은 초등학교 숙직실을 리모델링한 장소예요.
두모악이라고 쓰여있는 흑백 도자기 머그컵 중 하나를 골라 진한 캡슐 커피 한 잔 마시노라면 이곳에서 김영갑 작가의 영혼을 뵌 것만 같은 생각이 듭니다.
세상을 뜨신 지 이십 년 가까이 되어가는데도 김영갑 작가야말로 ‘영혼이 갑’이신 듯해요.
그러니 이곳,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은 꼭 가보시길 추천드립니다.
P.S. 2005년, 48세의 나이로 타계한 김영갑 사진작가의 유해는 그가 사랑했던 두모악 갤러리의 정원에 뿌려졌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