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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 Kim Nov 18. 2022

사이다와 사이드

[2020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선정작]2

발길이 멈춰진 건 공연장 앞에서였다. 입구에서 지하로 이어지는 계단은 가파르고 좁아서 내려가다 발이라도 헛디디면 어쩌나, 덜컥 입장했다가 여자 친구라도 만난다면, 이런저런 생각에 머뭇거려졌다. 나를 등지고 공연장으로 들어서는 사람들에게선 어수선한 활기가 돌았다. 옷차림 때문인 것 같았는데, 가만 보니 모두 약속이나 한 듯 야구 유니폼 차림이었다. 그제야 티켓을 펴서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야구를 사랑했던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이진원을 위한 이색 추모 공연.


길지 않은 글귀에서 이색이란 두 음절이 눈에 들어왔다. 보통의 것과는 두드러지게 차이가 나거나 다른……. 사전적 정의로 보면 뭔가 색다른 것을 경험해 볼 수 있는 기회였지만 사람이든 공간이든 친해지고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필요한 나였다. 집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폭식과 거식증을 오가며 숨 막히는 시간을 보낼 것이 뻔했으므로 기왕 거기까지 갔으니 눈요기나 하자는데 마음을 굳히고는 계단을 밟고 내려섰다.


좁은 무대 양쪽으로 모기장 같은 장막이 늘어져 있었다. 야구장의 그물처럼 천장부터 바닥까지 무대를 감싼 모습이었다. 무대 바닥에는 베이스를 표시하는 작은 부채꼴 라인이 야광 조명처럼 반짝였다. 엘지 유니폼을 입고 기타를 치는 이진원의 생전 모습이 중앙 스크린에 흘러나왔다.


클럽에 야구장이라니. 이런 공연도 있구나, 하면서 신기한 눈으로 보게 되었다. 나도 모르게 분위기에 조금씩 동화되었다. 협소한 공간 때문인지 어설퍼 보이긴 해도 유니폼을 입은 관객들과의 시너지 효과로 그럴듯해 보였다. 추모 공연임에도 줄곧 넉넉하고 달뜬 분위기가 이어졌다. 공연의 필수 굿즈라는 야광봉을 흔들면서 노래를 따라 부르는 관객들 속에 혹시라도 여자 친구가 있진 않을까 자꾸만 주변을 돌아보게 되었다. 무대 위에서 달빛요정의 노래를 부르는 동료 인디밴드들의 열기가 야구장의 응원처럼 공연장을 달구었다.


똑똑하던 반장 놈은 서울대를 나온 오입쟁이가 되었고, 예쁘던 내 짝꿍은 돈에 팔려 대머리 아저씨랑 결혼을 했다고 하더군…… 스매끼리 찾아라…… 임성훈 등장했다 아침이다, 이다도시 시끄러워……언제쯤 사시미가 될 수 있을까, 스끼다시 내 인생…….


스끼다시 인생이 사시미를 꿈꾸다니. 참신하지도, 그렇다고 울림을 주는 비유도 아니었다. 쓰메키리란 표현도 마음에 안 들었다. 비속어 남발에 저속한 비유들이 언제 들어도 조금씩 거슬렸다. 그의 노랫말 대부분이 그런 식이었다. 어법은 무시하고 조소가 아니면 악다구니, 자기 푸념이라고 해도 이상할 게 없는 가벼운 조합들. 열패감에 절은 넋두리를 창조라고 열광하는 팬들이 더 문제였다. 언젠가 내가 그런 것들을 지적했을 때 여자 친구는 발끈하며 그의 편을 들었다.


오빠, 사람들이 어떤 노래를 좋아할 땐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좋고 싫음의 문제가 아냐.


달빛요정은 누구보다 소신 있게 음악을 했던 사람이야.


내 눈엔 그냥 삐딱해 보여. 깊이까진 아니더라도 저급하진 말아야지. 하긴…….


하긴 뭐?


빠순이들이 뭘 알겠어.


나도 내가 그렇게까지 말할 줄은 몰랐다. 잘못된 걸 바로잡으려는데 도리어 내가 잘못됐다고 훈계를 하니 나도 성질이 났다.


그동안 나랑 공연장에 다녀준다고 힘들었겠어.


여자 친구가 울먹이는 바람에 나도 더는 반박할 수가 없었다.


네가 좋아하니까 같이 가준 거야.


이럴 거면 왜 같이 가줬어? 오빠야말로 삐딱한 거 알아?


대화는 거기서 중단되었다. 그때는 문법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을 바로 잡고 싶었을 뿐인데 그걸 이해 못 하는 여자 친구가 답답할 따름이었다.


정규 공연이 끝나고 객석과 하나 된 야구 놀이가 시작되었다. 캐치볼처럼 공을 가지고 노느라 무대는 질서 없이 산만해졌다. 이색이고 뭐고 시끌벅적한 놀이터에 갇힌 기분이 들었다. 출구를 찾기 위해 사람들을 헤집고 끝나지 않은 공연장을 표나게 빠져나오는데도 누구 하나 나의 이탈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은성 씨가 쓰러진 건 그로부터 며칠 뒤였다. 그날은 경제 기사에서 일이 터졌다. 글로벌 명품 브랜드와 국내 스포츠용품 브랜드의 업무협약을 소개하는 기사였는데 콜라보레이션이 문제였다. 표기법이 컬래버레이션으로 바뀐 걸 모르고 넘겼다가 이번에는 은성 씨가 아닌 팀장에게 한 소릴 들었다.


애초에 기자가 써서 넘긴 걸 발견하지 못한 건 내 잘못이었다. 그렇다 쳐도 은성 씨가 그걸 놓칠 리 없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은성 씨는 내가 수정한 기사를 한 번씩 검토해주었다. 일부러 모른 척했다는 심증이 들었다. 심증은 같은 을끼리 너무 하네, 와 같은 분노로 확장되다가 불현듯 이해심 쪽으로 기울었다. 나는 자꾸만 틀렸고, 은성 씨는 매일 그걸 설명해야 했으니까.


자리로 돌아오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팀장 자리에서 언성이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보니 팀장과 은성 씨가 눈빛을 견주고 있는 것이 보였다. 팀장은 앉아서 올려다보는 자세였고 은성 씨는 선 채로 팀장을 내려다보았다.

 

저는 이제부터 제 일만 할 거예요. 제 분야만 책임지겠어요.


은성 씨 말에 팀장은 조금만 더 신경 써달라는 눈치였고 은성 씨는 그 조금만이 대체 언제까지인 거냐, 맞서는 상황이었다.


듣고 보니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나를 건너뛰고 팀장에게 내 문제를 들먹이는 상황이었다. 뻔히 내가 듣고 있다는 걸 알 텐데도 말이다.


힘든 거 안다, 밥이라도 먹자, 고기라도 사주랴, 같은 교열끼리 조금만 더 화합하고 북돋아 주면 얼마나 훈훈하냐, 그런 빤한 이야기들이 팀장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은성 씨는 듣기만 했다. 대꾸도 하지 않고 팀장이 떠드는 소리를 가만히 듣고만 있더니 갑자기 거짓말처럼 바닥에 드러누웠다.


팀장은 별 대수롭지도 않다는 듯 은성 씨를 내려다보았다. 다른 기자들도 힐끗 보더니 각자 업무에 몰두했다. 편집기자 말로는 전에도 종종 그래왔으며 알아서 곧 일어날 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식이었다. 말한 대로 은성 씨는 부스스 자리를 털고 일어나서는 자기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팀장에게 넌지시 다가가 구급차라도 불러야 하는 거 아니냐고 했다가 한소릴 들었다.


은성이 가면 혼자 어쩌시게?


목구멍에 가시 같은 것이 걸린 기분이었다.


톨스토이 같은 작가를 꿈꾸던 때가 있었다. 부푼 꿈을 안고 문창과에 들어갔는데 먹고 사는 일이 해결돼야 작가도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대학 새내기 시절부터 시작한 교열 알바가 졸업한 뒤에도 유일하게 잘하는 일이 되어 있었다. 돈만 주면 대필이든 윤문이든 가리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아무리 공들여 빚는다고 해도 거기에 나는 없다는 것을. 실수의 책임만 떠안을 뿐, 내가 만들었는데 나는 없고, 잘못됐을 때만 존재감이 드러나는 이상한 구조였다. 그렇다면 내 글을 써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재능 같은 거 따지지 말고 무조건 써 보자고. 한데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오빠, 이거 띄어쓰기 틀렸네. 문맥도 좀 이상하고.


여자 친구가 노트북에 저장된 내 글을 보고는 웃으며 말했다. 출판사 편집일을 하던 그녀로서는 별 의미 없이 던진 말이었겠지만 나는 그게 무슨 말인가 싶어 내 글을 다시 확인했다. 여자 친구 말대로 일반인도 잘 틀리지 않는 띄어쓰기부터 말도 안 되는 문장들을 남발해놨으면서도 전혀 모르고 있었다.


퇴고하면서 거르려고 했어.


나는 보란 듯이 노트북을 닫아버렸다.


정말?


여자 친구가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지금 나 의심하냐?


아니, 오빠 이런 모습은 처음이라. 뭐랄까, 인간적이라고 해야 하나? 비문인데도 신선하고 좋았어.


비웃을 때는 언제고 그럴 수 있다고 다독이는 여자 친구가 더 미웠다.


지금까지 난 사람 같지 않았나 봐.


그런 말이 아니잖아.


놀리니까 재밌냐?


놀리다니. 어이가 없네.


어이없는 게 누군데. 남의 노트북 함부로 본 게 누군데 그래?


언성이 높아지자 여자 친구가 정색하며 말했다.


그만하자 우리.


싸움을 그만하자는 것인지, 만남을 그만하자는 것인지 그때는 알 수 없었다. 내가 화를 내면 눈물부터 쏟는 편이었는데 그날은 그러지 않았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는 자책하듯 뚝뚝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 책임도 있는 것 같아. 그동안 오빠를 받아줬던 내 책임.


울음기 없는 목소리였다. 고루하고 소심한데다 미래마저 불투명한 나 같은 녀석을 오래도록 버텨준 사람이었는데. 그래서인지 매몰차게 돌아서는 그녀를 붙잡을 수가 없었다.    


신선한 공기, 빛나는 태양, 맑은 물, 그리고 사랑이었나. 그런 것들만 있어도 낙심하지 말라던 괴테의 말은 어느 정도 맞는 얘기였다. 노동이 끝나면 어둑한 지하 방으로 돌아와 라면, 햇반, 과자 같은 것들을 먹어 치웠다. 배가 너무 불러서 등이 오르락내리락 가쁜 숨을 내쉬면서도 쉴 새 없이 뭔가를 입에 넣었다. 그렇게 미친 듯이 먹다 보면 얼마간은 음식 냄새만 맡아도 토가 나왔다. 지나치게 먹거나 지나치게 굶거나 하는 일들이 지속되었다. 그러는 중에도 노트북을 끼고 앉았다. 떠나간 여자 친구 대신 내 글과 실랑이를 하다 보면 쓰다 만 문장들이 우울감처럼 쌓여갔다. 그러면 미련 없이 백스페이스를 눌렀다. 한 문장이 끝날 때마다 강박처럼 검열에 들어갔고, 틀린 걸 발견하면 그게 실패의 원흉이라도 되는 듯 모조리 날려버렸다.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뭔가를 먹고 있거나 먹지 않거나 썼다가 지우는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었다.


은성 씨는 아무 일도 없던 사람처럼 태연하게 앉아서 자판을 두드렸다. 은성 씨에게 관심을 주는 사람은 없었다. 시간을 다투는 편집부이다 보니 그럴 순 있다고 쳐도, 아직 내가 누군지 모르는 기자들도 허다했다. 심지어 전에 일하던 교열과 헛갈리는 경우도 보았다. 그때까지 남자 교열은 내가 처음이었다는 데도 말이다. 매일 보는 편집기자들만 해도 신문사에서 일어나는 특별한 사안 같은 것은 알려주지 않았다. 파견직은 몰라도 돼, 하는 식이었다.


은성 씨 자리에서 은은한 파우더 향이 새어 나왔다. 어릴 때나 맡아본 냄새였는데 은성 씨 자리에서 그런 냄새가 난다는 걸 처음 알았다. 뒤에서 슬쩍 넘겨다보니 자판에 글자들을 아무렇게나 치고 있었다. 나는 잠시 머뭇대다가 모른 척 내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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