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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스크로 가는 기차

떠나지 못한 자와 떠난 자

by Alice Mar 15.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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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대 시절 MBC 베스트 극장에서 해주는 '곰스크로 가는 기차'를 봤다. 우연히 보게 됐는데, 나에게 엄청 잔운이 남아서 결국 이 극이 독일 작가 프리츠 오르트만(Fritz Ohrtmann)의 곰스크로 가는 기차(Reise Nach Gomsk)라는 소설에 기반한 것이란 것을 알게 됐고, 당장 교보문고로 가서 그 책을 사서 단숨에 읽었다. 곰스크로 가는 기차는 매우 짧은 단편 소설이라 프리츠 오르트만의 다른 소설과 함께 섞여 있었다.


당시 극을 봤을 때는 그 메시지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 다만 뭔가 굉장히 아리고 안타까운 느낌이 들었고, 그 안타까움은 결국 목마름이 되어 날 서점으로 향하게 만들었다.


간혹 살다보면 이 소설과 함께 그 극에서 연기하던 남자 주인공의 모습이 생각난다. 


그는 언젠가 곰스크로 떠나길 바라지만, 아내의 임신과 같은 현실에 늘 발목이 걸린다. 남자는 행복하지만 늘 무언가 빠져있고, 무언가를 그리는 표정이었다. 그것도 모르는 아내는 정착한 집과 새로 생긴 가족에 그저 행복해하며 곰스크를 그리는 남자를 이해하지 못한다.(무려 당시에 아내 역을 채정안이 맡았다 ㅎㅎ)


나중에 남자 주인공에게 자신의 자리를 물려주는 늙은 선생님은 자신도 늘 곰스크를 꿈꿨지만, 그 꿈을 뒤로하고 여기 머물러 산 자신의 인생을 후회하지 않는다며 이렇게 말한다.


"자네가 원한 것이 자네의 운명이자, 자네의 운명은 자네가 원한 것이라네."


브런치 글 이미지 1


곰스크는 실제로는 없는 도시지만, 우리 모두는 늘 각자의 곰스크를 꿈꾼다. 곰스크는 마치 잡을 수 없는 저 먼 하늘의 별과 같은 이상향이다.


어린 시절, 나는 곰스크를 떠나는 그 남자가 답답했고, 그를 잡아서 머물게 만드는 현실에 분노했다. 가슴이 아프지만 다 떠나고 가야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곰스크에 가면 당연히 더 행복하고 많은 부문이 해결될 것이라고 믿었다. 


결국 나는 어린 시절의 나만의 곰스크로 떠나왔다.


하지만 세월이 지난 지금, 나 역시 내가 원하는 삶을 찾아 한국을 떠나 먼 타지에서 살아보니 아이러니함을 느낀다.  떠나온 나의 삶이, 결국 떠나지 못하고 나의 곰스크를 그리워하며 살았을 삶보다 과연 더 행복하냐고 묻는다면... 답은 모르겠다.


곰스크를 떠나지 못한 자, 곰스크로 떠난 자. 

사람은 결국 또 다른 곰스크를 꿈꾼다. 이제는 나의 운명을 결정짓는 곰스크는 없다고 믿는다.

떠나든 떠나지 못했든, 자신의 삶과 운명을 결정짓는 것은 그 자리에 놓인 내 삶의 주인공 나의 몫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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