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한의사의 한의학 이야기
앞서 천천히 씹어 먹는 식사의 중요성을 말씀드렸습니다. 물리적 저작과 함께 침을 섞어서 소화를 도울 뿐만 아니라 뇌를 건강하게 만든다고 했는데요. 이러한 씹는 행위로 이루어지는, 20분 이상의 식사는 다이어트 효과도 있습니다. 식사한지 20분은 지나야 포만감이 느껴지기 때문이죠. 15분 내의 후다닥 식사는 포만감이 생기기 전에 진행되므로 과식하기 쉽습니다. 이는 다이어트가 건강 관리의 화두인 현대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지요.
아울러 스트레스 많은 현대인들에겐 과민성 대장증후군이 흔한 질환인데 여기서도 천천히 씹는 식사가 도움됩니다. 스트레스 받으면 바로 장에서 반응하는 저 역시 그럴 경우 천천히 씹으며 식사해서 과민해진 장을 달래줍니다. 긴장할 때에 껌을 씹으면 진정되는 이유도 이와 같지요. 이처럼 턱의 저작은 소화기의 균형을 잡아줍니다. 무력해진 소화기에는 활력을 일으키고, 과민해진 소화기는 그 긴장을 풀어주지요. 치아가 부실하거나 턱 관절의 이상 등으로 제대로 씹지 못하면 소화 기능의 균형부터 무너집니다.
저는 후르륵 식사를 가장 나쁜 식사법으로 꼽습니다. 밥을 국이나 물에 말아서 후르륵 넘기는 식사 말입니다. 밥을 말아 먹으면 제대로 씹을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환자분들에게 국밥류의 음식을 권하지 않습니다. 서로 섞지 말고, 밥 따로, 국 따로, 물 따로 드세요. 특히 소화불량이 잦은 분들은 후르륵 식사를 반드시 금해야 합니다.
씹는 행위가 배제된 후르륵 식사는 밥을 말아 먹는 것으로 국한되지 않습니다. 미숫가루나 선식 등을 물에 타서 마시는 것과 야채나 과일을 갈아서 만든 녹즙, 생과일 주스 등도 후르륵 식사에 속합니다. 물에 탄 미숫가루와 선식보다 곡물을 온전하게 씹어 드세요. 녹즙보다 야채를 직접 씹어 드세요. 과일 주스보다 생과일을 씹어 드세요. 지난 칼럼에서 언급된 담미淡味는 천천히 씹을 때에 느껴집니다. 곡물이나 과일을 분쇄해서 후르륵 마시면 감미甘味만 강화되지요.
한의학에서 감미甘味는 음혈陰血, 즉 체액과 혈액을 보충하는 맛인데 우리 몸에서 필요 이상으로 보충되어 남을 경우 고스란히 노폐물로 쌓입니다. 담음痰飮과 어혈瘀血이 그것이지요. 감甘이라는 한자를 보면 컵 모양으로 막혀 있지요. 감미가 지나치면 흐르지 않아 막힌 물처럼 고입니다. 반면에 담미淡味는 음혈을 보충하되 막혀서 쌓이지 않습니다. 담淡이라는 한자에 흐르는 물이 들어간 것처럼 말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감미甘味로 음혈을 보충함에 있어서 노폐물이 쌓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는데 그 방법은 감미를 담미로 전환시키는 것이니 이는 씹는 행위로 가능해집니다.
탄수화물을 다이어트에 해로운 것으로 꼽지만 이는 섬유질이 제거되고, 후르륵 섭취하게 되어 감미甘味가 강화된 경우에 해당됩니다. 섬유질이 제거되지 않은 탄수화물을 천천히 씹어서 담미淡味가 느껴지면 음혈을 쌓이지 않기 때문에 비만을 유발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