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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me Dec 01. 2022

신촌 언니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서는 신촌 언니의 얼굴은 비장했다. 그녀는 신문지에 돌돌 말린 무언가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글쎄 이것 좀 보라면서 언니는 신문지를 펴더니 그것을 자신의 두 손가락으로 집어 들었다. 녹슨 쇠꼬챙이인데 흔히 야스리라 불리는 줄칼이었다. 

  “세상에 미친놈이 이런 것을 컴퓨터 책상 앞에 놔둔 거야.”

  언니는 마치 중요한 물증이라도 찾은 양 자신의 핸드폰을 열어 줄칼이 놓였던 현장 사진을 내게 보여주었다. 사진은 스무 장 정도로 연속 촬영된 것이었다. 

  “이놈이 내가 거기서 컴퓨터 하는 것을 잘 알아. 내가 심심할 때 고스톱 같은 게임을 하거든. 이제 날 숨 막혀 죽게 하려는지 , 날 진짜 죽이려는지 , 이 흉측한 무기를 내가 앉는 책상 앞에 나 보란 듯이 반듯하게 놔둔 거야 글쎄.”

  언니는 흥분해서 ‘그놈’에 대해 입을 열었다. 평소에 우리 아저씨라고 부르던 사람이 오늘은 ‘놈’으로 바뀌어 이놈 , 그놈이 된 것이다. 언니는 그놈이 10 살 연하라고 털어놓았다. 

  언니의 전 남편은 술만 먹으면 폭력성이 튀어나와 노상 얻어맞으며 살았다. 취기를 풍기며 들어온 날은 밖으로 피신했다가 아이들과 전화 통화로 남편이 잠이 들었다는 말을 듣고서야 집으로 들어오곤 하였다. 어느 날도 피신하여 밖에 나와 있는데 딸아이가 울먹이면서 전화를 해왔다.

  “엄마! 아빠가 바코를 부르더니 곁으로 다가간 바코의 머리를 갑자기 망치로 내리쳐서 바코가 피 흘리고 쓰러졌어. 바코가 죽나 봐! 엄마 무서워. 빨리 집에 와 봐.”

  언니의 심장에 태풍이 몰아쳤다. 세상에! 바코는 언니네 집에서 기르는 대형견이었다. 아빠의 부름에 실룩샐룩 멋모르고 다가간 녀석에게 망치질을 해대었다니 그것은 사람으로서 할 짓이 아니었다. 자기도 언제 그리 당할지 모를 두려움에 머리가 쭈뼛해지고 발걸음이 얼어붙었다. 하지만 불쌍한 바코 생각에 집으로 달려가 보니 집안은 핏빛으로 난장이었다. 피투성이를 부둥켜안고 병원으로 갔지만 바코는 가는 도중에 숨을 놓아버렸다. 그 뒤로 신촌 언니는 남편과 한 집에서 살 수 없게 되었고 , 아이들을 남겨 둔 채 50 살 즈음에 집을 나와 버렸다. 남편과는 이혼도 하지 않은 채 이놈을 만나 여태껏 살았는데 전 남편이 작년에 세상을 떠났다. 언니에게는 잘된 일인지 ‘네 엄마 만나고 다니면 너희들도 가만두지 않겠다’는 남편의 날 선 으름장에 언니나 아이들 모두 쉬쉬하다가 이제야 자녀들을 편안히 만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동안 제대로 돌보아 주지 못한 죄의식이 영 덜어지질 않는다며 헛기침을 하였다. 

  언니는 먹고살기 위해 호프집을 운영하며 돈을 벌었다. 돈이 생기니까 ‘이놈’이 능구렁이처럼 들러붙어서 떠나지 않아 지금까지 18 년을 같이 살고 있다고 했다. 처음 몇 년은 언니가 벌어 생계를 유지하다가 그 후로는 이놈이 벌어서 먹고살았는데 , 5 년 전에는 다른 젊은 여자를 만나 생난리를 떨고 다녔다. 우연히 그놈과 그 여자와 찍은 남사스러운 동영상을 컴퓨터에서 발견한 뒤로 자신이 여자 문제에 집착하게 되었노라 말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요즘 또 여자가 생긴 게 틀림없다고 씁쓰레한 표정을 지었다.

  언니는 마음에 금이 갔다고 토로했다. 이놈이 쓰는 전화는 서너 개나 되고 모두 잠금장치가 되어 있어서 증거는 잡을 수 없으나 , 집 근처에 여자 집이 있어 드나드는 것이 확실하다고 말하였다. 새벽에 쓱 나갔다가 다시 들어와 옷 짐 , 연장 짐 등을 싸 들고나가기 일쑤이고 , 일을 마치면 그 여자 집에 들러서 씻고 놀다가 밥까지 먹고 오는지 집에서는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한다는 것이다. 이놈은 아직 젊으니까 늙은 나를 떠나고도 싶겠지 싶어 자기도 보낼 마음을 굳혔다고 하였다. 그러고 보니 이제는 늙고 병들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 자신이 서럽다고 넋두리하였다. 소원이라야 손 붙잡고 병원이라도 같이 다니며 살아가는 것이 고작이었는데 그마저 자기를 외면하려 드니… 자기는 세상에 안 태어나야 할 사람이었나 보다고 한숨지었다. 첫 남편은 자신을 때려서 고통스럽게 하더니 이놈마저 처음과 달리 자기를 옥죄여 죽게 하려 든다며 녹슨 쇠꼬챙이를 만지작거렸다. 언니의 손에 붉은 녹이 묻어나고 있었다. 구겨진 신문지 한쪽에다 언니는 손에 묻은 녹을 닦아내었다.

 “이놈은 원래 권투 선수였거든. 한 대 치면 나 같은 거는 그냥 꼬꾸라져 죽어. 그래서 그런지 여태 나를 때리거나 욕을 하지는 않았어. 소리소리 지르고 살림살이를 때려 부수긴 했어도.” 

  얼마 전이었다. 신촌 언니가 이 동네로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자기는 친한 사람이 없다며 가게에 이따금씩 들렀다. 왕년에는 날리는 멋쟁이였고 유기견을 정성으로 보살피고 있는 언니 정도로만 알고 지냈다. 장군이를 끌어안고 가게 앞을 서성이던 언니는 이 녀석이 지금은 눈까지 멀어서 잘 걷지도 못하고 여기저기 아파서 돈을 몇 백만 원이나 까먹었는지 모른다고 푸념하였다. 정작 자신의 병세를 찾기 위해 검사받을 돈은 제대로 쓰지 못하면서 장군이를 돌보고 있다는 것이다. 병들었다고 키우던 녀석을 죽어라 하고 내 버려둘 수는 없는 일 아니냐며 언니는 장군이를 부둥켜안고 꾸부정한 걸음으로 언덕진 길을 내려갔다. 

  언니는 장군이에게 집착하는 것 같았다. 장군이를 케이지에 넣어 병원에 데려갈 때 도우미를 사서 데리고 다니기까지 하였다. 집을 뛰쳐나와 제 자식을 돌보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장군이를 더욱 사랑하게 되었는지 모른다. 언니는 절대 자식에게는 돌아갈 수 없다고 했다. 애들에게 아무것도 해 준 것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을 흐렸다. 나이 70 고개를 넘기면서 허리 다리 어깨 아픈 곳이 늘어난 신촌 언니의 지친 삶이 낮달보다 시려 보였다. 월세로 사는 집의 보증금 2 천만 원이 구멍 나지 않았다면 , 그것이 신촌 언니와 ‘그놈’의 전 재산인 듯했다. 언니는 이놈이 그 돈에 손을 안 대고 몸만 나가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자신은 다 늙어서 이제 돈을 벌 수가 없으니 그 돈만은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다짐이 언니 사랑의 결말이라니! 전쟁 같은 사랑놀이 같았다.

  “이거 , 나를 헤치려 한 증거가 될지도 몰라. 잘 놔둬 줘.” 

  언니는 녹슨 쇠꼬챙이를 신문지에 다시 돌돌 말아 놓고 가게 문 입구에 세워 둔 거울을 잠시 처다 보다가 가게를 나갔다. 이놈이 나 없으면 온통 집안을 다 뒤지기 때문이라는 말꼬리를 남겼다. 녹슨 것은 줄칼만이 아니었다. 언니의 육신마저 삭아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언니의 모습을 비워낸 거울 앞에 내가 서서 나의 녹을 바라본다. 펌프질을 멈춘 펌프처럼 터실터실 녹슬고 황폐해져 가는 나의 영혼이 감춤 없이 드러나 보인다. 하지만 거울 속에서 나는 웃고 있다. 나를 품어주고 내게 자신의 속이야기를 들려주는 이 공간이 있어서이다. 언니에게도 누군가 귀 기울여 자기 얘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 마음속 응어리는 어느 정도 풀어지리라 생각된다. 신촌 언니의 마음에 봄빛이 스미어 녹슨 꼬챙이를 다시 찾지 않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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