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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랑 Mar 15. 2024

6. 김택화 미술관

입장료 비싸도 가볼 만한 제주도 미술관

이 곳은 처음 들어보는 분도 많을 거 같은데요,

입장료가 비싸도 상관없는 미술 전시 매니아분들께만 추천합니다.

김택화 화가의 작품을 전시한 사립 미술관이라서 규모가 크지 않고 단일 전시만 있으며 입장료도 1만 5천원으로 저렴하지는 않거든요.


그래도 가 보고 싶다면 기꺼이 가보라고 권할 텐데요,

그 이유는 한 예술가가 한 가지 주제로 일생을 바친 작품을 볼 때면, 내면 깊은 곳에서 천천히 퍼지는 감동이랄까, 울림이 오기 때문입니다.




김택화 화백(1940-2006)은 제주도가 고향인 화가입니다. 제주도 출신 최초로 홍익대 미대에 입학했으며 한때는 김환기 화백의 애제자였다고 하네요.

1965년 귀향한 후에는 제주도 풍경을 그리는데 일생을 바쳤다고 합니다.

전시실에 가득한 작품들을 찬찬히 보면 ‘화가’라는 정체성을 가졌던 분이 ‘작품으로 표현하고 싶은 곳은 고향 제주 풍경’이라는 마음이 보이는 거 같아요.


수십 년에 걸쳐서 제주의 수많은 풍경을 그렸으므로 역사적인 기록 자료로도 남았습니다.

제주시 인근의 도시화 개발로 인해 지금은 볼 수 없는 제주 전통 초가집과 마을 전경, 소박한 항구 모습 등 옛 풍경을 즐겨 그렸기  때문이에요.


안내데스크에서 메인 전시실로 가기 전에는 김택화 화가가 그림을 그렸던 이젤과 나무 걸상 등 작업실 풍경을 재현한 장소가 나오고요, 다큐멘터리 영상을 볼 수도 있습니다.



벽에는 간단하게 드로잉을 한 자그마한 그림 여섯 점이 있는데요,

펜으로 그린 안경 쓴 남자의 자화상, 연둣빛 물감을 칠한 씩씩한 어린 말 등을 그린 그림은 놀랍게도 제주의료원에서 말기암으로 숨을 거두기 전 이틀 동안 그린 작품이라고 해요.


예술가란 어찌 보면 참으로 행복한 존재라는 생각이 드네요.

병으로 죽게 된다면 대부분의 인간은 무얼 할까요. 종교가 있다면 기도를 하겠지만, 그마저도 없다면 아프고 힘도 없고 손 놓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을 거 같은데요.



통로를 지나서 마주한 메인 전시실은 전시 작품이 너무 많아서 다소 번잡한 느낌입니다. 주제를 정해서 깔끔하게 큐레이팅을 해 놓으면 좋을 텐데, 작은 사설 미술관이라서 그럴 여력이 없었나 봐요.

마음속으로 주제를 정해서 하나하나 따라가는 수 밖에요.

제주에 여러 번 왔다면, 바다 그림부터 쭉 보고, 어딘지 짐작하면서 내가 봤던 풍경과 마음 속으로 비교해보고 그 다음에는 마을을 보면서 어디인지 맞춰보고 하는 과정도 재미있습니다.       



전시실 가득한 그림을 보면 이 순간을 전에도 경험해봤던 거 같은 기시감이 찾아올 지도 모릅니다.

아마도 제주에서 유달리 인상적인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서 그림으로 그려보고 싶다는 마음을 품었는데 그 작품을 눈앞에 마주하고 있기 때문일 거 같아요.


미술관을 나와서 또 다시 잔잔한 포구에 묶여있는 하얀 조각배, 현무암 바위 위로 하얗게 물방울을 뿌리며 솟구치는 파도 등 색채가 아름다운 유화들을 볼 때면 ‘나도 그림 한 번 배워 볼까’, ‘이렇게 그림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뜬금없이 올라올 수도 있습니다.

저도 그랬거든요.


그럴 때면 진짜로 드로잉을 한 번 시도해 보는 것도 좋습니다. 제주도에 흔한 다이소에서도 전문가용 스케치북과 다양한 크레파스, 물감, 색연필 등을 판매하고 있으니 당장 시도해 보시길 바래요.


제주 풍경은 눈에 닿는 곳 어디나 그림처럼 아름다우므로 색연필로 간단하게 그려도 작품이 된답니다.

 ‘혼자 떠나는 제주 미술관 여행’에서 미술관 투어를 하다가 마침내 제주 풍경을 직접 그림으로 그리기 시작하다니 그거 너무 멋질 거 같은데요!      





김택화 미술관 2층에는 드로잉 수업이 열리는 아뜰리에와 카페가 있습니다.

이젤에 그림을 그려보고 싶다면 따로 공간 예약을 할 수 있다고 해요. 그림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어서 각 잡고 드로잉 하는 건 부담스럽다면 잠시 카페에 앉아서 미술관에서 전시를 감상한 여운을 즐겨봐도 좋을 거 같네요.


널찍한 카페 통창으로는 현무암 돌담에 둘러싸인 푸릇푸릇한 밭이 보입니다.

제주도의 흔한 농촌 풍경이지요.

아메리카노 한 잔 마시면서 한적하고 평화롭고 별거 없는 그 풍경을 그려본다면 혼자 떠나는 제주도 미술관 여행의 기록이 될 거 같습니다.

드로잉 도구가 있다면 가져가도 좋겠지만 다이어리에 색연필 몇 개로도 충분하겠지요.

실은 저도 작은 스케치북과 크레파스를 가져가서 혼자서 조용히 난리법석을 떨었답니다.


제주의 한적한 사립 미술관 김택화 미술관의 아무도 없는 2층 카페이기에 누구에게도 안 들키고 폐도 안 끼치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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