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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언주 Nov 13. 2022

크라잉 클럽

10화

  어디야?

  가라앉은 목소리로 아내가 말했다. 

  크라잉 클럽.

  잘됐네.

  뭐가 잘된 일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다음 말을 기다렸다. 

  결정했어?

  메이의 말이 메아리처럼 울려왔다. 집이건 뭐건 내가 가진 것들은 모두 메이의 것이었다. 아내는 나더러 무조건 백기 투항이라도 하라는 걸까. 메이와 결혼하겠다고 했을 때 엄마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었다. 어디서건 행복할 수 있다면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라고.  

  나는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부슬부슬 밤비가 내렸다. 빗줄기는 가로등 불빛에 광섬유처럼 가늘게 흔들렸다. 이곳에 모여 울던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유령처럼 웅성거리고 둘러서 있던 그런 사람들이 있었는지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는다. 

  후통 안쪽으로 걸어가는 한 남자의 뒷모습이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다. 마리오를 닮은 것만 같아 그가 사라진 곳을 한참 바라보았다. 세헤라자데가 밤새 지어낸 이야기처럼 이제껏 있었던 일이 정말 있었는지 아득하게 느껴졌다. 나는 펜스 옆에 기울어져 있는 팻말을 바로 세웠다. 영문자는 흐릿하게 지워지고 구락부라는 한자만 남아 있었다. 숙취로 머리가 쪼개질 듯이 아팠다. 들고 있던 전화기를 보았다. 낮에 아버지와 병원 다녀온 이야기를 아직 전하지 못했다. 

  단축키 1번을 눌렀다. 왜? 아내의 목소리에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오피스텔이나 알아보려고.

  가슴속에 담아 둔 말이 튀어나와 나도 모르게 당황했다. 낮에 의사가 했던 말로 얼른 상황을 얼버무렸다. 의사는 아버지가 완쾌되었다며 축하한다고 했다. 앞으로 육 개월에 한 번 경과를 지켜보자고. 메이는 아무 말이 없었다. 전화기 너머로 시간이 길게 늘어졌다. 고르지 못한 숨소리만 침묵의 동굴을 뚫고 희미하게 건너왔다. 나는 전화기를 접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빗줄기가 볼을 스치고 지나갔다. 미세먼지에 쌓인 하늘이 검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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