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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미화 Nov 17. 2022

책비

  그날 밤 아홉 언덕을 다녀와서 책비가 되는 꿈을 꾸었다 책을 읽어 주는 노비는 일곱 번 혹은 아홉 번의 눈물을 뺄 수 있는가 엽전이 치마폭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그 말을 전생에 들은 듯


  첫 이야기가 쏟아져 나오면 극으로 치닫거나 슬픔의 끝을 마주하니


  나는 가지 않는 길을 가는 책비가 되어 바다의 먼 끝 구름이 어떻게 사라지는지를 살피러 다니고 아무도 오지 않는 바닷가에서 만나지 못한 파도처럼 날마다 그 사연을 풀어내고

덮고 덮이는 귀를 씻고 아홉 언덕 이제껏 누가 짓다가 완성하지 못한 옷을 걸쳐 입고 환한


  세상의 책거리로 나서네 부족한 것이 더 나은 세상으로 나가네 엽전이 비처럼 쏟아지는 가득 찬 이야기를 하려는 곡비 아닌 책비가 되어


  당신을 한 번씩 불러 보는 사람들, 꿈 아닌 것은 뱃속에도 있고 눈 속에도 있는 사람들, 슬플수록 사람은 같은 얼굴을 하고


  끝없는 날들을 지나 그 어디에도 듣지 못한 바다를 일으켜 세워 그때 그 시절 말로 운을 떼어 보고 책 그림자를 던진다 당신은 듣고 계신가


  바람이 붉은 줄을 긋고 비를 내려 주고 마지막 한 문장에서 모두가 숨죽이는, 책비 스스로 무명한 책이 되어 이야기는 계속되고 당신은 울고 계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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