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한의사의 한의학 이야기
이번 글도 맛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음식의 맛 중에서 가장 건강한 맛이 담미淡味이고, 스트레스로 인한 화병과 염증 질환이 많은 현대인에게 좋은 맛이 고미苦味라고 말씀드렸지요. 이번엔 담미와 고미 다음으로 건강에 좋은 맛을 알려드리겠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것은 바로 산미酸味, 즉 신맛입니다.
한의학 관점에서 담미淡味가 체액과 혈액을 정체됨 없이 보충하고, 고미苦味는 화병을 진정시키면서 염증을 다스린다고 했었지요. 한의학에서 산미酸味는 기운을 수렴합니다. 발산하는 기운을 거두어 들이는 것이죠. 기운의 발산과 수렴이란 표현이 어려울 수 있는데요. 인체의 기운은 발산과 수렴을 반복하면서 균형을 이룹니다. 그 발산과 수렴이 균형되지 않으면 인체 기운이 제대로 순환치 못해서 질병에 걸리지요.
번아웃 증후군을 아시나요? 심한 정신적, 육체적인 노동으로 탈진해서 극도의 피로감을 동반한 무기력증에 빠지는 것인데요. 기운의 발산과 수렴이 불균형해서 생기는 질환입니다. 기운 수렴보다 발산이 지나친 것이죠. 이러한 번아웃 증후군은 기운을 수렴시키는 한의치료로 치유되는데 여기서 신맛이 기운 수렴에 큰 도움을 줍니다.
번아웃까지는 아니더라도 일반적인 과로 역시 발산이 지나쳐 기운 수렴이 부족한 문제이기에 과로가 일상인 현대인들에게 신맛이 요구됩니다. 제가 고미苦味 다음으로 산미酸味를 건강한 맛으로 꼽은 이유이지요. 전기와 전등의 발명으로 야간 활동이 많아짐에 따라 수면량이 적어짐으로써 기운의 발산과 수렴이 불균형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기운 수렴이 부족한 쪽으로 말이죠. 수면이 기운을 수렴시키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산미酸味를 대표하는 음식은 무엇일까요? 담미淡味의 대표 음식은 밥이고, 고미苦味의 대표 음식은 야채라고 했지요. 산미酸味의 대표 음식은 과일입니다. 따라서 달기만 한 과일보다는 약간 신맛을 띤 과일이 좋습니다. 그리고 식초가 민간요법에서 주목 받는데 이 역시 식초의 신맛이 기운을 수렴하기 때문입니다.
수면이 부족하고, 과로하기 쉬운 현대인에겐 이러한 산미酸味가 좋지만 신맛이 바람직하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감기 환자가 그렇습니다. 감기에 걸리면 한의학적으로 체표의 기운을 발산시켜야 치유되는데 이때 신맛으로 기운을 수렴하면 감기가 속으로 들어가 악화됩니다. 따라서 감기 중에는 신맛을 멀리하세요. 그리고 체질적, 병리적으로 기운의 발산보다 수렴이 강한 분들도 신맛에 주의해야 합니다. 체액과 혈액이 잘 정체되어 담음痰飮(체액 정체)과 어혈瘀血(혈액 정체) 많은 사람이 여기에 해당되지요. 특히 체표에 위치한 담음과 어혈은 기운을 발산시켜야 치료되는데 신맛을 섭취하면 치유에 방해됩니다.
담음이나 어혈성 질환이 없는 사람이 감기가 아닌 상태에서 수면 부족과 과로 등으로 항상 피곤하다면 신맛 나는 과일을 권합니다. 아울러 식초가 들어가는 음식을 함께 드셔 보세요. 지나치게 발산된 기운을 다시 모아서 피로를 풀어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