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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의 첫 데이트

by ri

지난번 만든 도자기가 완성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도자기는 서산으로 여행을 갔던 날 엄마에게 전해드렸다. 선생님께서 미리 말해주셨지만 확실히 점토 상태였을 때보다 굽고 나니 크기가 줄어 있었다. 그래도 직접 손으로 꾹꾹 눌러 빚은, 내 지문과 땀과 시간이 담긴 도자기는 고슴도치도 자기 새끼는 예쁘다고 하는 말처럼 그 어떤 도자기보다 애틋한 느낌이 있었다.


무더위가 찾아오기 전, 초여름에 나는 도자기 클래스를 예약했다. 역에서 자취집까지 가는 길에 늘 지나치던 공방이었다. 예전부터 언젠가는 도자기 클래스에 참여해 봐야지 했었는데 그렇다고 당장 해야 할, 어떤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이러다 금방 흐지부지 별 감흥이 없어질 것 같아 조금이라도 흥미가 있을 때 할 수 있도록 추진력을 발휘했다. 엄마에게는 미리 묻지도 않고 선생님께 사정상 예약날 1명만 할 수도 있다고 양해를 구했다. 거절을 할 수도 있을 거라고 짐작했는데 웬걸 엄마는 오히려 관심을 보이며 흔쾌히 가겠다고 하셨다.


약속한 날, 아침부터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집에서 우리 동네까지 오는 길을 여러 번 일러주었다. 출발지에서 도착지까지는 20분이 채 안 걸린다. 그럼에도 평소 엄마는 전철을 잘 이용하지 않는 데다 스마트폰 활용도 못하는 편이어서 더 신경이 쓰였다. 가뜩이나 낯선 것은 시도조차 하지 않는 엄마를 잘 알기에 이것저것 복잡하게 설명하면 괜히 더 부담이 될 것이고, 그러다 심기를 건드리면 갑자기 약속을 펑크낼 수도 있겠다 판단했다. 나는 마음과 다르게 자꾸만 커져가는 목소리를 최대한 가라앉히며 엄마가 혹시나 길을 잘못 들까 봐 같은 말을 반복했다. 결국 엄마는 왜 자꾸 같은 말을 하냐고 한 번 큰 소리를 내셨지만 별 일 없이 역에 도착하셨다.


일부러 플랫폼으로 마중을 나갔는데 나가야 할 출구와는 다른 곳으로 엄마가 나가서 식당 예약 시간이 조금 지체되었다. 티를 내지 않으려고 했지만 나 역시 엄마만큼 심기가 상하면 그대로 드러나는 편이어서 나도 모르게 얼굴이 굳어버렸는데 웬일인지 밝은 표정의 엄마를 마주하니 꽤나 머쓱했다. 첫 데이트이니 엄마에게 좋은 시간을 만들어줘야겠다는 의무감에 뚝딱거리고 있을 무렵 엄마가 먼저 입을 뗐다. “치마 입었네?” “응, 엄마 블라우스 이쁘네.” “저번에도 입었잖아.” “그랬나?” 나는 기억을 더듬는 척 괜히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오는 데 힘들지 않았는지 물었다.


우리는 아담한 규모에 심플하면서도 감성 있게 잘 꾸며 놓은 식당에 들어섰다. 미리 뭘 주문할지 알아본 나는 형식적으로 메뉴판을 보면서 짧게 설명을 덧붙였다. “뇨끼는 파스타 종류인데 수제비 같은 거야. 엄마, 스테이크 하나 시키자.” 엄마는 스테이크에 일반 파스타를 원하셨지만 나는 오늘이 아니면 먹어볼 일이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뇨끼를 먹자고 설득했다. 주문을 마치고는 셀프로 챙겨 와야 하는 물과 피클을 세팅했다. 엄마와 이런 곳은 처음이다 보니 스멀스멀 어색함이 올라오고 있었다. 이럴 때 좋은 게 사진을 찍어드리는 것이다. 나는 휴대폰을 들고 포즈를 주문하며 엄마의 사진을 찍었다. 다행히 엄마는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신다.


예상한 대로 음식은 너무나 맛있었다. 이전까지 엄마는 밖에서 ‘정식 스테이크’를 드셔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먹다 말고 자꾸 “이게 스테이크지?” 하고 몇 번이나 물으셨고 나는 주변 손님들을 의식하면서 “응, 몇 번을 말해.” 하면서 틱틱거렸다. 거의 음식을 다 먹을 때쯤 식사 자리에서 으레 하듯이 엄마에게 맛이 어땠는지 물었다. 그러자 엄마는 “그냥 그런데?” 하셨고 잠깐 당황한 나는 아무 말 못 하고 연신 얼음이 녹아 싱거운 콜라를 마셨다. 엄마가 뇨끼를 탐탁지 않아하기도 했고,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을 줄 안다는 말처럼 처음 먹는 ‘정식 스테이크’에 적응을 못했으리라 짐작했다. 왜냐하면 그 스테이크는 지금까지 내가 먹어본 스테이크 중에 가장 부드럽고 맛있었기 때문이었다. 식당에서 나오면서 정말 자주 엄마에게 맛있는 음식을 사드려야겠구나 다짐하게 되었다.


도자기 클래스까지 잠깐 시간이 남아 우리는 가까운 나름 단골 카페에 들렀다. 엄마는 아메리카노에 시럽을 넣을 수 있냐고 하셨고 나는 사장님께 부탁을 드렸다. 나만의 취향이 있으면서도 새로운 음료나 유행하는 음료도 곧잘 사 먹는 나는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만 시키는, 거기다 시럽을 타먹는 엄마를 보면서 잠깐 동안 갑자기 너무나 많은 생각이 흘러넘쳐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나마 믹스커피만 먹던 엄마에게 원두커피를 사드리지 않았으면 아메리카노도 먹지 않았을지도 몰랐다.(실제로 나는 일부러 엄마에게 자주 아메리카노를 사드렸던 적이 있었다. 그 이후로 엄마는 아메리카노를 거부감 없이 드시게 되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사장님께서 서비스로 주신 마들렌을 입에 욱여넣고는 다시 휴대폰을 들어 엄마의 사진을 찍었다.


도자기 클래스는 운이 좋게도 중년의 여자 선생님께서 진행해 주셨다. 엄마도 편하게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시는 게 느껴졌고 알게 모르게 긴장하고 있던 나도 손에 닿는 점토의 촉감에 집중할 수 있게 해 주셨다. 엄마는 그 어느 때보다도 집중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거기다 일정한 두께로 잘 빚는다고 선생님의 칭찬까지 받아서 그런지 의욕적이었다. 클래스를 마치고 역으로 엄마를 배웅하면서 나는 물었다. “엄마, 집에서 별로 안 멀었지? 여기까지 또 올 수 있겠어?” “응, 전철 타니까 금방이더라.” 우리의 데이트는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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