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햇살과 추억

일상에서 만나는 이야기

by 한미숙 hanaya



일요일 아침은 늦잠으로 시작한다. 강의를 나가기 시작한 이후로 주말에는 집에서 쉬는 것이 더 좋아졌다. 매일 강의 나가는 것은 아니지만, 주말까지 외출을 위한 준비가 귀찮기 때문이다. 주말을 즐기는 나의 유일한 방법은 늦잠과 멍 때리기, 다음 강의 준비로 시간을 보낼 때가 많다.

“날씨 정말 좋다. 오늘 뭐 할 거야?”
“그냥 집에 있을 계획인데. 왜?”

“날도 너무 좋은데 우리 어디 가서 바람이라도 쐬고 오자.”
“차 엄청 막힐거야. 어디든 갈 생각이 있었으면 어제 미리 이야기하지. 그래야 일찍 일어나서 준비하지.”

“당신 매일 바쁘니까 일찍 일어나라고 하기도 그랬지. 멀리 가지 말고 가까이 어디라도 다녀오자.”

“알았어, 나 씻으려면 시간 좀 걸려.”


마음속에는 ‘귀찮아서 가기 싫은데.’라고 답하고 있었지만, 어쩔 수 없이 몸은 움직였다. 아이가 어린 시절, 주말은 날이 좋아서, 날이 추워서, 날이 더워서 여러 가지 다양한 이유로 외출을 했다. 그러나 아이가 성장하면서 입시 준비 등으로 우리의 주말 외출은 없어졌다. 가끔 주말에 학원을 보내고 나가고 싶다는 신랑에게 ‘아이는 학원에서 그림 그리느라 하루종일 힘든데 어떻게 우리끼리 놀러 가.’라며 집콕으로 긴 시간을 보냈다. 어쩌면 이제는 외출보다는 집에 있는 것이 몸에 익숙해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신랑의 요구에 따라 움직였지만, 대문자 J형인 나에게 계획되지 않은 여행이나 외출이 편한 일은 아니다. 당일로 떠날지라도 반드시 미리 장소와 식당을 검색하고 일정을 잡는다. 그러나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은 채 차를 올라탔고, 나는 검색을 시작했다. 멀지 않은 그러나 우리에게는 추억이 가득 담긴 ‘융·건릉’으로 우리는 출발했다. 그곳은 아이와 함께 가을이면 항상 찾던 곳이다.


가을 낙엽이 뒤덮여 아름답고 고요한 모습을 연출하는 장소인 윤·건릉은 내가 정말 사랑하는 장소이다. 나무들이 우거진 사이로 난 넓은 산책로는 가을이 오면 빨간색, 주황색, 노란색의 놀라운 팔레트로 변신한다. 나뭇잎이 떨어져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카펫이 만들어진 곳에서 낙엽을 밟으며 걷거나 아이와 뒹굴고 낙엽을 던지면서 놀던 장소다.


해마다 11월에 찾던 곳을 이번에는 조금 일찍 아이가 없이 신랑과 둘이 방문했다. 아직은 단풍이 들지도 않고 잎이 떨어지지 않아 어색했지만, 상큼한 가을 공기와 가을 하늘을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아쉬움이라면 아이가 옆에 없다는 것이다. 이제 성인이 되어 대학을 가고, 주말에는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얼굴 보기가 쉽지 않은 딸과 다시 이곳을 방문할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 계절을 함께 즐기던 시간이 그리웠고, 다시 그 시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에 대한 미련과 후회도 밀려왔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혼자서 용감하게 모든 걸 해내고 있는 아이에게 감사했다. 아무것도 혼자서는 못 할 것 같았던 아이가 가끔은 힘들다고 징징대기도 하지만 나름의 해결책을 찾아가는 모습이 기특했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는 것이 서글프기도 했지만, 내가 아이에게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일은 건강하게 신랑과 잘 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산책로 곳곳에서 아이와 놀던 모습이 떠오르면서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오랜만에 찾은 융·건릉 숲 나무들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햇빛은 우리 주위를 따스하게 감쌌다. 고요함과 상쾌한 공기는 비록 딸은 없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우리 가족들에게 행복과 행운을 축복해주는 듯했다.



#일상 #추억 #가을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