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링링 Feb 04. 2024

그 이야기 이제 그만할 때 되지 않았어?

언제부터 인생에 책임을 그 사람에게 맡겼어?

- 한번, 두 번은 이해하겠어.

- 이제 충분히 풀리지 않았어?


 한두 번은 이해할 수 있다. 다른 사람에 선 넘는 말이나 행동에 상처받았을 때는 마음에 담고 있기보다는 그래도 툴툴대고 이야기해야 풀리니 한 두 번 이야기할 때는 위로해 줄 수도, 공감해 줄 수도 있다. 그러나 세 번 네 번 넘어가는 반복되는 자신의 상처에 관한 말이나 타인에 대한 비방은 말하는 사람을 의심하게 만든다.


' 이 정도면 이 문제를 가지고 사람들과 유대관계를 가지려고 하거나, 흥밋거리로 생각하고 수군대고 있는 거 아닌가? ' 하는 의심이 들기 시작한다.


 상대의 지나친 말에 상처받아서 나는 이 일을 하지 않겠다고 이야기한 직원이 있었다.  자신을 저격했기 때문에 이 일을 못하겠다고 이야기했다.  사람은 감정에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으니 그럴 수 있다. 한두 번은 충분히 아프고 힘들어 할 수 있기 때문에 생각을 정리하고 감정을 추스를 수 있도록 기다려 주었다. 그러나 세 번째가 되었을 때  나는 그에게 질문을 했다.


 " 언제부터 네 인생을 저 사람에 한마디 말로 결정했니? 네 인생에서 저 사람이 그렇게 중요한 사람이야? 너의 삶의 책임과 결과를 저 사람에게 지어 달라고 할 거야? 그런데 그렇다고 너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저 사람이 질 수 없어.  결국 너의 행동에 책임은 네가 지는 것이 아닐까? "

다시금 자신에 짐을 지고 나온 직원의 표정이 좋지 않다. 또다시 속상함과 화남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 이제 그만 정리할 때가 되지 않았니? 이제 그만하자. "


 상대에 대한 내 마음과 행동은 결국 내가 책임지고 정리해야 한다.

  직장에서는 오랫동안 같은 변명과 이야기를 계속 들어줄 사람은 없다. 있다면 그 사람도 나처럼 하나의 문제를 가지고 오랫동안 집착하고 빠져나오지 못하는 나와 비슷한 사람일 것이다. 그게 더 위험하다. 그런 사람과 같이 있다 보면 문제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그 문제가 마치 내 인생에 전부 인 것처럼 허우적거리게 된다. 생각보다 그 문제는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 문제를 들고 이야기하고 있다면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오히려 역으로 이용해서 내 변명으로 사용하고 있는 건 아닌지 혹은 이야깃거리로 생각하고 유대관계를 위해 타인의 잘못을 이용하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한다.

 

 사람은 감정에 지배를 받는 존재이기 때문에 한, 두 번은 충분히 화가 나고 속상해서 여기저기 이야기하고 내 감정을 표출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정도 했다면 스스로 감정을 정리할 때도 되었다.

 사람은 감정의 지배만 받지는 않는다. 이제 이성에게 그 자리를 내어 주고, 생각을 정리하고, 감정을 적당히 표현했다면 마무리해야 할 때다.  내가 받은 억울함이나 화가 생겼다고, 내 인생에 책임을 타인에게 넘기지 말자. 그렇다고 그 책임이 타인에게 넘어가지도 않는다. 결국은 내가 살아가야 할 내 삶이다. 이제 그 사람은 그만 놓아주자. 그리고 나는 내 삶을, 그 사람은 그 사람에 삶을 살 수 있게 놔두자.



 " 넌 화가 안 나? "


 " 그래서 화냈잖아. 그럼 끝났잖아. 나머지는 그 사람의 삶이니 그 사람이 그렇게 살다가 자기가 알아서 책임지겠지 놔둬! "


" 그게 다야? "


" 나한테 직접적인 피해가 생겼다면 그 피해에 대한 책임을 당연히 물었겠지. 하지만 직접적으로 당한 피해는 없었어. 그러면 더 이상에 책임을 물을 필요는 내게 없다고 판단되어서 나는 멈춘 거야. 난 이제 됐어. 충분해. "


" 그럼 난? "


" 그건 네가 판단할 문제지. 그런데 너도 그 정도면 충분한 거 아닌가 싶긴 하네. 넌 어때? "


"... 하아, 그래 이제 넘어가야지. "


  내가 이 문제를 놔두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첫쨰, 그래도 같이 협업을 해 나가야 하는 함께 일하는 직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사람이 한 잘못이나 책임은 분명 존재한다. 그걸 참고 덮는 것만 능사는 아니다. 잘못을 말해야 할 부분은 말해야 하고, 표현할 부분은 표현해야 한다. 딱 그 까지면 된 거다. 의사전달이 되고, 알 수 있게 표현했다면 그럼 더 이상 끌고 갈 필요는 없다. 말이 많아지고, 감정을 길게 끌고 가 봐야 서로에게 상처만 커 질뿐이다. 결국 내 감정은 내가 정리할 책임이 있다.

 두 번째, 지나친 표현이나 개입은 나에게도 책임이 돌아오기 때문이다. 말에도 책임이 실려 있다. 계속되는 말은 그 말에 책임이 나에게도 주어진다. 그 사람의 문제에 대한 책임은 그 사람이 질 수 있도록 깊이 관여하지 않는다. 내가 굳이 악취 나는 짐을 자진해서 가져와 그 악취는 내가 풍길 필요는 없다. 피할 수 있는 타인의 책임을 내가 다가가 자진해서 지지 말자. 그 사람에 삶은 그 사람이 살 수 있게 놔두자.  그렇게 나는 그 문제에서 벗어나 내 문제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나에게는 다른  집중해야 할 중요한 많은 일들이 있었고, 성실히 살아가야 할 내가 책임질 내 삶이 놓여 있었다. 풀어 내릴 감정을 풀었다면 나는 다시 돌아서 내 일을 하기로 했다.


 

이전 04화 내 입장은 관심이 없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