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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규민 Sep 18. 2023

단편소설_ 조명은 달빛 #3

온 동네를 둘러싸고 있었음에도, 그 숲에 대해서는 누구도 아는 바가 없었다. 내가 일요일 저녁마다 들르는 슈퍼마켓의 계산대 아주머니는 그곳에 이 나라 최후의 맹수가 생존해 있다고 주장했다. 본인도 집이 숲 근처인데 밤마다 귀청에 짐승 울음이 쟁쟁해서 잠에서 깨곤 한다는 것이다. 반면 슈퍼마켓 앞의 평상에 앉아 저녁까지 하늘을 구경하는 할아버지들은 그나마 현실적인 이야기를 했다. 그 숲이 실은 예전에 이 동네 살던 졸부가 사들인 땅인데 공장을 지으려다가 알 수 없는 이유로 그만두었다고, 방치된 건물 뼈대가 썩으면서 숲을 좀먹고 있다고. 그러자 옆에서 술에 얼근히 취한 다른 할아버지는 아직도 개발이 진행 중이라고 우겼다. 숲은 또한 어둑하고 인적 없는 모든 장소가 그렇듯이 동네 아이들 소문의 중심지였다. 놀이터에 가면 저마다 유리 조각이나 나무토막 따위를 들고 그게 숲에서 가져온 보물이라고 흔들어대는 꼬마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진실이야 알 수는 없었지만, 숲은 그렇게 동네 사람들의 삶을 조금은 흥미진진한 이야깃거리로 채워주고 있었다.


내 방 창문을 열면 그 숲이 곧장 눈에 들어왔지만, 나는 창틀에 기대어 담배를 피우면서도 거기에 멍하니 시선을 둘 뿐이었다. 오가는 소문에 대해 깊게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연극을 그만두고 나서는 웬만큼 지어낸 이야기엔 흥미를 잃은 탓이었다. 하지만 제희의 이야기는 그 웬만한 수준을 뛰어넘은 것이었다. 함께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정처 없이 거닐다가 숲이 보이는 동네 외곽까지 발길이 닿자, 그녀는 자신이 얼마 전 딱 이 정도 거리에서 저 숲에 사는 짐승을 봤다고 말했다. 동물이라면, 청설모 같은 거요? 내가 묻자, 그녀는 한참의 사이를 두고 그 짐승이 낙타였던 것 같다고 대답했다. 멀리서 보긴 했지만 등에 혹이 두 개 나 있었다고.


저 안에 사막이라도 있나 보죠? 그렇지 않고서야……. 나는 실실 웃으며 대꾸했다. 처음 만난 날, 재즈바에서 나오는 길에 우리는 서로의 처지가 비슷한 꼴이라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나와 마찬가지로 그녀도 혼자 살고 있었고 생활비를 벌어야 했다. 나보다 다섯 살이나 어린 학생이었지만, 지금은 휴학하고 돈을 벌고 있다는 제희를 내가 나이만으로 어리게 대할 순 없었다. 며칠 뒤 그녀는 집 근처에 좋은 수제 맥주 펍을 소개해주겠다고 전화를 걸었다. 그다음엔 우동 가게를, 포장마차를. 우리는 E의 당부 따위는 잊어버리고 업무에 관한 말보단 농담이나 늘어놓곤 했다. 그러니까 내가 낙타를 봤느니 하는 소리를 농담으로 받아쳤던 건 당연했다. 그때에도 각자 맥주를 한 캔씩 들고 있던 참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녀는 내 대답에 발끈해서 쏘아붙였다. 장난이 아니라 정말 십 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분명히 봤다는 것이다. 그럼 사진은 찍었어요? 사진 찍었다면 당장 보여줬겠죠. 너무 놀라서 그럴 새도 없었는데. 딴에 엄청난 걸 보고 들뜬 아이처럼, 제희는 손짓까지 해대며 그 순간을 묘사했다. 그녀는 밤이면 가끔 카메라를 목에 걸고 집 근처를 산책한다고 했다. 뻔한 풍경 속에서도 어떤 빛나는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걷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먼 곳까지 걸어가게 되었고, 그 날도 그렇게 동네 외곽을 벗어나 숲의 기슭에 도착했다.


그리고, 빽빽한 나무들과 그 숲을 둘러싼 철조망 앞에 네발짐승이 서 있었다. 제희는 어둠에 파묻힌 형체를 눈살에 힘을 주고 응시했다. 등에 혹이 두 개 솟아 있는 걸 보고도 저것이 낙타라는 결론을 내리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마냥 쳐다볼 뿐. 뷰파인더에 눈을 대고 초점 잡아 셔터를 누르는 데는 냉철한 판단력이 필요한데, 정신을 차릴 형편이 못 되었다. 그 짐승—제희는 나에게 말하는 도중에 자신을 믿지 못하게 되었는지, 이야기를 맺을 즈음엔 낙타를 ‘그 짐승’이라고 불렀다—은 제희의 시선을 느끼자마자 철조망을 넘어 숲속으로 사라졌다. 이후 제희는 나를 만날 때마다 숲에 관한 소문을 입에 올렸다. 일주일쯤 지나서는 전화를 걸어와서 함께 그 숲으로 들어가 보자고 말했다. 제 말이 썩 미덥지 않다는 걸 알고는 있는지 그럴싸한 명분을 덧붙이려 애쓰면서. 자료를 찾아봤는데 그 숲에 개발 계획이 있었던 게 사실이더라. 이후 철거가 되었다는 기록은 없고, 요즘에도 작업복 입은 이들이 숲에 드나드는 걸 목격했다는 사람들이 있다. 어쩌면 숲에 무허가 공장이 숨겨진 게 아닌가 싶다……. 요컨대 그 숲에 들어가는 게 원고 작업의 일환이라는 말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고, 만일 그렇게 생각했다면 랜턴을 사 들고 따라나서지도 않았을 것이다. 일탈감. 제희와 함께 있을 때면 E의 경고를 어기고 있다는 자각에서 묘한 쾌감이 일었다. 그녀의 목격담이 거짓말이라 해도 상관은 없을 터였다. 타인의 지시와는 무관하게, 보통의 일과에서 한참 떨어질 수 있어서 나는 그녀와 동행한 참이었다. 밤 열한 시, 그녀가 처음 낙타를 봤던 때와 유사한 시각에 출발했다. 제희는 숲으로 향하는 길 내내 카메라를 허공에 대고 사진을 수차례 찍었다. 유사시에 언제든 발사할 수 있도록 총을 손질하는 군인같이. 숲이 시작되는 곳에 도착하자 제희의 이야기에서처럼 철조망이 숲 전체를 둘러싸고 있었다. 내가 그 앞에 팔짱을 끼고 서 있는데, 제희가 불쑥 나에게 랜턴을 내밀었다. 왜요? 엉겁결에 랜턴을 받아들자마자 그녀는 망설임 없이 철조망을 기어올라 금세 반대편으로 넘어갔다. 자아, 이제 랜턴 이쪽으로 던지고 넘어와요. 우리는 그렇게 숲속으로 걸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캔버스 위에 시커먼 먹물을 수직으로 죽죽 그어놓은 것 같은 풍경. 숲에는 굵직한 나무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어둠 속에서 나무들은 전부 특징을 잃고 하나의 거대한 그림자가 되었다. 우리는 난쟁이가 된 듯이 어쩐지 기가 죽어서 아무런 말도 나누지 않았다. 주위를 둘러보면 사위가 구분되지 않아, 곧 어디에서 오는 길이었는지 방향 감각이 흐트러졌다. 깊숙이 들어갈수록 과연 우리가 넘어온 철조망이 외부인을 막기 위한 것이었을지 의심스러웠다. 밤중의 불청객은 대개 압도적인 어둠에 질려서 철조망 따위 없더라도 돌아 나갈 것 같았다. 만일 철조망이 안에 있는 무언가가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막기 위한 것이었다면? 미지의 동물,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 개발, 무허가 공장. 마을 사람들의 소문이 두서없이 머릿속을 채웠다. 그런 소문에 새삼 겁을 먹어서야 우스운 일일 것이다. 우리는 결국 소문에 대한 아이 같은 호기심으로 숲에 들어오게 되었으니까. 


『잡지』는 어떤 이들이 만드는가. 목이 뻣뻣할 때까지 원고 작업에 열중하면서도, E와 매달 만나 이야기 나누면서도 풀리지 않던 그 의문이, 제희를 만나고는 조금 실마리가 보이는 듯했다. 제희도 나도 서로를 만나기 전까지는 E 이외의 『잡지』 관계자를 만나본 일이 없었다. 그래서 처음 만난 날, 어떻게 이 일을 시작했는지 서로에게 앞다투어 물었다. 제희는 사진을 찍던 중 『잡지』를 처음 보았다고 말했다. 도시의 뒷골목에서 유기 동물을 찾아, 훗날 상을 받게 된 그 사진들을 찍던 중이었다. 거기에서 들개들은 누군가 몰래 버린 음식물쓰레기 봉투를 간절하게 물어뜯어 놓았고 살찐 쥐들이 떼를 지어 시궁창에서 기어 나왔다. 길고양이들은 어깻죽지에 긴 흉터가 났거나 귀가 반쯤 뜯겨나간 채로도 원래 다들 그렇게 태어난다는 것처럼 도도하게 침입자를 쏘아보았다. 제희는 뒷골목이 도시의 내장 같았다고 말했다. 세련된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쓰레기가 되어야 했던 것들의 공간. 유흥업소 전단지와 불법 투기 쓰레기봉투가 뒹굴고, 유기동물의 사체와 그들이 생전에 싸질러놓은 배설물이 엉겨 붙은 틈에 『잡지』 한 무더기가 버려져 있었다. 대부분은 사람들 손에 들려보지도 못한 채 쓰레기 신세가 된 모양이었다.


폐수에 젖어 나뒹굴고 있는 똑같은 책 수십 권. 열등한 것이 자연스럽게 도태된다는 작자들의 주장이 진실이라면 저 책들은 유흥업소 전단지와 동급의 물건일 터였다. 쓸모없는 물건에만 관심 두는 사람들은 또 어떤 쓸모가 있을지, 나는 결국 그 책을 집어 들고 한 장씩 훑어보았다는 제희의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했다. 적어도 『잡지』를 만드는 이들에게는 그렇게 순진한 일꾼이 필요할 것이다. 나는 그들이 사람 다루는 방법만은 기가 막히게 아는 치들이라고 짐작했다. E는 용역 깡패에 붙잡힌 사람에 관해 이야기할 때 그가 그 뒤로 어떻게 되었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주변 필진이 숨어다녀야 했다고 말했을 뿐. 그것은 내 신상을 알리고 다닌다면 타인의 실수 때문에 내가 위험해질 수도 있다는 경고였을까, 아니면 내가 위험에 빠지더라도 누가 도와줄 거라는 생각은 하지 말라는 뜻이었을까.


어느 쪽이었건 우리가 이 숲에서 험한 일을 당한다 해도 도와줄 사람은 없을 것이었다. 숲에 들어온 후로 나는 제희의 뒷모습만을 응시해왔다. 제희는 랜턴을 들고 앞서 걸으며 집요하게 전방을 주시했다. 랜턴 불빛은 기대보다 약했다. 우리가 진흙을 밟는 소리, 마치 경찰이 범죄자의 거점을 수색하듯 바람이 풀숲을 뒤적이는 소리, 풀벌레 울음. 그런 것들에는 제멋대로면서도 일정한 리듬이 있어서 내 귀는 곧 숲의 온갖 소리에 익숙해졌다. 해서 그 틈으로 전에 없던 발걸음 소리가 들렸을 땐 단박에 알아챌 수 있었다. 저기, 하고 내가 제희에게 알리려고 말을 꺼내었으나 그녀는 고개를 돌릴 시간도 없다는 양 등 뒤로 손을 내어 보이면서 일렀다.


“잠깐. 조용히.”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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