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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 Kim Nov 18. 2022

사이다와 사이드

[2020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선정작]1

밀려드는 기사에 교열 작업이 한창일 때였다. 뒤쪽이 시끄러워 돌아봤더니 외국인 하나가 사무실 입구에서 떠들고 있었다. 펑퍼짐한 레터링 후드티 차림에 히스패닉계로 보이는 할머니였다. 오지라퍼 납시셨네, 옆자리 편집기자 형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누군데요?


내가 파티션 너머로 묻자 귀찮다는 얼굴로 영상팀 소속, 그러면서 입을 뗐다. 편집기자 말로는 말 못 해 죽은 귀신이 붙었는지 쓸데없이 사옥을 돌아다니며 온갖 간섭을 일삼는 양반이라고 했다. 여기저기서 볼멘소리가 나왔지만 외국어 번역에 능통하고 기획력도 뛰어나서 윗선에서도 그러려니 한다고. 특히 젊은 사람이 표적이니 조심하라며 내 어깨너머로 눈짓을 했다. 돌아보니 그 양반이 내 뒤에 서 있었다. 


올라, 아미고!


눈썹까지 한껏 치켜올린 과한 인사였다. 가까이서 보니 가무잡잡한 얼굴에 갈색 눈동자가 더 이질감을 주었다.


처음 보는 친구네.


네이티브 수준의 한국말 때문이었는지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섰다.


나 푸에르토리코에서 왔어. 벌써 백 년도 넘은 거 같지만. 푸에르토리코 알지?


나는 얼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아는 거라곤 야구는 좀 하지만 축구는 피파 랭킹에도 못 드는 수준의 나라라는 정도였지만. 


날씨는 환상인데 갱들이 매일 총을 쏴대. 못 믿겠어? 정말 총알이 머리 위로 날아다닌다니까. 자기는 매일 총알 피해 다니는 그런 기분 모를걸.


그쯤에서 목소리가 대책 없이 커졌다.


자유를 위협받는 건 정말 별로야.


여기저기서 우리 쪽을 흘긋대는 시선이 느껴졌다. 민망하기도 했고 어느 타이밍에 앉아야 할지 난감했다. 안절부절못하고 있는데 그녀가 내가 수정하던 모니터의 기사를 들여다보고는 활짝 웃었다. 


오, 달빛요정 공연 기사구나. 한국에서 내가 제일 좋아했던 밴드야. 자기도 좋아해?


아, 네 조금……


나 한국 인디밴드와 외국 밴드가 조인하는 다큐 만든 적 있어. 그때 반했어. 굉장히 크리에이티브한 원 맨 밴드지. 


그러면서 후드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뭔가를 내밀었다. 


마지막 남은 공연 티켓인데 자기 당첨.


막무가내로 쥐여주는 바람에 티켓을 받았다. 내 목에 걸린 출입 카드를 유심히 들여다보던 그녀가 민형, 민형 하고 몇 번 중얼대더니 발음이 쉽지 않다고 고개를 흔들었다. 나도 덩달아 상대의 출입 카드를 보게 되었다. Joan Rodriguez. 존? 조운? 정확한 발음을 고민하고 있는데 명쾌한 콩글리시 발음이 바로 날아왔다.

 

내 이름은 조안이야.


마침 그녀가 들고 있던 휴대폰의 진동음이 울렸고 그때서야 바쁜 일이 생각났는지 또 보자는 인사를 남기고는 바쁘게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조안 때문에 허비한 시간은 고스란히 내 책임이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은성 씨 눈치부터 살폈다. 뾰족하게 가시를 세우고 앉은 고슴도치 한 마리가 보였다. 자리 배치로 보자면 편집기자들 사이에 교열을 보는 나와 은성 씨가 나란히 끼어 앉는 구조였다. 그렇게 교열 둘이 앉아서 피칭머신의 강속구처럼 날아드는 기사들을 처리해야 했다. 일간지는 물론 월간지까지 다루려면 업무시간은 늘 빠듯했다. 


은성 씨는 처음부터 나를 못마땅해했다. 인수인계도 안 된 상황에서 전임자가 돌연 일을 그만둔 상황인데다 신문 쪽으로는 초짜인 내가 후임이라고 들어왔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녀로서는 일일이 가르쳐가며 강도 높은 업무를 해내는데도 급여는 동등하게 받아야 했으니까. 


나는 나대로 은성 씨의 지시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내가 알고 있던 문법 체계와 다른 부분이 많았다. 가령 대회를 성료했다, 라는 문장은 성황리에 치르다, 라거나 성공적으로 마무리, 혹은 마침, 같은 식으로 바꿔줘야 했다. 보통 잡지 같은 데선 찌라시, 라고 쓰이지만, 신문 기사에서는 증권가 정보지, 라고 표기하는 식이었다.


처음에는 나도 사전을 확인해보고 나서야 은성 씨 말을 받아들였다. 그때마다 은성 씨는 얼굴을 붉히거나 목소리 톤이 떨리는 것으로 불쾌감을 드러냈다. 그런데도 내가 고집을 굽히지 않으면 자신의 자리로 돌아앉아서는 책상 위에 자판을 말없이 두들겼다. 그냥 무시하는가보다, 했다가 파티션 너머로 그녀의 모니터가 구직광고 사이트에 머물러있는 걸 보고는 더는 토를 달지 않았다. 갑자기 은성 씨가 나가버릴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위협도 그런 위협이 없었다.


용병은 외국인 선수로 표기하세요. 승부는 대결이 맞아요. 기라성 같은 말도 내로라하는, 으로 바꾸세요.


언제나 명령조였지만 나로서는 그녀가 정해주는 규칙들을 군말 없이 외워야 했다. 그중에서도 스포츠 기사는 외래어가 많아 종잡을 수가 없었다. 


한 번은 야구 기사 중에 마이크 트라우트를 마이크 트라웃으로 수정한 일이 있었다. 은성 씨가 처음으로 화를 냈다.


저기요. 기자가 맞게 써준 걸 왜 맘대로 고쳐요?


인터넷에서도 그렇게 표기해요. 저도 그렇게 알고 있고.


교열 처음 해봅니까? 외래어 표기법 정도는 알고 있어야죠. 외래어는 표기법이나 회사 방침이 우선이라는 거 모르세요? 지금까지 그쪽이 안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머릿속에서 싹 다 지우세요.


그러면서 표기법이 적힌 노트 하나를 던져주었다. 엄연한 이름이 있는데도 저기요, 해가면서. 


실력으로 따지자면 나도 뒤지진 않았다. 기사문 쪽 경험이 적을 뿐이지 어디 가서 무시당할 정도는 아니었다. 남은 열 달 정도의 계약 기간이 까마득하게 느껴졌지만 버텨야 경력이 되었다. 그러려면 은성 씨의 지적질을 귀담아듣는 수밖에 없었다.


퇴근 무렵 가방을 정리하는데 책상 위에 조안이 놓고 간 티켓이 눈에 띄었다.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이진원을 사랑하는 사람들, 이라는 제목에 눈길이 머물렀다. 십여 년 전 죽은 그를 추모하는 공연이었다.


공교롭게도 헤어진 여자 친구가 달빛요정의 열렬한 팬이었다. 현재로선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 연애랄 수 있는 그녀를 따라 그의 공연장에 몇 번 끌려다녔다. 생전 공연뿐 아니라 추모공연장에도 다녀왔다. 여자 친구와 헤어지기 전 그해 여름과 가을 어디쯤이었을 텐데. 헤어질 당시에는 그것이 어떤 모습의 단절인지 헤아릴 여유조차 없었다. 나는 달빛요정의 노래를 좋아하진 않았지만 이제는 그의 공연장에 한 번쯤은 가봐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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